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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전성기가 지나고 스타일을 강조한 매너리즘이 유행한 뒤 그림은 다시 한번 변화를 맞이한다. 매너리즘이 지나치게 스타일에만 빠져 실체와 에너지를 상실한 것에 대한 반발로 이탈리아에서 바로크가 시작되었는데 드라마틱한 화면 구성과 뚜렷한 명암의 차이, 역동적인 신체의 움직임을 통한 강한 에너지를 특징으로 한다.

바로크는 '불완전한 진주'라는 의미의 포르투갈어로 르네상스 시대의 완벽한 균형과 아름다움과 비교하여 그에 미치지 못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편견이 들어간 명칭일 뿐 그림은 저마다의 특징과 아름다움이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사실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은 강렬함과 긴장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화면의 구도를 좌우대칭이 아닌 대각선 또는 한쪽에 치우치게 하였고 고르게 분포된 빛이 아닌 어두운 배경에 부분적으로 비춰진 빛과 그림자를 통해 강한 대비를 만들어냈다. 인물의 동작이나 얼굴의 표정 또한 마치 연극을 보는 듯이 과장되고 극적이다.

이탈리아 바로크의 대표 작가 카라바지오가 바로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다. 성경적 내용을 현실에 존재하는 사실적인 인물들로 표현한 그의 성화들은 기존의 성화,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관심은 우리와는 다른 완전한 신이나 성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성경 속의 이야기를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기적의 순간으로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확실히 독창적이고 신선한 것이었지만 표현이 지나치게 세속적이고 사실적이라는 이유로 신고전주의가 유행하던 한동안은 빛을 보지 못하기도 했다. 

카라바지오, Source: Wikimedia Commons
▲ The Martyrdom of St. Peter, 1601 카라바지오, Source: Wikimedia Commons
ⓒ St. Maria del Pop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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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순교(The Martyrdom of St. Peter)'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세워지기 직전의 베드로의 모습을 그렸다. 칠흑같이 어두운 배경 속에서 베드로의 벌거벗은 몸과 하얀 옷감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흰 머리와 수염, 주름살 투성이의 얼굴은 빛에 드러난 오른쪽 부분만이 뚜렷이 보일 뿐이다.

십자가를 등으로 지탱하고 있는 사람의 팔과 다리에 힘이 가득 들어간 것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위로 십자가를 끌어올리려는 두 사람도 일에 집중한 모습이다. 이 그림에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유일한 인물은 곧 시작될 본격적인 고통을 앞둔 베드로 뿐이다. 따라서 얼굴이 보여지는 인물도 베드로가 유일하다. 십자가에 달려 있음에도 마지막까지 무기력한 것이 아니라 몸에서 힘이 느껴지는데 저항이나 거부의 몸짓이라기 보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 같다.

반대로 얼굴은 의외로 담담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인상적인 표정이다. 마치 눈 앞에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은 강한 명암의 대비와 인물의 사실적인 묘사로 가능한 것이고 이에 더하여 극적인 순간의 드라마는 보는 이의 마음을 동요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카라바지오의 그림은 과감한 구도와 명암의 사용으로 강한 에너지를 전하고 실제와 같은 인물의 표현으로 사실감을 주었지만 그로 인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그림 '성모의 죽음(The Death of the Virgin)'은 죽은 성모의 모습이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적나라하여 그림을 주문한 자가 인수를 거부했다. 드러난 맨 발과 축 처진 왼손, 생기 없는 얼굴에서 성모의 죽음이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벤스는 이 그림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플랑드르(지리상으로 현재의 벨기에 지역)의 화가 루벤스 역시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로 그의 그림에는 역동적인 움직임과 함께 밝고 화려한 색이 수놓은 강한 에너지가 가득하다. 다재다능하고 열정적이며 많은 작품을 남긴 그는 당시 플랑드르를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신체의 모습을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그려 넣었는데 마치 미켈란젤로가 열정적인 감정을 신체를 통해 표현했듯이 그는 춤을 추는 듯한 움직임과 풍만한 육체, 밝은 색깔로 감정을 넘치도록 풍요롭게 표현했다. 

