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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 날, 포장마차 전경
 비 오는 날, 포장마차 전경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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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무작정 우울하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 눈이 뒤집힐 것 같이 화가 나는. 그런 날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잡한 생각 탓에 방 안에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어도 몸이 천근만근이다. 심지어 뜬금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가 하면, 하릴없이 터벅이며 길을 걷다가도 갑작스레 퍼붓는 소나기마냥 기분이 좋았다, 나빠지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감정 곡선이 끊임없이 요동치다보면, 운동이고 독서고, 평소 스스로의 자양분을 만들고자 계획했던 것들을 할 엄두조차 낼 수가 없다. 감정소모를 한 만큼, 몸 안의 에너지도 방전된 거다. 왜, 흔히 육체적 노동보다 힘든 게 감정 노동이라 하지 않던가.

이런 날에 스스로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건 무얼까. 먼저 사람은 안 된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에는 이 모든 청승을 온전하게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으니까. 차분하게 앉아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자니, 창작자의 관점을 무기력하게 머릿속에 넣기보단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게 낫겠다 싶다. 그래, 의미 없는 고민이 길었다.

결국, 이런 구구절절한 변명 끝에 발걸음이 향한 곳은 바로 뜨끈한 국물에 소주 한 잔 파는, 연남동 골목 어귀에 있는 허름한 실내 포장마차였다. 포장마차만큼 쓸데없는 청승을 밉지 않게 포장해 줄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낙서로 가득한 벽면과 고객의 편의 따위 고려하지 않은 간이 의자들. 음식 메뉴도 허름한 내부만큼이나 조촐하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주는 덤덤한 위로가 좋다. 서비스가 좋은 레스토랑도, 값비싼 재료들로 꾸려져 나오는 멋들어진 음식도 포장마차에서 배어나는 무심함을 대체할 수 없다. 위가 아닌,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데 필요한 것은 음식보다 이 감정에 오롯이 적셔질 수 있는 감성이어야 했다.

해서 주문한 오늘의 한 상. 값싼 식용유로 지져낸 계란 프라이와 스팸 네 조각. MSG의 친숙한 짠맛이 잔뜩 배어나는 어묵탕도 함께 고른다. 여기에 입안의 기름을 덜어낼 소주 한 병도 곁들이면, 오늘의 청승을 담아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2만 원 채 되지 않는 조촐한 술상이 완성된다.

 비 오는 날, 포장마차 전경
 비 오는 날, 포장마차 전경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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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 날, 포장마차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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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감성적인 연남동 가게들을 뒤로하고 세월이 덕지덕지 엉겨 붙은 낡은 가게를 택한 이유다. 이곳에서 혼자 기울이는 술은 거나하게 취할 일도 없다. 그렇게 이래저래 홀짝이면서 다 먹고 나면, 적당한 취기와 배부름이 기분 좋게 몸을 감싼다. 스스로를 다독이기에 더할 나위 없다.

때론 이런 포장마차 같은 위로가, 혹은 그런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과한 위로도, 배려도 무용하다. 어떠한 말도 없이 조용히, 그저 잠자코 내 이야기를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람. 대화를 유도하지 않고, 내가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그 상태로도 술잔을 부딪쳐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만일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때는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처럼 이렇게, 스스로의 감정을 곱씹으며 삼켜내면 되는 거니까. 참고로 이 순간조차 혼자인 것은 아니다. 공간이 주는 슴슴한 위로가 있다. 소주 한 잔에 기름 냄새 물씬 풍기는 안주 한 입. 이유 없는 청승은 없다 했던가. 이유에 대한 해결책을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 청승은 조각난 가슴을 붙여주는 매개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때 필요한 것은 청승을 오롯이 받아줄 수 있는 무언가뿐이다.

비 오는 5월의 오늘. 한껏 가라앉은 하늘과 주변을 둘러싼 눅진한 공기가 일상의 피로를 배가시킬 것만 같은 날이다. 심지어 일기예보에서 비가 연이어 내린다는 말까지 들린다. 쏟아지는 비에 괜스레 가슴까지 묵직해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괜히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단, 이 감정 들고 일전의 나와 같은 조금은 소박한 한 상을 맞아보길 바란다. 물론, 청승을 달고 갈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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