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하고 오래된 밥집을 찾아 홀로 낮술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따금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걷다 그런 식당을 발견하면 '저기서 소주 한 잔 마시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러다 하루는 엉뚱한 질문을 마주했다. 그런 내게 갑자기 한 친구가 '게이들도 저런 곳을 좋아해?'라고 물어본 것이다. 동성애자도 사람이고 그래서 취향은 각양각색일 것인데 왜 그렇게 생각한 걸까? 단지 '게이이기 때문에'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게 있을 수 있을까?

사실 커밍아웃을 한 이후 비슷한 말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게이인데 의외다'라거나 혹은 '역시 게이들은 그렇지'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내가 예외적이거나 표준적인 남성 동성애자가 아니라 그냥 한 명의 고유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걸까.

 남성과 여성

많은 이들이 게이를 '여성스러운 남성'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집단적인 속성이라고 여긴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심지어 한 사람이 다양한 성격의 행동을 취할 때도 있다. ⓒ pixabay


어쨌거나 흥미로웠던 점은, 내가 이 사회에서 '여성적'이라 간주되는 모습을 보일 때 사람들은 그것을 '게이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많은 이들이 게이를 '여성스러운 남성'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집단적인 속성이라고 여긴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심지어 한 사람이 다양한 성격의 행동을 취할 때도 있다. 나만 해도 높은 톤으로 깔깔거리며 웃는 게 편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목소리를 낮추고 무게감 있게 말을 하기도 한다.

어느 쪽도 내게 어색하지 않고 이 중에 가짜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입견은 여전히 공고하다. 특히 대중문화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남성 동성애자들의 유형만 봐도 그렇다. 나긋나긋하고 까탈을 부리며 미용과 패션에 관심이 많고 높은 톤의 목소리를 지닌 남자들.

'내시천하'가 드러낸 성소수자 혐오

물론 나는 이런 식의 묘사들이 탐탁지 않지만 모두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중에는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서 유해한 인식을 전파하는 것들도 존재한다. 가령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내시천하'를 살펴보자.

이 코너에 등장하는 세 명의 내시는 왕과의 로맨스를 꿈꾸고 지나가던 남자에게 유혹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성적 지향은 동성애인 것일까? 그들은 운동을 하는 다른 내시에게 '그러다가 남자 되겠다'라는 말을 한다. 동시에 내시는 왕이 될 수 없고 '중전'이나 '국모'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트랜스젠더 여성인 것일까?

 KBS '개그콘서트' 코너 중 '내시 천하'

KBS '개그콘서트' 코너 중 '내시 천하' ⓒ KBS


사실 '내시천하'를 기획한 사람들조차도 여기에 관해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코너에서 중요한 점은 내시들이 동성애자냐 트랜스젠더 여성이냐가 아니라 단지 '남자가 아니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명확히 언급하자면 '정상적인 남자' 말이다. '내시천하'에서 캐릭터들이 고환이 없다는 설정은 결함으로 묘사되며(가령 한 캐릭터가 자신이 고환을 잃게 된 과정을 말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매주 반복해서 등장한다) 놀랍게도 주요한 코미디의 소재로 사용된다.

누군가가 신체의 일부를 상실하고 다른 몸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어떻게 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지도 의아하지만, 그래서 이들이 남자를 좋아하고 성별이 남성이 아니게 되었다는 내용도 문제가 많다. 이 논리에 따르면 결국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그리고 시스젠더 여성은 비정상적인 남성이거나 혹은 남성이 아니기에 불완전한 존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

