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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가지 나물을 먹을 수 있는 풍성한 계절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바람 한 점 없이 이슬비에 옷이 젖듯 슬금슬금 내리는 비는 산야의 초목을 그대로 적셔주고 있다. 빗방울을 듬뿍 머금은 노란장미가 너무나 청초하고 아름답다. 냉이꽃과 보리꽃도 비를 흠뻑 머금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하루종일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를 맞은 산야
 하루종일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를 맞은 산야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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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봄에는 100가지 나물을 먹을 수 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농약을 전혀 치지 않는 금가락지(필자가 사는 곳의 별칭) 텃밭에는 무공해 나물천지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쑥이나, 민들레도 봄비를 머금고 여린 잎이 생생하게 솟아올라오고 있다. 취나물과 두룹, 머우대, 명아주도 봄비에 젖어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봄에 나는 싹들은 강한 햇빛에 독이 오르고 다소 빳빳해진 풀을 제외하면 모두 다 먹을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약간 독이 있는 풀이라도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물에 담갔다가 먹으면 탈이 없다.    

봄나물로 풍성한 5월. 위로부터 두룹과 취나물, 명아주나물, 쑥, 머우대
 봄나물로 풍성한 5월. 위로부터 두룹과 취나물, 명아주나물, 쑥, 머우대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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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기바(耆婆)라는 인도의 전설적인 명의가 있었다. 그는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귀의를 하여 풍병과 아나율의 눈병, 아난의 창병을 치료한 명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도 스승으로부터 명의로 인정을 받기까지는 혹독한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어느 날 그의 스승은 기바에게 명했다.

"100일 동안 약이 될 수 없는 풀 3가지를 구해 오라." 

스승의 분부를 받은 기바는 100일이 아니라 3년을 넘게 쏘아 다녔지만 결국 약이 될 수 없는 풀을 구하지 못하고 풀이 죽어 빈손으로 스승에게 돌아갔다. 그러자 스승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마침내 그를 위대한 명의로 인정해주었다고 한다.  

금년 봄에는 일주일 걸러 비가 내리니 텃밭에 일부러 물을 주지 않아도 봄채소들이 생생하게 잘 자라고 있다. 갖가지 봄나물 또한 너무 여리고 좋다. 자연의 비만큼 작물에 좋은 약은 없다. 이렇게 비가 자주 내려주니 지천에 봄나물이 싱싱하게 돋아나 있다. 인도의 명의 기바의 사례처럼 봄에 나는 여린 풀은 체질에 맞게 잘만 먹으면 모두 약이 된다.

상추밭
 상추밭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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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삭막하고 적적했던 이곳 임진강변 금가락지는 봄이오면 방문객들로 붐빈다. 임진강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금가락지는 봄이 오면 야채, 나물 등 먹거리도 풍성하고 볼거리도 제법 많다. 지난 5월 3일 날은 병용 아우와 박성하 선생님이 다녀갔다. 6일 아침에는 텃밭에서 풀을 뽑으며 양배추에 웃거름을 주고 있는데 정애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요산 역에 도착하여 전곡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고 한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차를 몰고 전곡으로 마중을 나갔다.

전곡 국민마트에서 아내가 주문한 우유 등을 사들고 있는데 정애자 선생님과 심명자 선생님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두 분은 여행 동무들이다. 나보다 연식이 높은 분들인데도 매우 건강하고 씩씩하다. 나는 두 선생님을 모시고 숭의전으로 가서 약수를 마시고 약수를 한통 가득 채웠다. 

숭의전 어수정 약수터
 숭의전 어수정 약수터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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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 정도 숭의전 어수정 약수터에 가서 태조 왕건이 마시던 어수정(御水井) 약수를 한통씩 받아와 식수로 마시고 있다. 또한 금가락지를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어수정 물맛을 보게 하고, 곁들여 숭의전에 깃든 태조 왕건의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나는 가끔 숭의전 문화해설사 역할도 겸하고 있는 셈이다.

