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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휴학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첫째가 노트북을 켜고 앉아 있다. 심각한 표정이다. 오후 2시에 육군 공석(빈자리) 신청이 예정되어 있다. 공석 신청은 입대를 신청했다가 취소한 자리에 대타로 들어가는 거다. 그래서 공석 신청에 성공하면 빠르면 일주일 안에 느리면 두 달 뒤 입대해야 한다. 첫째 친구들은 거의 군대에 가서 남은 친구가 몇 없다 했다.

공석신청도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올해 들어 올라온 공석을 계속 신청했는데 성공한 적은 없었다. 정각 두 시에 접수를 해야 한다며 첫째가 네이버 시계 창을 열어 두었다. 나는 '제발 이번만은'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아이에게 부담될까 관심이 없는 척 내 일을 하고 있었다.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아, 뭐야?" 하며 한탄을 한다. '또 안 됐구나' 싶었지만 입을 꽉 다물었다. 이러다가 다음 학기에도 집에 있는 거 아닐까? 속이 답답해졌다.

"어, 이거 신청된 거야? 엄마, 된 거 같아."

첫째가 말을 했다. 이게 뭔 소린가?

"엄마 됐어. 됐어. 아까 5월 거 신청했는데 안 돼서 실망하다가 정신 차리고 다시 4월 신청했더니 된 거야. 4월은 미달이었나 봐. 와!"

그렇게 아이는 4월 말로 공석(빈자리) 신청이 되었다. 공석을 신청한 지 일주일 만에 군대에 가게 된 것이다. 첫째는 짧은 시간 군대 갈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쓰던 핸드폰을 군정지하고 나라사랑 카드를 발급받고 학교에 가서 군 휴학 처리를 하고 친할아버지댁과 외할머니댁에 찾아가 인사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졸업한 고등학교에 가서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왔다. 게다가 여분의 안경을 맞추고 다른 입대 준비물까지 사느라 바빴다.

아이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나는 입대가 확정되어서 좋기도 하다가 아이가 군에서 잘 적응을 할지 몸과 마음 건강하게 잘 지낼지 한편으론 걱정이 되었다. 첫째 입대 소식을 주변에 알리자 '눈물이 나니 손수건을 준비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어떤 엄마는 '꼭 울라'고 주문을 하기도 했다. '눈물 나면 울면 되는 거지. 뭘? 꼭 울어야 해?' 눈물까지 계획하나? 

첫째와 잠시 헤어진 날

1월 2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 해군 교육사령부 연병장에서 열린 무술년 첫 '해군병 646기 및 해경 386기 입영식'에서 입영장병들이 거수경례하고 있다.
 1월 2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 해군 교육사령부 연병장에서 열린 무술년 첫 '해군병 646기 및 해경 386기 입영식'에서 입영장병들이 거수경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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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하는 날이 되었다. 부대에 도착하자 다른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열심히 사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굴하지 않고 기본 사진만 찍었다. 그리고 식이 열리는 강당에 첫째와 들어서는데 실내가 이미 꽉 차 있다. 앉을 자리만 없는 것이 아니라 서 있을 자리도 많지 않았다. 군복 입은 군인에게 물었다. 입소식이 끝나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한 시간은 걸린단다.

초등학생 막내와 이 답답한 공간에서 한 시간을 서서 어찌 보내나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막내를 데리고 창 쪽으로 들어갔다. 벽에 기대기라도 해야 막내가 짜증을 덜 낼 거 같았다. 남편과 첫째가 강당 맨 뒤에 같이 서 있고 나와 막내가 창가에 있었다.

그렇게 15분 정도 진행이 되었을까? 갑자기 사회자가 훈련병들만 운동장으로 나가라는 것이 아닌가? 이제 가족과 떨어지는 거라고 한다. 이게 뭔 소리인가? 한 시간이 아니라 벌써 끝이 나다니. 이제 첫째와 헤어지는 것이란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의 손이라도 잡아야 할 거 같았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막내와 첫째에게 갔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잘 가" 인사말을 하며 첫째를 안았다. 이제 이 아이를 언제 다시 안을 수 있을지 모른다. 어떻게 자식을 아는 이 하나 없는 이 휴전선에 두고 발길을 돌려 내가 집으로 가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왈칵 나왔다. 내 눈물과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들은 막내가 눈이 동그래지며 놀란다.

