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클래식을 모르고 남편은 영화를 몰라요."

배우 윤정희의 말이다. 윤정희는 1944년 생이니 일흔이 넘었다. "난 미장원엘안 가요. 남편이 잘라줘요." 그는 말한다.

영화를 모르는 피아니스트 남편과 클래식을 모르는 영화배우 아내가 함께 살아온 지가 무려 42년. 기나긴 세월 동안 그들이 행복한 부부로 살아온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

윤정희 특별전, 윤정희와 백건우 22일 오후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상암 본원에서 열린 영화배우 윤정희 특별전 개막식에서 배우 윤정희와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자리에 앉아 있다.

▲ 윤정희 특별전, 윤정희와 백건우 2016년 9월 22일 오후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상암 본원에서 열린 영화배우 윤정희 특별전 개막식에서 배우 윤정희와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자리에 앉아 있다. ⓒ 이정민


일흔을 훌쩍 넘긴 배우 윤정희가 경남 함안을 찾은 건 지난 11일 열린 부군 백건우의 음악회 때문이었다. 그들은 음악회 전날 함안박물관을 찾아 한동안 아라가야에 취했던 것으로도 알려진다. 그리고 그들은 함안군민들에게 '꿈결같았던 그 봄밤'을 금요일 저녁, 선사해 주었다.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백건우는 1496년 서울 출생이다. 그는 1956년에 데뷔무대에서 국립교향악단과 협연을 가졌다. 불과 일곱살 때, 그것도 국립교향악단과의 협연을 통해 데뷔한 것이다. 1971년에는 미국 줄리아드 스쿨을 졸업했고 1972년 라벨 전곡 연주로 뉴욕에서 데뷔했다.

그런 그의 연주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클래식에 문외한인 기자로서는 베토벤이나 쇼팽과 같은 대가들이 수백 년전쯤, 오선지에 수놓은 음표들이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격정적인 환희로, 폭풍우치는 열정으로, 때로는 달콤한 봄 향기로 다가오는 모습에 본능적으로 취했을 뿐이다. 그것도 무대에 오른 단 한 대의 그랜드피아노를 통해.

"클래식이란 건 어려운 음악장르다"라는 생각도 가질 수 없었다. 그냥,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들려오는 것만으로도 한편의 그림같은 영화를 보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금요일 저녁, 리사이틀이 진행되던 그 시각 한 아이가 함안문화예술회관 로비에 앉아 있었다. 함안군 가야읍 중앙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아이는 감기가 심하게 걸려 기침이 나오는 바람에 로비에 나와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는 "큰 선생님의 연주를 망치는 것이 두려웠다"고 했다.

함안인의 문화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바로 이런 아이들에게서부터 비롯되고 있지는 않을까? 함안이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 것이다.

청년 백건우와 트로이카 배우 윤정희, 파리서 조우하다

백건우 사인회    11일 오후 7시30분부터 열렸던 백건우 피아노리사이틀 후 백건우씨가 CD 팬 사인회를 열고있다.(뉴스인함안)

▲ 백건우 사인회 11일 오후 7시30분부터 열렸던 백건우 피아노리사이틀 후 백건우씨가 CD 팬 사인회를 열고있다.(뉴스인함안) ⓒ 뉴스인함안


다시 두 분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백건우가 배우 윤정희를 만난 건 1971년쯤으로 알려진다. 뮌헨올림픽 전야제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윤이상 선생의 소개로 만났다. 윤정희는 2010년쯤 한 방송에 출연 당시의 얘기를 털어놨다.

"오페라가 끝난 후 식사자리에서 한 청년이 윤이상 선생님 옆에 있었다. 알고봤더니 백건우라는 피아니스트였다. 윤이상 선생님하고 잘 알고, 독일 뭔헨에서 연주 여행을 하다가 우리나라 '심청이' 연극을 하니까 그 자리에 오게됐다 하더라"고 말했다.

윤정희는 "다함께 술을 마시러 갔는데 조용히 있던 사람이 꽃 한송이를 줬다. 평생 그렇게 꽃을 처음 받아봤다. 그래서 짜자자잔~"이라고 운명적인 만남의 시작을 전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트로이카 배우로 명성이 자자했던 윤정희의 귀국으로 이 만남은 단발에 그치고 만다.

그후 2년 뒤 윤정희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면서 그들의 운명은 시작된다. 영화의 나라 파리가 너무 아름다워 유학을 결심한 윤정희가 파리에 나타났고 그들은 재회하기에 이른다.

"어느 날 친구와 영화를 본 뒤 자장면이 먹고 싶어 파리의 광명이라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문을 열고 백건우씨가 들어왔다. 그 때 천생연분이구나 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몽마르뜨 언덕의 낡은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그리고 1976년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세기의 커플 탄생이 이뤄진다.

그리고 세월이 다시 흘러 2018년, 윤정희는 백건우의 영원한 반려자로, 피앙새로, 비서설장으로 그와 연주여행을 하기도 하며 세계를 누비면서 살고있다. 남편 백건우는 아내 윤정희를 "현실이라는 땅으로 끌어내려도 다시 떠오르는 풍선과도 같다"고 말한다.

윤정희 배우는 2018년 5월 11일 그 저녁에도 함안문화예술회관의 무대와 가장 먼, 맨 뒤 좌석쯤에서 영원한 반려자 백건우의 연주를 들었다.

백건우피아노리사이틀 함안문화예술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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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언론사 [뉴스 in 함안]의 발행인입니다. 경남 함안은 아라가야의 옛 땅입니다. 오마이뉴스를 하루에 2~3차례 들를 정도로 열렬 독자이고, 개혁이라는 화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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