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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빠가 된 지 1달. 육아휴직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다. 육아휴직은 '휴직'이 아니었다. 누가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라고 했던가. 상사와 고객의 갑질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였던 직장 생활과는 비교불가다. 직장이 그리울 정도라고 말하면 아내와 아들이 몹시 서운해하려나.

  육아빠의 글쓰기. 아기띠는 필수다.
 육아빠의 글쓰기. 아기띠는 필수다.
ⓒ 김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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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일하러 자리를 비울 때면 나는 전업주부가 된다. 4개월 된 아들이 보채기 시작한다. 분유 기록 노트를 본다. 아들의 식사시간이다. 보채는 아들을 안고 커피포트의 전원을 켠다. 소독기에서 젖병을 꺼내 분유를 5스푼 넣는다. 물이 끓는다.

분유가 잠길 정도로 끓는 물을 붓는다. 막걸리를 마시기 전처럼 젖병을 휘휘 돌려 분유를 녹인다. 온도와 양을 맞추기 위해 끓이지 않은 물을 더 넣는다. 200ml 표시 선까지 맞춘 후 젖병을 양 손바닥으로 잡는다. 이번엔 가수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 춤을 추듯이 손바닥으로 젖병을 돌려가며 물과 분유를 잘 섞는다.

아들에게 분유를 주면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꿀떡 꿀떡 원샷을 하거나 도리도리 하면서 젖병을 피해 다닌다. 어떻게든 분유를 먹으면 다행이다. 문제는 무작정 울기 시작했을 때다. 갖가지 동물 소리를 내면서 달래도 안 된다.

기저귀도 갈고 앉혔다가 눕혔다가 안아도 안 된다. 아들이 좋아하는 모빌, 장난감, 쪽쪽이(공갈젖꼭지)로도 포효하는 아들을 잠재울 수 없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다 녹초가 된 부자(父子). 아들은 거짓말같이 스르르 잠이 든다. 잠시 휴전의 평화가 찾아온다.

아내의 퇴근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

  깊은 잠에 빠진 아들. 잠시 평화가 허락된다.
 깊은 잠에 빠진 아들. 잠시 평화가 허락된다.
ⓒ 김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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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웃어버리면 어쩌라고! 나도 웃을 수밖에 없잖아.
 이렇게 웃어버리면 어쩌라고! 나도 웃을 수밖에 없잖아.
ⓒ 김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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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만에 찾아온 평화는 10분 만에 깨질 때도 있다. 잠이 깬 아들과 눈이 마주친다. 내 속을 알 리 없는 아들은 세상 해맑게 살인 미소를 짓는다. 미쳐버리겠다. 나도 웃는다. 그저 웃음 밖에 안 나온다. 아내의 귀가 시간만을 기다린다. 시계를 볼 땐 시간이 안 가는 것 같았는데 하루를 돌아보면 어느새 깜깜한 밤이다.

아내들이 남편의 퇴근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유를 온몸으로 깨닫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대부분 여성이 육아를 전담하고 있다. 육아는 부부가 함께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경단녀(경력단절여성)', '워킹맘(일하는 엄마)'의 고충을 겪고 있다.

이제 겨우 1달 된 초짜 육아빠에 불과하지만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내가 느끼는 육아의 고충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내를 한번 더 존경하게 된다. 전업주부든 워킹맘이든 모든 엄마는 위대하다.

올해, 어쩌면 평생을 통틀어 가장 잘한 일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육아휴직이다. 다른 하나는 지난 1월, 아내의 고통을 분담하고자 선택했던 자연주의 출산이다. 자연주의 출산은 출산의 전 과정에 남편이 참여한다. 17시간의 진통 끝에 세상으로 나온 아들을 부부가 함께 맞이하는 감격을 맛보았다.

갓 태어난 아들을 아빠가 안아주는 '캥거루케어'를 하면서 미리 준비한 편지를 읽어줬다. 심장과 심장이 맞닿은 뜨거운 감동은 눈물이 되어 두 뺨에 흘러내렸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출산을 통해 아내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아내는 생리통으로 느끼는 고통의 1만배를 17시간 동안 느꼈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다시 한번 존경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들의 이름을 짓고(관련 기사: http://omn.kr/r329) 출생신고를 했을 때의 감격 또한 잊을 수 없다. 주민등록등본에 선명하게 기재된 아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보자 울컥했다. 나라에서 공식 인증한 아들의 존재를 실감해야 했다고 할까. 꼬물꼬물한 아들이 우리 가족의 구성원이자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우리 세 식구는 현재 전원주택에서 자연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 지난달에 100일을 맞이했다(관련기사: http://omn.kr/qygu). 물론 전원생활이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관련기사: http://omn.kr/quk8) 불평보다는 감사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원룸에서 숨진 20대 아빠와 16개월 아들

그런데 세상은 상대적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낮이 있으면 밤이 있다. 일산에서 한 가족이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이, 경북 구미에서는 출생신고를 하지도 못한 두 살배기 아들과 20대 아빠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지난 3일에 어느 원룸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숨진 아빠(이하 'A씨')는 수개월 전부터 무직 상태로 홀로 육아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A씨가 병으로 숨진 후 아들은 곁에서 굶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사망 이틀 후가 어린이날이라 더 참담하다.

육아빠로서 홀로 16개월 된 아들을 돌봐야 했던 A씨. 게다가 지병도 있었고 무직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주민등록도 말소되어 있었고 철저히 은둔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그가 처했던 상황이 얼마나 끔찍했을지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망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직장을 잃은 엄마와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한 병든 딸. 이들은 조건 미달로 복지 혜택에서도 제외됐다. 결국 서울 송파구에 살던 세 모녀는 월세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의 초∙중∙고 시절을 모두 보냈던 송파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라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었다.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살았던 동네의 이야기였다. 매일 지나다녔던 동네의 어느 한 집에서 세 모녀가 죽었다. 지금도 어디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이웃이 있을 수 있다. 그 장소가 바로 나의 옆집일지도 모른다.  

'송파 세 모녀 사망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인 긴급 복지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이번에도 고독한 부자(父子)의 죽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기사에 달린 댓글이었다.

'아버지로서 자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문제', '애비가 관리 못해서 죽은걸'과 같이 문제의 본질을 아빠의 책임으로 돌리는 이들. 철저히 소외된 이웃이, 그것도 꽃피울 나이의 남자와 두 살배기 아이가 숨졌다고 하는데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진정 혐오스럽다.

  고독한 생명
 고독한 생명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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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다 혼자 죽는 '고독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예전엔 독거노인에게만 국한된 문제라 여겼다. 그러나 최근 1인 가구 증가로 고독사는 모든 연령층에 확산되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가 확대되고 있다. 같은 나라의 같은 국민인데도 불구하고 복지 시스템 밖에 놓인 이방인으로 사는 이들이 늘고 있다.

나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내가 분명 도울 수도 있었는데 바로 옆집에서 누군가가 외롭게 숨졌다면 행복할까? 소외된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고독사 문제를 사회보장 시스템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좋은 제도가 있어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면 소용이 없다. 방법을 알아도 계속 심리적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면 점점 병들어 갈 뿐이다.

꽃피워보지 못한 부자(父子)의 죽음 앞에 숙연해진다. 나 자신과 가족만 생각하는 삶을 살아오진 않았는지 깊이 돌아본다. 빚진 마음으로, 그리고 미안한 마음으로 내가 누리는 행복을 나누기 위해 힘써야겠다.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절실하다.



태그:#고독사, #도움의손길, #이웃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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