피터 폴 루벤스 Source: Wikimedia Commons
▲ Peace and War 피터 폴 루벤스 Source: Wikimedia Commons
ⓒ National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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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Peace and War)'는 전쟁으로 얼룩진 시대를 살았던 루벤스의 평화에 대한 염원을 표현한 그림으로 그의 그림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평화를 상징하는 여성이 아기에게 젖을 짜주고 그 옆에는 한 무리의 어린 아이들이 다가오고 있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가 헬맷을 쓰고 갑옷을 입은 채 전쟁의 신 마스를 밀어내고 있는데 미네르바의 뒤에는 화환을 든 아기 천사가 다가와 평화를 상징하는 여성에게 다가 오고 있다. 여성과 아이들의 평화로운 장면과 과일과 금으로 가득한 풍요, 음악과 춤이 있는 장면들은 모두 평화 속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이 그림을 통해 루벤스는 평화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실제로 화가이자 동시에 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했던 루벤스는 영국과 스페인 사이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 공로가 있다. 그에게 평화는 개인은 물론 사회, 예술의 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평화 속에서만 가능한 풍요와 즐거움을 표현하는 데 있어 루벤스는 그가 특히 잘 그리고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펼쳐놓았는데 바로 신체의 풍만한 표현과 밝고 화려한 색의 사용이 그렇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라기 보다는 넉넉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풍만한 육체는 밝고 따뜻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데 이는 확실히 매너리즘 시대의 가늘고 여린 몸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살을 꾹 눌러 몸의 풍만함을 눈으로 보이도록 표현한 것에서 루벤스가 표현하고자 한 것이 풍요로움임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또한 밝고 빛나는 색의 사용으로 화면 전체에 부드러운 분위기를 가득 채우는데 누드를 하얀 색으로 처리하고 붉은 색의 옷으로 강렬한 대비를 줌으로써 눈이 부실 정도의 빛남을 표현한 것 또한 루벤스만의 독특한 특징을 강하게 드러낸다.

렘브란트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바로크 작가로 그만의 독특한 그림으로 명성이 높다. 극적인 명암의 사용과 더불어 특히, 그림 속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섬세한 감정의 표현은 얼핏 별 특징이 없어 보이는 그림에 오묘한 매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그의 대표작 '야경(The Night Watch)'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루어낸 네덜란드의 자부심과 용맹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도시를 지키는 민간인 군대의 애국심과 강인함을 엿볼 수 있다.

렘브란트 Source: Wikimedia Commons
▲ The Night Watch, 1642 렘브란트 Source: Wikimedia Commons
ⓒ Rijks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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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정을 위해 모인 것이 분명한 이 군대는 그러나 일렬로 정비가 되어 있거나 일사분란하게 정돈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점에서 렘브란트의 독창성이 나타나는 것인데 기존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일렬로 늘어서 정면을 응시하는 집단 초상화와는 달리 자연스러우면서도 사실적인 표현이 두드러져 초상화라기 보다는 역사적인 장면을 그린 것 같다.

이로 인해  뒷 편의 인물들은 자신들이 동일한 비중으로 그려지지 않은 것에 불만을 드러냈다고 알려져 있다. 어쨌든 그래서 더욱 독창적인 그림으로 남게 된 이 그림은 옷도 모자도 제 각각으로 사회적 신분은 다르지만 오로지 도시를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 모인 민간인들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비록 몇몇 인물의 얼굴은 가려지거나 검은 배경 속에서 흐릿하게 처리되었지만 누구 하나 중대한 일을 앞두고 엄중한 표정이 아닌 자가 없다. 다소 의외의 등장 인물로 여겨지는 전령사로서 소녀의 표정 또한 엄숙하기가 그지 없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화면의 처리는 명암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기 위한 것인데 이러한 빛의 처리는 주요 인물의 존재를 더욱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며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의 그림 속 인물의 명상적이면서 깊이 있는 표정은 그가 유난히 많이 그린 자신의 초상화가 그 단초를 제공한다. 평생 70여 개의 초상화를 남긴 렘브란트는 거울을 보면서 다양한 감정을 담은 초상화를 그렸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얼굴에는 억지로 만든 표정이 아닌 인생의 성공과 재산의 탕진이라는 기복이 심한 삶을 살면서 몸소 체험한 인생의 달고 쓴 경험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었음을 알 수 있다.

렘브란트 Source: Wikimedia Commons
▲ 자화상, 1669 렘브란트 Source: Wikimedia Commons
ⓒ National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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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인생의 말년에 그린 자화상은 자신을 미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자 한 의도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고단하고 초라한 노인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울퉁불퉁한 피부와 축 처진 두 눈, 깊게 패인 주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나이뿐만이 아닌 후회와 그리움, 슬픔과 고단함 등 복잡한 감정과 마음의 상태이다. 애처러운 눈빛과 울음을 참고 있는 듯한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지만 굳게 다문 입에서는 나름의 자존심이 엿보인다.

아름다운 순간이나 인생에서의 정점의 순간을 담고 있는 보통의 초상화나 자화상과는 달리 인생 매 순간마다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그의 자화상은 그림이 담아낼 수 있는 깊이의 한계에 도전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의 자화상은 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추억으로서의 초상화가 아니라 그 인물이 살아온 인생과 그 인생의 깊이를 담아낸 기록으로서의 초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하고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깊은 공감과 강한 여운을 남긴다.


태그:#바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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