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예 웨스트(자료사진)

카니예 웨스트(자료사진) ⓒ 연합뉴스/EPA


원래 카니예 웨스트는 생각보다 말이 앞서는 뮤지션이었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를 쑥대밭으로 만든 허리케인 카트리나 구호 방송에 출연해 "부시 대통령은 흑인들에 관심 없다"고 즉흥적으로 말하고, 2009년 MTV 시상식에서 뮤직비디오 상을 받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무대에 술에 취한 채로 난입해 "비욘세 뮤직비디오가 역대 최고"라 외치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21세기의 가장 혁신적인 스타일로 힙합과 대중음악의 새로운 전기를 열었고, 대중은 이 천재 아티스트의 돌발 발언을 천재의 일탈로 품어줬다. 그러나 지난 일주일 간 그의 발언은 관용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들이었다.

"당신이 꼭 트럼프를 지지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도널드 트럼프를 사랑하는 걸 막을 순 없다. 우리 둘 다 용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트럼프는 내 형제."

"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의 약어, 트럼프의 상징) 모자에 사인을 받았어!"

"노예 제도가 40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그건 선택의 문제다. 노예제는 정신적 감옥과 같다."

"새로운 백인, 카니예 웨스트"라고 조롱 받는 이유

 카니예 웨스트의 트윗과 이를 리트윗한 도널드 트럼프.

카니예 웨스트의 트윗과 이를 리트윗한 도널드 트럼프. ⓒ 트럼프/카니예 트위터


2016년 트럼프 타워를 방문하며 공화당 지지 성향을 내비쳤던 카니예지만 최근과 같은 열렬한 지지 성향을 보여준 것은 처음이다. 논란이 커지자 그는 "나는 힐러리도 사랑한다"라며 표현의 자유를 언급했지만 이후 발표한 새 싱글 'Ye vs. the people'에서 다시 '갱단이 서로 악수하듯, 화해의 제스처를 건네는 것'이라는 가사와 함께 트럼프 지지 의사를 재차 강조하며 또 다시 문제가 됐다. 당장 갱스터 래퍼의 전설 스눕 독의 사촌 대즈 딜린저가 가사 속 갱단 중 하나로 언급된 크립스(Cribs)에게 '캘리포니아에서 카니예를 만나거든 X 같이 패줘라'라고 말하는 동영상을 SNS에 올려 험악한 분위기를 보여줬고, 동료 뮤지션 존 레전드 역시 '너의 발언에는 책임이 있다'고 염려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여기에 노예제 발언으로 카니예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당장 그 말을 실시간으로 들은 TMZ 선임 프로듀서 벤 레이선은 "실망했다. 당신이 선택이라고 말한 노예제 때문에 우리는 실제 삶을 위협받고 있다"며 분노를 표했다. 아리아나 그란데, 해리 스타일스, 리아나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카니예의 트위터 계정을 언팔로우 했으며, 미국 최대 흑인 인권 단체인 전미유색인지위상향협회의 공식 성명, 숱한 언론의 비판 기사와 실망한 대중의 분노가 각종 매체를 점령했다.

<뉴욕타임스>는 "카니예 웨스트가 틀린 이유"라는 2분 43초짜리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노예제의 어두운 역사를 짚었고, <포브스>는 "노예 제도는 선택이 아닙니다"라는 칼럼으로 그를 비판했다. 재차 등장하는 스눕 독은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하얀 피부의 카니예 웨스트 사진을 게시하며 "새로운 백인, 카니예 웨스트"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카니예 웨스트의 이런 발언이 단순한 보수 우익 지지와 인종차별에서 나왔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는 논쟁을 즐기며 고정관념에 끊임없이 반발해온 아티스트다. 고전적인 소울 샘플의 절묘한 활용으로부터 출발해 새로운 소리를 개척해나간 음악으로,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와 함께 일군 패션 라인 '이지 부스트(Yeezy Boost)'로, 음악 페스티벌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헤드라이너로, 또한 잡지·디자인·건축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독자적 길을 걸어왔다. 항상 컴백을 앞두고 트위터 계정을 통해 새로운 화두를 던졌던 그다.

