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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이른바 땅콩회항 사태를 경험했던 대한항공 직원들은 이번에는 그때 침묵을 반복하지 않겠다며 단체 메신저 창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무기는 촛불과 가면. 2006년 영화 <브이 포 벤데타>가 2018년 대한민국에서 촛불을 만나 <대한항공판 브이 포 벤데타>가 시작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긴급 캠페인을 통해 그들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여러분의 응원(좋은 기사 원고료)은 대한항공 직원들의 저항에 사용됩니다. (응원하기) http://omn.kr/r5sw [편집자말]
 '땅콩회항' 피해자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이 25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열린 대한항공 조양호 총수 일가의 '갑질 황제경영'을 규탄 정당연설회의에서 발언을 앞두고 눈을 감고 있다.
 대한항공 사무장이었던 박창진. 그는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을 폭로한 후 사무장직에서 강등되는 등 회사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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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위로 서서히 물이 차오른다. 그 물은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입술 위까지 차오르더니 이내 내 코 위까지 차오른다. 나는 숨을 더 이상 못 쉴 것 같은 극심한 공포와 육체적 고통을 느끼며, 간신히 눈을 뜬다.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불리는 그 사건 이후, 아직도 내가 가끔씩 밤잠을 깨는 이유다. 극심한 공황장애의 후유증이다.

후유증

지금의 우리 사회구조가 어떠한지 감히 내가 논할 위치에 있지는 않다. 그러나 나의 현실을 말할 수는 있다. 나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고통의 상황 속에 있다.

회사에 복귀했으나 원래 직위가 아닌 자리로 내려왔고, 심지어 화장실 청소까지 해야 하는 가치의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나는 사회가 그동안 주입하고 세뇌 시켜온 일반적 사회 복종에 대항한 자로서 보복의 한가운데 서 있다. 공정하지 못함과 사회 정의에 대한 나의 자각은 우리 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반항이었던 것이다.

여태까지 나는 자각적 가치관이 아닌 사회가 부여한 가치관에 따라 자발적 복종자의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권력 불균형으로 말미암아 생긴 처절한 비극을 스스로 경험하면서, 그 고통스런 학습의 과정을 통해 나는 비로소 자각하는 인간이 됐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회의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부당함에 호루라기를 부는 순간, 나는 내부고발자가 돼 있었고 수많은 공격과 폄하의 대상이 되었다. 공정하지 못함과 바르지 않는 것에 대한 저항 그리고 존엄함을 지키겠다는 것조차, 나의 권력이 미약하고 부가 적기 때문에 마땅히 포기해야 할 일임을 끊임없이 강요받았다. '권력관계의 불균형에서 살아남기'란 아주 힘든 일임을 나 또한 무수한 부딪힘 속에서 뼈저리게 몸소 체험하고 있다.

우린 안드로이드인가

 대한항공 직원들과 가족, 지지하는 시민 등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 및 경영진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1차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들과 가족, 지지하는 시민 등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 및 경영진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1차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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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리들리 스코트(Ridley Scott)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에서 고도로 과학 기술이 발전한 먼 미래 인류는 험한 우주 식민지를 개척하고, 소비적 노동의 인력을 대체할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이용한다.

이 안드로이드에게는 태생의 순간부터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다. 지배 계층인 인간은 안드로이드로 하여금 마치 자신들과 동등한 인간인양 느끼도록 기억을 주입한다. 심지어 추억, 가족까지 마치 존재하는 듯한 가상의 감정들을 주입시켜 둔다. 그래야 안드로이드들이 이 사회의 조직원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인간은 그들의 희생을 정당화 하며 손쉽게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는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순간, 사냥꾼들에 의해 처참히 제거된다. 그들은 존엄함을 인정받지 못하는, 그저 지배층이 향유하는 부와 번영을 위해서만 존재가치가 있는 희생양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안드로이드 중 일부가 심각한 자기 자각을 하게 된다. 그들은 소모품으로 제거될 뿐이지만 자신들 또한 존엄한 가치를 가진 존재임을 깨닫고 반란을 시도한다. 그러나 반란은 거대 지배 권력에 의해 성공하지 못하고, 영화는 반란자이자 자기 자신을 각성한 안드로이드가 죽임을 당함으로써 끝난다.

