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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남편과 부부싸움 하던 중에 "당신이 페미니스트야 뭐야?"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때의 나는 페미니즘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많이 당황스러웠다.
 몇 해 전, 남편과 부부싸움 하던 중에 "당신이 페미니스트야 뭐야?"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때의 나는 페미니즘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많이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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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남편과 부부싸움 하던 중에 "당신이 페미니스트야 뭐야?"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때의 나는 페미니즘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많이 당황스러웠다. 페미니스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했고, 그 말을 하던 남편의 말투나 태도로 보아 내가 "그렇다!"라고 말하는 순간 내 자신이 '사회부적응자', '테러리스트', '불순세력' 등 이 사회에 존재하면 안 되는 인간상임을 시인하는 꼴이 되는 분위기여서 이렇다 할 대꾸를 못 하고 침묵했다.

남편이 내게 던진 "페미니스트야 뭐야?"라는 말은 질문의 문장이었지만 사실상 "당신은 상식적으로 이해 못할 사람이야!"라는 공격의 말이었다. 내가 느낀 불편한 감정에 대해 말했을 뿐인데, 그게 뭐 못할 말이었다고 사회부적응자 취급을 받아야 했는지 억울했다. 이렇다 할 사과도 이해도 받지 못한 채 '나=페미니스트=문제적인 사람'이 되었고, 답답함은 여러 질문이 되었다.

'페미니스트는 어떤 사람인가?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인가?'

남편이 나를 향해 '페미니스트'라는 말로 공격할 때 마음이 불편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페미니스트의 이미지는 '쎈', '독한', '이기적인', '상식 밖의', '불행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페미니스트라는 비유에 화가 났던 거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때의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가 얼마나 깊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랬듯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잘 모르면서 부정적인 방식으로 이해한다. 남자를 싫어하는 여자들,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여성우월주의자, 피해의식에 찌든 불평·불만 세력들, 거짓과 선동을 일삼으며 갈등을 야기 시키는 사회 악, 성관계에 자유롭고 문란한 여자들, 편협한 생각을 하는 사람, 모성애가 없는 여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특권을 바라는 역차별주의자 등 페미니스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하다.

'페미니스트=메갈, 꼴페미, 페미나치, 꿀빠니즘'로 낮잡아 불리기 때문에 성차별에 반대하며 성평등 운동에 동의하는 사람들조차 "내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으로 페미니스트와 선을 그으며 말문을 연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남성'에 반대하고 '여성'의 권익에만 목소리를 내는 반사회적인 것이 아니라고. 우리 사회는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보다 '오해'가 깊다고. 우리 모두는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페미니즘의 가장 큰 매력이자 피곤함은 끊임없이 반성하고 성찰하게 한다는 거다.
 페미니즘의 가장 큰 매력이자 피곤함은 끊임없이 반성하고 성찰하게 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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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으로 바뀐 삶의 태도

페미니즘을 접하던 초반에는 성별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남성들을 미워했다. 여성인 나를 피해자로, 남성을 가해자로 이해하며 남성들과 싸울 준비에 충실했다. 남편과도 참 많이 싸웠다. 내가 경험하는 불평등과 차별의 원인을 남성들에게 돌리며 남성들을 '적'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공부하면 할수록 그런 나를 돌아봐야 했다.
 
페미니즘은 말하는 사람마다 접근 방식이나 설명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가부장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다. 페미니즘이 공격하는 것은 '남성'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착취, 지배, 차별하는 가부장 사회의 '폭력성'이다. 단순히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차에 대한 문제 제기를 '넘어' 약자의 입장에서 부당한 사회 현상을 파악하게 한다.

또, 가부장 사회에서는 '여성'도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한다. 페미니즘은 남/여의 구분에 반문하고, 기존 사고의 경계를 흐리는 인식론이다. 남자는 강자(가해자)고 여자는 약자(피해자)라는 분절된 생각은 잘못된 고정관념이고, 우리는 약자인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강자인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이해하고 저항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성 소수자, 장애인, 가난한 사람, 어린 사람, 노인 등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로 이어진다. 이 사회에서 고통당하는 '약한'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하고, 내가 외면하고 싶은 문제들까지 가혹할 정도로 들춰내며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페미니즘은 내 삶을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끌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전에는 다른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내 삶을 사느라 타인을 이해할 의지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페미니즘의 가장 큰 매력이자 피곤함은 끊임없이 반성하고 성찰하게 한다는 거다. 그동안 쌓였던 고정관념과 편견이 하나씩 허물어지면서 사고는 더 유연해졌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나와 다른 타인들과 소통하는 자세를 배우고 있다. 페미니즘은 때론 위로와 힘이 되어 주고, 때론 채찍질하며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킨다. 