과도한 자의식 때문일까

카니예의 해명을 보자면 오히려 그의 트럼프와 노예제 발언은 오히려 아티스트의 소신이자 표현의 자유를 위한 도전이다. 'Ye vs. the people'의 가사처럼 '모든 흑인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할' 필요도 없다. 뿌리 깊게 내려온 노예제의 잔상을 떨쳐버리고 자유로운 사상을 지향하는 곳이 카니예가 꿈꾸는 세상이다. 이미 그는 'New slaves'라는 곡을 통해 물질적 가치에 사로잡힌 현대 블랙 커뮤니티를 비판한 적도 있다.

<더 애틀랜틱>의 타네이시 코아테즈는 "난 블랙이 아냐, 난 카니예야(I'm not black, I'm Kanye)"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그가 '비판 없고 자유로운, 어떠한 틀에도 묶이길 거부하는 자유사상가(Free thinker)'를 지향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 바탕에는 전성기의 마이클 잭슨과 도널드 트럼프처럼 자신을 신적인 존재로 믿어 의심치 않는 카니예의 높은 자의식이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가장 최근 카니예의 트윗은 "자유 생각은 슈퍼 파워(Free thinking is a super power)"다. 다른 뮤지션도 아니고 카니예 웨스트이기에 납득 가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해한다고 그 철학까지 동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익히 알려진 대로 트럼프는 유색 인종에 대한 경멸을 공공연히 습관처럼 내뱉었으며 이를 실제 정책화하는 최악의 행보를 보였다. 멕시코와의 국경 지대에 장벽을 쌓고 비자 발급 조건을 까다롭게 하며 이민자들을 차별할 뿐 아니라 'LGBTQ'와 같은 소수자 인권에 무관심하다. 그런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 하류층들에게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주장이 "노예제는 흑인들의 선택"이다. 카니예의 의도가 단순한 마케팅이나 관심 환기, 혹은 자유 선언이었다 해도 편견과 차별 속에 실제로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큰 상처다.

 미국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의 '카니예 플레이스' 클립 영상 캡처. 카니예 웨스트의 트위터를 읽는 차일디시 감비노에 분개한 친구들은 모두 괴물에게 끌려간다.

미국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의 '카니예 플레이스' 클립 영상 캡처. 카니예 웨스트의 트위터를 읽는 차일디시 감비노에 분개한 친구들은 모두 괴물에게 끌려간다. ⓒ SNL 유튜브


5일(현지 시각) 미국 NBC 유명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는 공포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패러디한 '카니예 플레이스(A Kanye Place)'를 방영했다. 소리를 내면 괴물에게 끌려가는 상황임에도 조난객들은 카니예 웨스트의 트위터 멘션을 듣고는 분개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다.

방송에서 해당 멘션을 읽어준 배우 도날드 글로버(Donald Glober)는 바로 다음 코너에서 뮤지션 차일디시 감비노(Childish Gambino)로 변신해 신곡을 공개했다. 'This is america'라는 이름의 이 곡에서 그는 흥겹게 노래하는 흑인 성가대와 기타리스트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 돌연 그들을 모두 쏴 죽이고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내뱉는다.

"이게 미국이야, 정신 바짝 차려."


어쩌면 카니예 웨스트는 아티스트로의 책무에 집착하다 진짜 미국을, 진짜 세계를 가벼이 여기게 된 것은 아닐까. 오만의 귀에 대중의 경고가 들릴 리 없지만 더 이상 그를 인간적으로 지지하긴 어려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도헌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https://brunch.co.kr/@zenerkrepresent/169)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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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2013-2021)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편집장 (2019-2021) 메일 : zener1218@gmail.com 더 많은 글 : brunch.co.kr/@zenerkre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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