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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평화의 봄

남북정상회담이 남긴 평화의 여운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예상보다 훨씬 세련되고 당당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 문재인 대통령의 깜짝 방북(?) 그리고 이어진 판문점 선언과 함께 갑자기 찾아온 평화의 봄이 아직 어색하기만 하다.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김정은과 트럼프는 서로의 핵 버튼이 크다고 서로를 위협하고 있었고, 남북관계는 남한에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안 좋은 상황이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더욱 그렇다. 급격하게 좋아진 관계가 또다시 예상치 못한 변수로 급격하게 나빠지지는 않을지, 모처럼 찾아온 평화의 봄을 만끽하면서도 모두가 노심초사하면서 바라보고 있다.

물론 많은 전문가들, 시민들은 이번 정상회담이 예전 정상회담들과는 다를 것이라 예측한다. 지난 정상회담들이 나름의 역사적 성과와 의미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를 지속적으로 이어가지 못한 반면, 이번 4·27 남북 정상회담은 문재인 정권 1년 차에 이루어졌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도 역대급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남북 정상 간의 합의가 상당 수준 현실적인 조치로 이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예측된다. 북미 정상회담이 변수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모두 여기까지 온 마당에 일정한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판을 깨는 결정을 내리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전망도 설득력이 있다.

록히드마틴 – 평화의 적, 전쟁의 친구

하지만 평화의 들뜬 감정을 충분히 누리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태도는 여전히 중요하다. 평화는 특정한 상태에 도달한 결과가 아니라 꾸준한 과정이라는 추상적인 격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렇다. 분단과 군사 갈등에서 이익을 취해온 세력, 아마도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지 않을 그 세력이 아직 멀쩡하기 때문이다.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연일 강도 높은 표현을 쏟아내며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모든 것을 비난하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자유한국당의 억지에 가까운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오히려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자유한국당은 요란하긴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세력일 수도 있다.

더 무서운 것은 군산복합체들이다. 세계 최대의 무기 회사 록히드마틴은 지난해 역대 최고 수준인 5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북한의 핵실험과 ICBM 시험 발사로 미사일과 사격통제 분야의 매출이 2016년 대비 9% 늘어나는 등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록히드마틴의 매출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한 록히드마틴의 주가는 이번 판문점 선언 이후 2.5% 하락했다.

언론에 따르면 록히드마틴뿐만 아니라 미국의 군산복합체들의 주식이 일제히 하락했고(레이시온 3.9% 하락, 노스 롭 그루먼 3.4% 하락, 제너럴 다이내믹스3.8% 하락) 5대 군수산업체의 주가 하락으로 100억 달러 이상의 시가 총액이 날아갔다고 한다. 당장 손해도 막심하지만 70년 동안 안정적으로 이어온 시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것이 더 큰 손실일지도 모른다.

2015년 아덱스 당시 록히드마틴 부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록히드 마틴의 주가는 반비례한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군수산업체들이 한반도 평화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불보듯 뻔하다.
 2015년 아덱스 당시 록히드마틴 부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록히드 마틴의 주가는 반비례한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군수산업체들이 한반도 평화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불보듯 뻔하다.
ⓒ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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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군수산 업체가 정말 무서운 까닭은 언제나 은밀하고 조용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 안보를 핑계 삼아 민주적 감시와 통제를 벗어난 곳에서 불법적인 로비와 뇌물로 관료들을 매수하고 군사 갈등을 조장해서 무기를 팔아먹는다. 국제투명성기구 조 로버의 연구에 따르면 세계 무역 거래에서 일어나는 부패 사건의 40%는 무기 거래라고 한다. 이들 군산복합체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은밀하고 추악한 방식으로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 형성을 방해하고 한반도를 다시 군사 갈등상태에 두려고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당장 평화 분위기를 만끽하면서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안 되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분단이 남겨놓은 폭력, 특히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군사주의는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하더라도 그 위세가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는 일은 어쩌면 남북관계 개선이나 한반도 비핵화보다 더 어려운 과정일 수도 있다.

치킨집 – 분단이 남긴 군사주의

아버지와 함께 치킨집을 운영하는 어느 병역거부자가 지난달 17일 구청으로부터 영업소 폐쇄 처분 통지서를 받았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병역법을 어겼으니 병역법 76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고용주는 병역기피자를 임용·채용할 수 없고 각종 허가·인가·면허·등록 등도 취소해야 한다'에 따른 조치라는 것이 병무청과 해당 구청의 설명이다. 다행히 병역거부자가 행정소송을 하면서 판결 전까지 폐쇄 조치를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 받아들여져서 당장 장사를 하는 것에는 지장이 없게 되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분단과 전쟁을 자양분 삼아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군사주의는 남북 정부 사이의 군사적 갈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예시 삼아 보자면 강력한 군사안보이데올로기는 대체복무를 허용하지 않는 법제도 뿐만 아니라, 병역거부자를 차별하는 일상의 편견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한다. 병무청과 해당 구청의 치킨집 폐쇄 처분 통지는 반인권적인 법제도와 사회적 편견이 만나서 벌어진 촌극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국가보안법, 해병대 캠프, 군대식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과 대학의 새내기 환영식, 젊은이들을 마구잡이로 부려 먹는 징병제도까지, 분단과 전쟁이 심어놓은 강력한 군사주의는 우리의 일상에 깊숙하게 박혀있다. 일상 속 군사주의는 상급자에 대한 복종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부당한 것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삭제한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일상의 군사주의를 극복하는 일은 어쩌면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만들고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일보다 더 더디고 오래 걸릴 것이다.

판문점 선언, 그리고 조만간 개최될 북미정상회담까지. 전 세계가 주목하는 평화의 역사 한복판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그와 동시에 분단이 남긴 군사주의 또한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눈앞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사건들의 아찔한 격차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이 현기증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가장 솔직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의 만남이 가져올 국제 관계 속 평화와 병역거부자도 맘 편히 치킨집 할 수 있는  일상의 평화 사이를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이 어지러움 끝에 마침내 두 길이 만나는 지점이 우리가 꿈꾸는 한반도 평화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withoutwar.org/?p=14346



태그:#남북정상회담, #군사주의, #군수산업체, #양심적 병역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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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게 되고, 평화주의자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출판노동자를 거쳐 다시 평화운동 단체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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