오해는 왜 생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페미니즘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은 부정적일까. 미투 운동 이후 페미니즘 이슈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지만 '안티페미' 문화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크게 세 가지의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첫째는 언론에서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모습만을 부각해서 확대 재생산하며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강화하고 있다는 거다.

최근 홍익대학교의 미대 누드크로키 수업에 모델로 참여한 남성의 나체사진이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를 통해 유출됐다. 워마드 이용자들은 누드모델의 나체 사진을 두고 성적으로 조롱했고, 이 사건은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다", "페미니스트는 사회악이다"와 같은 부정적인 담론을 만들고 있다. 

페미니즘 전문가 중에는 "타인에 대한 폭력을 성찰하지 않는 것을 페미니즘이라고 할 수 없다", "몰카는 페미니즘 운동이 아닌 명백한 범죄다"라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러한 혐오와 조롱에 대한 비판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대중들과 언론은 자극적인 내용만 보려고 하고 페미니즘의 가치를 깎아 내리기를 좋아한다.

나는 여기서 워마드 이용자들에 대해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 페미니즘이 뭔지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극히 일부의 잘못된 행위를 두고 마치 페미니스트가 전부 그런 사람인 듯 환원하는 모습을 지적하고 싶다. 페미니스트는 단일한 모습이 아니고,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완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99명의 긍정적인 사고와 실천보다 단 한 명의 잘못을 전체인 듯 낙인찍는다.  

타인의 신체를 불법 촬영하는 행위는 성별을 막론하고 한 사람의 인권을 극심하게 침해하는 중범죄인데 최근 5년간(2012~2016) 불법촬영범죄(속칭 몰카)로 검거된 1만6201명 중 1만5662명(98%)이 남성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남성 전체를 '정신에 이상이 있는 사람'으로 몰지는 않는다.

늘 그렇듯 우리 사회는 남성들의 잘못은 '개인의 부족함'으로 분리하지만 여성의 잘못은 '집단의 문제'로 확대하여 비난한다. 여성들에게 더 높은 도덕적 기준과 엄벌을 요구하는 이중 잣대는 페미니스트에게 더 가혹하게 적용된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이해’보다 ‘오해’가 깊은 한국 사회
 페미니스트에 대한 ‘이해’보다 ‘오해’가 깊은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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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가치는 존중과 배려와 같은 상호 만족과 성장으로 공동체의 더 큰 행복을 이루는 것인데, 페미니즘을 실천해야 할 페미니스트들은 개인주의를 실천하는 것에 익숙하다. 온도 차가 너무 크다.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대한 자본주의의 가치에 압도당하며 산다. 공동체보다는 개인에 집중하기 바쁘다. 이타심보다 이기심을, 협력보다는 경쟁을 배운 사람들이 어느 날 페미니즘을 공부했다고 해서 타인의 감정을 살피고 존중하는 일에 능숙해질 리가 없다. 이론과 실천은 어느 학문이나 어렵다. 이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어릴 때부터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세 번째는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 자체를 잘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초중고 과정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공부해야 하고, 학습의 필수 과정은 지루한 독서다.

그런데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페미니즘 열풍으로 서점가에 페미니즘 관련 도서의 판매량이 급증했다고는 하지만 구매자의 79.5%가 여성이다. 정작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할 남성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대화가 되지 않아서 관련 책을 추천해도 관심이 없다.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가 없이 페미니즘을 비난하는 꼴이다.

이기적이고 공격적이라는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심각한 오해다. 성별, 자본, 장애 유무, 나이, 인종, 학력 등 정체성이 달라도 각자의 존재 자체로 충분히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를 상상하는 사람들, 약자의 슬픔과 상처를 그 누구보다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연대하는 사람들, 평화롭고 평등한 사회를 향한 가능성과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 최소한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다.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뒷짐 지고 있다가 꼬투리 잡을 일이 생기면 너나없이 달려들어 손가락질하며 욕하기 전에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이 왜 필요한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함께 읽고, 듣고 고민하며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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