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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국체(國體)'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일본이 태평양전쟁 패배를 인정하고, '일본 개벽 이래의 불명예인 문서'라는 항복문서에 서명했던 이유는 국체를 수호하기 위해서였다.

히로히토 천황은 1945년 8월 15일 '종전 조서'를 낭독하면서 "이로써 짐은 국체를 수호할 수 있을 것이며, 너희 신민의 적성을 믿고 의지하며 항상 너희 신민과 함께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종전 조서'뿐만 아니다. 메이지 천황이 반포한 교육칙어, 군인칙유 등 각종 교서에도 국체란 단어는 빠지지 않는다. 사실 메이지 천황이 1899년 반포한 대일본제국헌법 자체가 국체란 말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국체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

그만큼 국체는 근대 일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다. 그래서 근대 일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일본 신민족주의 전환기에 『국체의 본의』를 읽다>(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기획, 형진의‧임경화 편역)는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책이다.

"만세일계의 천황이 황조의 신칙 받들어 통치"

 <일본 신민족주의 전환기에 『국체의 본의』를 읽다> 표지.
 <일본 신민족주의 전환기에 『국체의 본의』를 읽다> 표지.
ⓒ 어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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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국체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한 일본학자는 "국체라는 단어와 개념만큼, 일본의 근대를 어둡게 옥죄었던 개념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국체 개념만큼, 또한 애매모호한 개념은 아마 역사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국체의 본의』는 이처럼 불확실한 국체의 개념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자 일본 문부성이 1937년 국체에 대한 해석서로 간행한 책이다. <일본 신민족주의 전환기에 『국체의 본의』를 읽다>는 『국체의 본의』 를 80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하여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학 교수의 해설, 번역자인 임경화 연세대학교 교수, 형진의 한남대학교 교수의 해설과 후기 등을 추가한 책이다.

『국체의 본의』는 국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황조의 신칙을 받들어 영원히 통치하신다. 이것이 우리 만고불역의 국체이다. 그리고 이 대의를 기반으로 일대 가족국가로서 억조가 일심으로 성지를 받들고 명심하여, 능히 충효의 미덕을 발휘한다. 이것이 우리 국체가 정화로 삼는 바이다. 이 국체는 우리나라의 영원불변한 근본으로, 역사를 관통하여 일관되게 빛나고 있다. - <일본 신민족주의 전환기에 『국체의 본의』를 읽다> 31쪽
 
여기서 만세일계는 천황의 황통이 영원히 한 계통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황조의 신칙은 무엇인가. 『국체의 본의』에 따르면 황조, 즉 일본황실의 조상인 태양신 아마테라스는 황손인 니니기에게 다음과 같은 신칙을 내렸다.

도요아시하라노치이호아키노미즈호국[풍요롭게 갈대가 우거지고 영원무궁히 벼이삭이 영그는 일본의 국토라는 뜻으로 일본을 아름답게 부르는 이름 - 기자 주]은 내 자손이 왕이어야 하는 땅이다. 내 황손들이여, 가서 통치하라, 자 가라, 황위의 번영은 천양과 함께 더욱더 무궁하리라.-<일본 신민족주의 전환기에 『국체의 본의』를 읽다> 36~37쪽
 
한마디로 천황은 곧 위대한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후손으로 "황조황종과 일체가 되시어 영구히 신민과 국토의 생성 발전의 근원이 되시고 한없이 존귀하고 황송한 분"(45쪽)이라는 내용이 국체의 핵심이다.

이는 "신민의 길은 (중략) 억조창생이 마음을 하나로 하여 천황을 받드는 것에 있다"(53쪽),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이른바 자기희생이 아니고, 소아를 버리고 크신 능위에 살면서 국민으로서의 참 생명을 떨쳐 일으키는 것"(55쪽)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민주주의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실제로 『국체의 본의』는 민주주의, 자유주의 등 근대 서양사상의 근저에는 개인주의적 인생관이 깔려 있고, 그 결과 "자의적인 자유해방만을 추구하여 봉사라는 도덕적 자유를 망각한 잘못된 자유주의나 민주주의가 발생했다"(159쪽)고 비판하고 있다.

이는 『국체의 본의』의 탄생 배경인 천황기관설 사건과 연관돼 있다. '천황기관설'은 법인인 국가가 통치권의 주체가 되고, 천황은 국가의 최고기관으로 주권을 행사한다는 이론으로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에 지배적 학설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우익 세력들이 1935년 천황기관설을 "서양의 민주사상으로써 우리 신성한 흠정헌법(군주가 제정한 헌법 - 기자 주)을 곡해하며 국체의 본래 의미를 교란하는 것으로 불순하여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규탄하면서 천황기관설은 부정당했다.

번역자인 임경화 교수의 해설을 빌리면 헌법을 입헌주의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한계를 명확히 하려했던 천황기관설이 패퇴하고, 국가 주권의 절대무제한성과 신민의 절대복종을 강요한 우익 세력들이 승리한 것이다. 일본 정부가 우익 세력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국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려 쓴 『국체의 본의』는 탄생 과정부터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던 셈이다.

국체 관념은 식민지배를 낳았던 팽창주의와도 연결된다. 『국체의 본의』는 일본이 수행한 침략전쟁이 '역대 천황의 국토 경영의 정신'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주장한다.