대학에 막 입학해 동아리를 홍보하던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마주한 이 영화로, 나는 한동안 철학적 혼돈을 경험했다. 어쩌면 이 영화 속 안드로이드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 같았기 때문이다. 소수의 지배층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피지배 계층으로 전락하고 마는, 또 그런 사회에서 자각하는 순간 더 이상 그 사회로부터 수용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 말이다. 착각 속에 빠져 이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라고 믿으며 자발적 복종자의 삶을 사는 대다수의 약자들 말이다.

안드로이드에 주어진 유통 기한의 유한함, 그것은 공포이다. 이 공포를 통해 지배자들은 복종을 얻어낸다. 마치 현실 세계의 지배층이 다수 소시민들의 노동권(생존권)을 공포물로 담보 삼아 복종을 이끌어내는 것과 다름이 없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권력자와 권력에 대한 저항은 이토록 무서운 결과를 감내해야 하는 과정에 나를 놓이게 만들었다. 이렇듯 나를 둘러싼 환경은 여전히 불합리하고 변화가 없다. 그런데 나는 왜 나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 직원들과 가족, 지지하는 시민 등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 및 경영진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1차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진행된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 및 경영진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1차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면을 쓴 채 이동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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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히 내다보이는 길이다. 결국엔 약자인 내가 이 모든 불합리함의 피해자가 될 것이고, 어쩌면 나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조현아씨의 1심 재판관은 "조 전 부사장은 언제든 사회로 복귀할 수 있겠지만, 박 사무장은 과연 대한항공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말을 판결문에서 언급했었다. 맞다, 이 사건에서 최대 피해자인 나는 어쩌면 그 모든 피해를 다 떠안아야 할 숙명을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이 사회 약자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니 말이다. 어쩌면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피폐해진 정신 건강과 육체적 질병에 시달리는 현재의 나를 봐도 표면상 그 피해는 온전히 내게 돌아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 질 것이 뻔한 게임에 쉽게 승복하고 기권패를 선언하지 않는가. 많은 이들은 '다른 꼼수가 있다'고, 어떤 사람들은 '무모하고 무지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사회의 뜨거운 맛을 아직 제대로 못 봐서', '더 호되게 당해 봐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어느 순간 나는 반사회적 인물이 돼 있기도 하고, 자신의 욕심에 스스로 넘어지고 있는 파렴치한 탐욕자의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있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의 개인의 자각은 이토록 무서운 보복으로 다가 온다.

나는 그럼에도, 이 저항의 몸부림을 자의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내 존엄성에 대한 자각을 그 어느 순간에도 쉼 없이, 계속해서, 각성해나갈 것이다. 이를 통해 불이익의 한가운데 놓이게 될지라도, 그것이 구차한 생명 유지를 위해 빵을 구걸하는 것 보다 고귀한 일임을 보여줄 것이다.

비록 저항의 끝이 온전한 패배로 끝날 지라도, 그 저항이 이 사회의 변화에 작은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차후에 누군가에게 어떤 형태로든 유사한 비극의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들이 나의 사건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믿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

나는 거창한 혁명적 사회 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지만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사실들이 표면화되길 원한다. 그 안에서 서로가 관심을 갖고, 바깥세상으로 나온 사실들이 토론의 장에 서길 원한다. 종국에는 그 토론을 통한 합의들이 현실의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통제 되지 않은 권력들의 오만함은 우리가 엄연히 매일매일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가 그 현실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는 이 불의에 대한 투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용기만으로 정의로움을 쟁취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영혼은 풍족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결과만이 모든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과정에 충실하게 임할 것이다.

 대한항공 직원들과 가족, 지지하는 시민 등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 및 경영진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1차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들과 가족, 지지하는 시민 등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 및 경영진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1차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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