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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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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라는 이름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
(아버지와 남자)

사위가 있는 장인으로 사는 요즈음 아버지는 행복하다. 사위라는 내 편이 하나 더 생겼다는 기쁨에 꿈속에서조차 얼굴에 미소가 번질 지경이다. 아버지가 아닌 그냥 남자로 살 때, 두물머리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강물마저 술에 취한 듯 비틀비틀 어두운 밤길을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더니 사위를 얻은 뒤로 두물머리 강가에 갈 일이 없구나. 두물머리 강가는 아버지가 아닌 남자로 살 때 외로움의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아버지도 위대하다.'

남자로 살 적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가 않았다. 수도꼭지가 고장 나면 이웃에 철물점 사장님이 알아서 고쳐주었고 휴대전화도 아무거나 싸구려를 사용해도 불편한 줄 몰랐다. 동무에게 술 한 잔 하자는 문자나 보내는 일에 고급 휴대전화가 무슨 소용이랴?

아버지가 되고 나서 영화에 나오는 가제트와 맥가이버가 부럽지 않게 되었다. 누구에게 배워서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이름이 그렇게 만들었다. 물이 줄줄 새는 수도꼭지를 고치고 가스레인지에도 건전지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두 딸과 소통을 위해서 고급 스마트폰이 필요했으며 딸의 성장일기를 쓰느라 노트북이 필요했다.

그냥 남자로 살 적에는 여자 때문에 사랑이라 이름 붙여진 눈물로 숱한 밤을 보냈지만, 아버지가 되고부터 두 딸과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슴에 대못을 박고 살아간다. 남자로 살 적에는 절망을 만들어가며 살았지만, 그게 멋인 줄 알았지만, 아버지가 되고부터 절망은 한이 되어 가슴을 저리게 만든다.

남자로 살 적에는 할 말을 다 하고 살았지만, 아버지가 되고 나서 가슴속 할 말들은 가득해도 손바닥만 비벼댈 때가 많았다. 안항(雁行)이라고 했던가? 오와 열을 맞춰 날아가는 대열의 맨 앞 기러기 헛기침 한 방에도 대열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생각에 두 딸의 눈치를 보며 침묵을 했다.

때로는 아버지라는 이름이 버거워 한 줌의 눈물을 가로등 불빛 아래 던져두고 웃는 연습을 한 다음 대문을 들어설 때도 있었다. 가끔은 아버지가 아닌 남자로 살 때가 그립기도 하지만,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쯤 더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와 회한이 있지만,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아볼 만한 특별한 그 무엇이 발목을 잡는다.

사랑하는 딸아!

이제는,
아버지라는 이름이 인생의 즐거움이 되었구나.
아버지라는 이름이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구나.

소주병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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