(전략) 최근에는 일청‧일러 전쟁도 한국병합도, 만주국 건국에 진력하신 것도, 모두 위로는 아마테라스 대신이 이 나라를 하사하신 덕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국토의 안녕과 애민의 대업을 이루어 온 천하에 위광을 빛내고자 하시는 크신 마음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일본 신민족주의 전환기에 『국체의 본의』를 읽다> 49쪽
 
이 같은 국체 관념에 따르면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도 국체를 위협하는 행위다. 실제로 '조선 독립의 기도'는 '제국 영토의 일부를 참절하여 그 통치권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축소하고 이것을 침해하려는 것'으로 치안유지법상 '국체의 변혁'을 기도하는 행위로 규정돼 처벌받았다.

황국신민교육, 사상 검증 텍스트로 활용돼

사실 『국체의 본의』에서 깊이나 통찰은 찾아볼 수 없다. 애초에 증명이 불가능한 신화에 기대어 천황의 위대함과 권위를 찬양하는 내용을 거듭 되풀이하는 내용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체의 본의』와 국체 관념이 끼친 영향력이다. 『국체의 본의』는 1943년 11월 말까지 약 173만부가 발행됐고, 패전 당시에는 300만 부 가까이 나왔다는 주장까지 있다.

배포 범위 또한 일본 국내는 물론이고 식민지였던 조선과 타이완, 심지어는 브라질 등 일본인 이민자사회 학교에까지 미쳤다. 게다가 학생들의 필독서로 공무원 시험을 비롯한 모든 시험에서 사상을 검증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됐다.

『국체의 본의』는 식민지 조선에서도 황국신민화 교본으로 널리 활용됐다. 일례로 평양사범학교 부속 국민학교에서는 직원조례 때 신전 예배와 함께 『국체의 본의』를 윤독했고, 매월 1회 실시하는 강당 수신에서는 주사가 『국체의 본의』를 중심으로 훈화했다.

이 같은 국체 관념은 식민지 조선인뿐만 아니라 일본인에게도 큰 비극을 불러왔다.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지 않고 머뭇대다가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맞은 이유도 히로히토 천황과 그 측근들이 '황위의 표식'인 3종 신기(태양신 아마테라스가 황손인 니니기에게 하사한 야사카니 곡옥, 야타 거울, 구사나기 검 - 기자 주)를 어떻게 지킬지만 고민하다가 상황을 오판한 탓이었다.

문학평론가 고모리 요이치는 "요컨대 히로히토는 자신의 선조라고 하는 자가 남긴 거울과 칼, 구옥이라는 골동품(혹은 그 복제품)을 지키기 위해 33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 40쪽)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큰 비극을 낳았던 국체 이데올로기가 오늘날 일본사회에서 여전히 살아 남아있다. 해설을 쓴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말이다.

자유민주당의 「일본국헌법 개정 초안」(2012년 발표)은 국민주권이나 기본적 인권의 존중이라는 현행 헌법의 원칙을 형식상 유지하지만, 전문의 첫머리에서 "일본국은 오랜 역사와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국민통합의 상징인 천황을 받드는 국가"라고 선언하고, 개인주의를 적대시하고 가족이나 국가를 우위에 두려는 경향이 현저하다. 전후 일본의 지배적 정당이 지금도 여전히 과거의 국체론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짙게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일본 최대의 우파단체인 '일본회의' 같은 복고적 국가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정계만이 아니라 관계, 재계, 학계 등에도 지지자가 확산되고 있다.-<일본 신민족주의 전환기에 『국체의 본의』를 읽다>172쪽
 
뒤늦은 간행, 언론의 무관심

다만, 1945년 패전 이후 국체 관념이 변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는 있다. 특히 히로히토 천황은 1946년 '인간선언'에서 국체 관념을 부정한 바 있다.

그는 "짐과 너희 국민 사이의 유대는 시종 상호 신뢰와 경애로 묶여지는 것이지 단순히 신화와 전설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천황을 현인신으로 하고, 또 일본 국민을 다른 민족보다 우월한 민족이라 하며, 나아가 세계를 지배할 운명을 가진다는 가공의 관념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1990년대 이후 우익들 사이에서 노골적으로 황실을 비판하는 사람이 출현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이와 관련해서 "이미 천황제는 일본 내셔널리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거나 '천황제 없는 내셔널리즘'이라는 말까지 통용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익세력이 이런 변화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태평양전쟁 이전의 국체 관념, 『국체의 본의』로 회귀하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지만, 어찌됐든 해설과 역자 후기 등에서 국체 관념의 변화를 다루지 않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 해도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지적처럼 국체 관념은 아직 살아있고, 오늘날에도 <일본 신민족주의 전환기에 『국체의 본의』를 읽다>를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오히려 『국체의 본의』가 간행된 지 80년 만인 2017년에야 처음 한국어판이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추천사를 쓴 서경식 교수는 "『국체의 본의』 전문이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번역 간행된다는 것을 알고 나는 어쩐지 허를 찔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것은 우리 조선민족 전원이 알아야 하는 문헌이므로, 당연히 이미 번역서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일본 신민족주의 전환기에 『국체의 본의』를 읽다> 5쪽)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에 분노하면서도 정작 식민 지배를 가능하게 했던 국체 관념은 잘 모르는 그 얄팍함이 오늘날 한국사회가 일본을 인식하는 수준인 것 같아 씁쓸하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 <일본 우익의 어제와 오늘>, 「일본의 자기정체성에 관한 연구시론-근대일본의 에피스테메로서의 국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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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지금은 금속노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