약수를 맛본 두 선생님은 물맛이 너무나 좋다고 한다. 숭의전의 내력을 설명하며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본 후, 두 분을 모시고 금가락지로 돌아왔다. 아뿔사! 물통을 그만 어수정에 두고 그대로 두고 오질않았는가! 숭의전 해설에 너무 열을 올리느라 물통을 싣는 것을 깜박 있어버린 것이다.

"허허, 이거 치매 초기 아니요?"
"호호호, 너무 염려 마세요. 40년대(1940년 대 출생) 연식이면 그럴 수도 있어요. 그건 치매가 아니라 건망증이지요."

놀려대는 아내와 두 선생님을 뒤로 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나는 다시 숭의전으로 가서 약수를 싣고 오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약수를 싣고 집에 오니 응규 부부가 그의 누님과 누이랑 함께 와 있었다. 금가락지 텃밭에서 무공해 쑥과 나물을 캐러 온 것이다. 누님과 누이는 뽕잎을 따고, 두 분 선생님은 쑥을 뜯었다.

하얀 진액이 뚝뚝 떨어지는 상추와 향긋한 봄나물

점심에는 텃밭에서 바로 뜯어온 상추로 쌈을 먹었다. 하얀 진액이 뚝뚝 떨어지는 상추맡이 그만이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뽕잎과 쑥을 가마 솥에 삶아서 뽕잎은 나물을 묻히고, 쑥은 쑥국용으로 냉장고에 보관을 했다. 저녁식사는 뽕잎나물과 쑥국으로 식탁을 장식했다. 식탁에 봄 내음이 가득한 나물이 입맛을 한껏 돋운다.

상추
 상추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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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선생과 응규 일행이 떠난 그 다음날에는 영이와 경이가 어버이날을 챙긴다고 금가락지로 왔다. 아이들에게는 쑥을 캐는 대신 상추를 뜯는 체험을 하게 했다. 아이들은 생생하게 자란 상추를 뜯으며 너무 좋아 한다. 그런데 오후에는 친구 부부 두 쌍이 예고도 없이 서울에서 금가락지를 향해 출발한다고 전화가 왔다. 아이들은 우리가족들만 오롯이 어버이날을 보내고 싶었는데 친구들이 온다고 하니 다소 당황해 한다. 허지만 내가 좋아서 찾아오는 손님을 어이 반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사람 사는 곳에는 사람이 끓어야 한다.

허브빌리지에 먼저 들른 친구들은 점심을 먹은 후, 오후 3시경에 집에 도착을 했다. 물론 그들의 목적은 허브빌리지 라벤더축제를 보는 것도 있지만 역시 쑥과 뽕나무 잎 등 봄나물을 캐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담벼락에 자란 뽕나무 가지를 잘라서 뽕잎을 따기 편하게 배려를 해주었다. 해질 무렵 그들은 뽕잎과 쑥, 그리고 아내가 챙겨준 상추 봉지를 바리바리 들고 서울로 출발했다.

"꼭 친정에 왔다 가는 기분이 들어요!" 

값으로 치면 얼마 되지 않지만 봉지를 바리바리 든 그들은 모두가 부자가 된 듯 행복한 마음으로 금가락지를 나섰다.

봄비에 젖어 뚝뚝 떨어져 내리는 영산홍
 봄비에 젖어 뚝뚝 떨어져 내리는 영산홍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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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영산홍 꽃잎이 빗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 둘 떨어져 내리고 있다. 붉은 꽃잎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처절하게도 보인다. 비는 내일 새벽까지 내린다고 한다.

내일 아침이면 저 꽃잎이 다 저버리고 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다소 꽃들을 향해 슬픈 미소를 지어 보냈다. 허지만 꽃은 피면 지고, 다시 내년 봄에 다시 피어날 것이 아니겠는가? 그냥 꽃이 피면 피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이내 마음의 평정을 곧 찾을 수 있었다.

내일 아침에는 봄비를 맞고 부쩍 자란 두릅도 따고, 방충나물, 상추들도 따야 하고... 눈코 뜰새 없이 바빠질 것 같다.


태그:#봄비, #봄나물, #숭의전 어수정, #상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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