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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세상, 변하지 않는 기업의 존재감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많은 일들이 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변하지 않고 있는 것들이 있으니 바로 재벌을 필두로 하는 기업들의 존재감일 것이다.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총수 일가의 '갑질'이 일상화된 기업을 비롯하여, 산업재해로 320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직업병의심 피해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근무하는 노동환경에 대한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 치는 기업, 그리고 해외에 진출하여 16만 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노동환경과 노동조건에 문제제기를 하는 활동가들을 탄압하는 기업들은 이러한 인권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건재'하고있다.

기업의 활동범위가 확장된 만큼 인권침해 양상도 다양하게 드러나는데, 가령 2016년 초, 국내 유력 전자회사들의 2, 3차 협력사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이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것에 대해 원청에서는 1차 협력업체의 안전관리 만 책임을 지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또한, 해외에 진출한 많은 한국 기업들은 다양한 형태로 인권침해에 연루되는데, 한국 정부의 ODA 자금을 지원 받아 진행되는 프로젝트로 인해 지역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경우도 있고, 해외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하다 해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베트남에서 16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삼성전자 베트남 사업장의 모습. 지난해 11월 국제환경보건단체와 베트남 시민단체는 베트남 삼성전자에 근무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노동환경 실태조사 보고서를 내놓았다.
 베트남에서 16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삼성전자 베트남 사업장의 모습. 지난해 11월 국제환경보건단체와 베트남 시민단체는 베트남 삼성전자에 근무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노동환경 실태조사 보고서를 내놓았다.
ⓒ 공익법센터 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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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인권, NAP(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 대한기대

사실 이러한 기업의 영향력 강화로 인한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으며, 특히 유엔에서는 2011년 기업과 인권에 관한 이행원칙 (United Nations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아래 UNGP) 을 승인을 하고, 그 이후로 각종 유엔의 인권 조약기구심의와 실무그룹의 보고서를 통해 기업이 인권 존중 의무가 있으며, 국가는 기업의 인권침해로부터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책임이 있고, 피해자들이 적절하게 구제책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원칙에 대해 동의가 이루어져 왔다.

한국 정부는 2011년 아동권리위원회 심의부터 2015년 자유권위원회와 2017년 사회권 심의까지 지속적으로 기업이 사업을 할 때 인권침해에 연루되지 않도록 하는 것과 국가가 이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에 대한 권고를 받아왔다. 특히 2016년에는 UNGP의 이행을 위해 꾸려진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Working group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의 한국 방문과 2017년도의 한국 방문 보고서 발표를 통해 한국 정부가 이행해야 하는 과제에 대해 자세하게 제시된 바가 있다.

이러한 권고를 통해 기업과 인권에 관한 NAP는 UNGP의원칙을 반영하고, 구체적인 이행정책을 마련할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조되어 왔으며, 이러한 국제적인 요구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도 기업과 인권에 관한 독립적인 NAP에대한 권고를 2016년에 발표하여 제시한 바 있다. 기업과 인권 분야에서 특히 NAP가 강조되는 것은 기존에 있는 제도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 – 가령 기업의 영향력은 인정되지만, 지배구조와 사업관계로 인하여 모기업/원청등에게 책임을 지게 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인권침해 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의 책임, 기업과 인권 부분에서의공기업과 조달의 역할 등에 대해 새롭게 인권의 관점을 반영한 정책을 마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법무부 초안 발표로 인하여 좌절된 기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말 발표된 제3차 NAP 기업과 인권 분야의 NAP 초안의 내용은 기존의 논의들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은 다른 의미에서 독립적인 NAP이다. 국제사회에서 권고되어 왔던 NAP는 기업과 인권 전반을 아우르는 독립적인 NAP였으나,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인권 전반에 관한 NAP의 한 부분에 포함되었다는 것까지는 이해를 하였으나, 기업과 인권 부분은 목차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우며, 맨 마지막 장에 단지 6페이지가 할애되었다는 것은 사안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과제로 설정된 내용을 살펴보면 더욱 문제가 심각한데, UNGP 이행을 위한 적극적 정책 수립을 위한 근거와는 거리가 멀고, 대부분이 막연하고 효과가 없는 선언의 나열에 머물고 있으며, 그나마 실제 이행이 기대되는 부분도 이미 제도개선이 이루어진 부분을 조금 더 구체화시키겠다는 매우 소극인 수준의과제 나열에 불과하다.

특히 한국 기업의 인권침해 피해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구제절차인 NCP (NationalContact Point, 국가연락사무소)는 독립성, 공정성, 책임성, 효과성에 대해 국제사회로부터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이루어져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개선 권고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내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마치 NCP가 이미 제대로 개편이 되었으며, 이에 대해 '홍보'만을 강화하면 된다는 식으로 과제가 설정된 점은 NAP 초안이 사실을왜곡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받게 된다.

다시, 우리의 기대

기업과 인권은 작년 유엔 사회권 위원회가 우리 사회의 인권현황에 대해 심의를 한 후, 특별히 18개월 내에 이행을 하고 재보고를 할 것을 촉구한 긴급 3대 과제이다. 여기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하청업체, 공급업체, 가맹점 등 다양한 형태의 공급망의 원청기업이 공급망 상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에 대해 식별, 예방, 회피하고 인권 침해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라는 것과 국민연금, ODA 등 공공금융기관이 인권 침해에 연루된 해외 한국기업에 무분별하게 투자 및 융자, 보조금 지원을 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특별히 해외 한국기업에 의해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구제책에 적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대책을 마련할 것이 강조되고 있다.

그동안 기업이 인권침해에 연루되는 것을 손 놓고 볼 수밖에 없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기업이 인권존중의무를 이행하고 국가가 기업의 인권침해로부터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구제책을 마련하는 것이 모두가 동의하는 원칙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업과 인권이라는 소제목 외에 남은 것이 없는 정부의 3차 NAP 초안은 과거의 원칙과 함께 떠나보내고, 새로운 원칙을 근거로 하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과제들이 마련되는 기업과 인권 NAP가 수립될 것을 우리는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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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신영 시민기자는 공익법센터 어필 소속 변호사입니다.



태그:#기업과인권,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NAP, #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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