이런 시각이 불쾌하지만 놀랍지 않은 이유는 한국 사회가 성별 이분법이 매우 공고한 곳이기 때문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처럼 이분법은 사실 위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은 A와 B라는 대등한 관계를 맺는 게 아니라 'A'와 'A가 아닌 것'이라는 위계적 관계에 놓여있다. 이 구도에서 여성은 하나의 성별이 아니라 단지 '남성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성역할과 성별에 따른 특성('남성성'과 '여성성')은 여기에 기반해 발명된다. 가령 남성이 능동적이라면 여성은 수동적이라는 식이다. 남성이 주체의 자리에 선다면 여성은 객체가 되고 그래서 손쉽게 성적으로 대상화된다. 그래서 남자가 '여성성'을 지닌다는 것은 곧 바로 그의 '남성성'이 훼손되었다는 의미를 품은 게 된다. 무언가를 상실했고 망가진 것이다. 때문에 많은 경우 남성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우위를 차지하고자 노력한다. 가정폭력, 성폭력, 여성 혐오는 이를 위한 가장 강력하고 보편적인 수단이었다.

 조선시대 내시=여성? 22일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 코너 중 '내시 천하'는 내시에 대한 다소 편협한 시각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내시=여성? 22일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 코너 중 '내시 천하'는 내시에 대한 다소 편협한 시각을 보여준다. ⓒ KBS


또한 이 사회는 이성애 중심주의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자가 동성을 사랑한다면 최소한 그는 '여성적'이거나 '남자가 아닌 존재'여야 한다. 게이들이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성성'이 매우 강한 존재로 되풀이해서 묘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를 성별 이분법을 가로지르는 매우 퀴어한 실천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 그런 수행을 결함이자 기행, 수치로 파악된다. 그래서 남성이 남성을 사랑하거나 '여성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급진적인 게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것처럼 여겨진다.

'내시천하'는 그런 식으로 웃음을 끌어낸다. '모자란 존재(혹은 결함이 있는 남성)'로 설정된 캐릭터들을 무대 위에 전시하고 그들을 희화화하면서 말이다. 이는 젠더 정치의 측면에서도 매우 후진적이지만 웃음을 만드는 방식에 있어서도 비열하기 짝이 없다.

'편견과 혐오'는 성차별 강화하고 성소수자를 '괴물'로 만든다

흥미롭게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시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고려 중기 이후 원나라의 환관 제도를 받아들여 고환을 거세한 내시를 뽑긴 했지만 이들 역시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수 있었고 양자를 두어 가계를 이을 수도 있었다. 즉 그들 중에는 남성의 성별 정체성을 가지고 이성애자의 삶을 산 사람도 많았던 것이다.

사실 성기를 중심으로 양성이 나누어지고 이에 따른 개인의 자연적인 특성과 역할이 존재한다는 것은 만들어진 관념이자 통치 체제의 일부에 불과하다. 인터섹스를 포함해 여성과 남성이라고 명백히 규정된 사람들까지도 무수히 다양한 몸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성격에 있어서도 이는 말할 필요가 없다. 정상적인 몸과 이에 따른 주어진 인간형이 있다는 것은 환상이자 사회가 따르라고 강요한 규범에 불과하다. 개그콘서트를 비롯해 대중 매체가 조장한 내시에 대한 편견은 통념이 현실을 가린 사례들 중 하나다.

 KBS '개그콘서트' 코너 중 '내시 천하'

KBS '개그콘서트' 코너 중 '내시 천하' ⓒ KBS


흔히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특히 동성애자·양성애자·트랜스젠더들은 성적인 면이 과도하게 부각된 존재로 간주된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신체의 일부에 불과한 성기에 집착하고 이를 통해 인간을 구분하며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비정상의 낙인을 찍고 조롱하는 이들이야말로 사실은 가장 성적인 존재들이 아닌가.

만일 이 사회가 '성적인 존재'를 '불온하고 비윤리적인 존재'라는 의미로, 또는 그렇기 때문에 '유해한 집단'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면 과연 그 주인공은 누가 되어야 할까? 나는 적어도 '내시천하'를 기획하고 만든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편견과 혐오, 낙인은 성소수자들을 괴물로 만들고 성차별을 견고히 만드는 반사회적 해악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내시천하' 코너의 폐지를 희망한다.

개그콘서트 내시천하 성소수자 혐오 성별이분법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