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최근 '선거연령 하향 4월 국회 통과 촉구 청소년 농성'을 통해 만 18세 선거권이 이슈가 되었다. 이전에도 청소년의 목소리는 존재하였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또한 청소년은 유권자, 표를 가진 사람이 아니기에 국회에서도 청소년 의제는 우선 입법 과제로 여겨지지 않았었다. 늘 다음, 뒷전이었다. 이전과 달리 최근에 '만 18세 선거권'이 주목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조차 '청소년답지 않게 농성을 한다는 점'이었다.

평소 사람들은 청소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했기에 주장하는 것, 요구하는 것조차 '청소년스럽지 않음'으로 치부되는 것일까? 어른들 또한 나이가 어렸던 존재였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사회에서 존재했던 그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 속에는 여전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받는 차별은 여전하다. 나이가 어리다는, 어려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받았던 차별의 순간에 함께 저항하여야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올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청소년은 없다

청소년은 단지 '귀여운 존재, 착한 존재, 순수한 존재, 희망, 꿈, 미래...'이어야 하는가? 지금까지 청소년을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그 존재본질을 축소하고 경시했으며, 사회의 한 주역으로 인정하기를 망설여 왔다. 청소년은 소유의 대상으로, 기본 교육 체제의 대상으로만 인식돼왔다.

그렇기에 청소년의 삶은 그저 희망이 넘치지도 즐겁지도 않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지치기에 절박한 삶을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학교는 청소년이 겪는 차별에 대해서는 차별이라 느끼지 못하도록, 당연한 것이라 느끼도록 모든 것에 아무 말 할 수 없게 길들이는 교육을 한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남성 담임교사에게 1년 동안 성폭력을 당했다. 다른 학년 학생들에게 담임교사에게 성폭력을 겪었다는 소문을 미리 들었기에 너무나 두려웠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몸을 함부로 안는 것은 물론 자신의 다리 위에 앉히는 등 성추행을 했다. 이외에도 여성용 화장실에 여학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들어왔으며 몸을 만지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이 너무 싫어서 주변 교사에게 "담임선생님이 이러시는데 저 제발 도와주세요. 저 말고도 다른 친구들한테도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요."라고 했다. 하지만 담임교사는 오래된 교직 생활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나의 이야기는 무시되었다. 그래서 외부 상담 교사가 학교에 교육을 왔을 때 "담임선생님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있는데 도와주세요."라고 부탁드렸다. 하지만 "선생님이 설마 그러시겠어."라는 답변밖에 들을 수 없었다. 이렇듯 청소년에게 발생하는 폭력에 대해 그 누구도 관심가지지 않는다.

몇 년이 지난 뒤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지만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체육교사는 내 볼을 만지며 '선생님이 소개시켜주는 사람이랑 결혼해. 너는 내가 많이 아끼니깐'이라는 말을 하굣길에 했다.

이외에도 학교감은 친구가 내 무릎 위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어 그 자리 탐나네."라며 지나가고, 지진이 났을 때에도 "시집은 가보고 죽어야 될 텐데."라며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발언을 하였다.

학생지도부부장 교사는 생활지도를 한다는 목적으로 여학생의 다리를 볼펜으로 찔렀으며, 치마를 올려보라는 이야기도 하였다. 치마를 규제할 때 의자 위, 책상 위에 올라가라고 하여 치마 길이를 단속하는 경우도 있었다. 치마가 길이를 떠나 의자나 책상 위에 올라가게 되면 치마 속이 다 보이기 때문에 수치스러웠다. 이 일은 내가 유독 불행하거나 눈에 띄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며,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학교, 교사는 이야기 한다, 교육의 한 과정이라고,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이러한 교육 과정을 거쳐 청소년을 민주시민으로 자랄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청소년이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단지 나이, 성별 때문에 존재하는 차별은 나를 민주시민이 아닌 더 무력한 인간으로 만든다.

청소년이 존재하는 한 모든 곳에서 차별이 따른다

학교 내의 차별은 물론이고 가정, 길거리, 정부기관, 금융기관, 집회, 농성 등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차별은 늘 함께 따라다닌다. 청소년의 차별은 차별로 인정받기도 어렵고 당연히 겪어야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청소년 경시 문화, 나이 어린 사람에 대한 경시 문화는 사회 깊숙이 뿌리 내려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겪었던 폭력, 혐오들이 과연 차별이 아니면 무엇이냐 묻고 싶다

가정에서 나는 여자인 어린 존재였기에 허리가 아프다고 해도 엄살이라며 몇 년 동안 병원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남자인 형제가 허리가 아프다고 한 번 이야기하자 병원에 바로 가게 되었고 나는 함께 병원에 따라가 아프다고 수십 번을 말해서야 드디어 X-ray를 찍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가정에서 유일하게 나에게만 집에 들어와야 되는 통금시간이 존재하였고, 핸드폰을 압수당하며 메신저 내용을 모두 확인하는 등 사생활의 대부분을 감시당했다. 이는 내가 더 어리기도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심한 차별의 대상이 된 것이다.

길거리에서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말, 욕설을 듣기는 일수였다. 길을 가다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는 성희롱을 당한 적도 있다. 정부기관 '시청, 국회, 동사무소 등'에서도 여기올 사람이 아닌데 온 사람으로 취급받은 적이 대다수였고, 금융기관 '은행'에서는 보호자가 없이는 통장을 다 사용하여도 새 통장을 받을 수도, 통장 비밀번호를 변경할 수조차 없다.

이 모든 곳에서는 공통적으로 교복을 입고 가는지, 사복을 입고 가는지에 따라 사람의 태도가 달라진다. 교복을 입고 있을 때에는 누가 봐도 학생인 것을 알 수 있기에 더욱더 무례하게 행동한다. 이러한 일들은 내가 단지 어려보이는, 약해보이는, 만만해 보이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은 차별이 아니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집회와 농성은 선거권이 없는 나에게는 중요한 요구방식이며, 주장방식이다. 하지만 나는 집회나 농성을 하면서 "나라 말아먹을 년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 1야당의 당대표 라는 사람은 기습시위를 보고 "좌파들은 저런 거 잘해."라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과 최선의 노력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나는 그저 우습게 보이는 사람이다. 이외에도 나는 천막에서 농성을 하는데 밤늦은 시간 대한애국당 당원들이 찾아와 막말을 하며 내 얼굴을 카메라로 찍어가곤 했다.

농성장 안에도 허락 없이 들어오려 하며, 소리 지르고 욕설을 사용하여 위협감을 주었다. 나를 비롯한 청소년들이 이렇게 절실하게 발버둥 칠 때에도 청소년의 인권을 짓밟는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선동 당한거야.", "청소년 참정권 외치지 말고 공부나 해."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내게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라는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내가 당했던 것들이 사회에서 청소년의 위치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18년을 살아오며 인간으로 존재한 적은 단 한순간도 없다. 나를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봐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손에 꼽히는 정도일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나도 스스로의 삶을 대변하는 시민으로 살고 싶다. 이러한 사회가 보장된다는 것은 분명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닌 사회에서 소외 받아온 자,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자들 모두가 소외받지 않는 세상, 시민으로 인정받는 세상의 밑거름일 것이다. 본인의 삶에 존재하는 차별이 없는 세상은 청소년의 존재를 인정하며 함께 저항하는 것을 시작으로 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은선님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대표이자 청소년인권연대 추진단원입니다. 기고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https://equalityact.kr/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헌법의 평등이념과 포괄적인 차별금지를 실현하는 인권기본법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자 실천하는 연대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