"엄마 울어?" 당황해하는 막내를 안심시키기보다는 첫째를 눈에 담아야 했다. 그리고 첫째의 손의 촉감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의 눈가도 젖어간다. 이 순간 첫째를 울리고 싶진 않다. 처음 보는 동기들 앞에서 창피해할 거 같았다. 첫째가 더 울까 걱정이 되어서 눈물을 참기로 했다. 참은 울음을 속으로 먹었다. 그리고 뭘 또 해야 하지. 그래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한다.

"사랑해."
"저도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냈다. 강당 출입구로 첫째가 빨려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모자를 쓴 청년들만 밖으로 나간다. 우린 뭘 하는 걸까? 가족은 나가지 말고 대기를 하란다. 막내는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본다. 엄마가 우니까 걱정이 되나 보다. 형이 군대에 간다는 게 형이 쓰던 방을 자기가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는 아이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힘이 빠져 서 있을 기운이 없다. 훈련병이 나가고 나니 좌석이 군데군데 옥수수 알 빠지듯 비었다. 빈자리에 쓰러지듯이 앉았다. 머리가 멍하다.

5주 뒤 수료식 때 꼭 보자

마이크를 든 장교는 뭔가 설명을 한다. 훈련병에게 음성 메시지를 전해 주고 싶은 분을 선착순으로 30명만 나오란다. 어쩔까 하고 고민을 하는데 서너 명의 여성이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앞에 나가니 순식간에 내 앞에 사람이 20명은 되었다. 줄을 선 사람은 엄마나 애인 또는 누나다.

남자는 한 명도 없다. 무슨 말을 할지 머리에 생각을 해 두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서 장교 핸드폰의 빨간 버튼이 코앞에서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 엄마야!"

말문이 막힌다. 준비한 말이 뭐였더라.

"○○아, 사랑한다. 몸과 마음 건강히 훈련 잘 마치고 수료식 날 보자. 파이팅!"

자리에 돌아오니 숨을 돌리니 남편과 막내는 핸드폰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심지어 막내는 "엄마, 어디 갔다 왔어?"하고 묻는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참 마음이 편해서 좋겠다. 가족들도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한다.

우리 아들이 어디 있나 찾는데 쉽지가 않다. 미세먼지 때문에 훈련병 전원이 마스크을 써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고 있으니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막내가 먼저 형이 저기 있다고 한다. 막내가 말한 곳에 우리 아이가 서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긴 팔 검은색 상의를 입고 있다. 큰애는 반소매 검정 상의를 입고 왔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가 아니다.

다시 첫째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 형 저기 있어." 이번엔 정말 우리 아들이 맞다. 그런데 어쩜 아까 그 훈련병과 첫째가 체형부터 머리 이마선까지 저렇게 비슷할 수가 있을까? 정말 신기한 일이다. 입영식 중 부대 소속 군인으로 전투 중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묵념이 있었다. 이 부대에서만 만 명이 넘는 군인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는데 그분들의 엄마는 마음이 어땠을까?

식이 다 끝나고 훈련병이 연병장을 돌아서 빠져나간다. 아들이 찾기 쉽게 손을 들었다. 아들도 손을 흔든다. '잘 가. 잘 살아 있어. 5주 뒤 만날 때까지.' 엄마가 휴전선 이 변방에 너를 두고 어떻게 집에 갈지 모르겠다. 이 오지에 널 두고 엄마가 집에서 편히 누울까? 내 눈에 여전히 아이인 널 보초 세우고 내가 어찌 집에 가서 잠을 잘 수 있을까?

힘없이 부대를 나서려는데 남편이 PX에 들렀다 가자 한다. 무슨 소리냐 물으니 남편은 들려도 된다는 안내를 받았단다. 난 듣지도 못했는데 남편은 그 말을 어떻게 들었을까? PX에 들어가서 과자 가격을 본 막내가 놀란다. 어떻게 과자 가격이 이렇게 쌀 수가 있냐는 거다.

신이 난 막내를 본 아저씨가 "그렇게 좋으면 너도 입대해" 하고 말한다. 막내는 '앵?'하는 얼굴이다. 막내는 수료식 때 또 올 거란다. 수료식 때 안 따라온다고 할까 걱정했는데 이유가 뭐든 따라온다니 다행이다. 손수건 준비해 오길 잘 했다 싶다. 첫째가 몸과 마음 건강하게 훈련 잘 받고 수료식 땐 웃으며 만나길 기도해야겠다.


태그:#입대, #손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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