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내시천하' 일부 내용이 논란을 낳고 있다.

지난 4월 22일부터 <개그콘서트> 속 한 코너로 방송을 시작한 '내시천하'는 시청률 면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등 인기를 얻고 있다. 개그맨 김준호를 비롯해 류근지, 송영길 등이 내시로 분장해 왕이 나타나면 내시 특유의 간드러진 목소리로 연기를 하고 왕이 사라지면 '남성적인' 목소리로 반전을 줘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이 코너의 포인트. 다음은 3주 동안 방송된 '내시천하' 콩트의 일부를 글로 옮긴 것이다.

* 4월 22일 방송분
내시1: "상선이 왕이 되심이 어떻사옵니까?"
상선: "내시인 내가 왕의 자리에 앉는다?"
내시2: "내시가 왕이 된다니요. 중전이 되셔야지요."
상선: "내가 중전이 되면 노리개도 찰 수 있고 분첩을 바르고 가로수길을 거닐 수 있겠구나. 내가 조선에서 제일 예쁘다."

 조선시대 내시=여성? 22일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 코너 중 '내시 천하'는 내시에 대한 다소 편협한 시각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내시=여성? 22일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 코너 중 '내시 천하'는 내시에 대한 다소 편협한 시각을 보여준다. ⓒ KBS


* 4월 29일 방송분
내시1: "상선이 왕이 되심이 어떻사옵니까?"
상선: "내시인 내가 왕의 자리에 앉는다?"
내시2: "내시가 왕이 된다니요. 세자를 남친으로 만드셔야지요."
상선: '내가 세자를 남친으로 만들면 중전이 되는 거 아니냐? 그러면 내가 꽃가마를 타고 부채를 펴면서 '내가 제일 잘 나가' (하는 것이냐)"

 조선시대 내시=여성? 22일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 코너 중 '내시 천하'는 내시에 대한 다소 편협한 시각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내시=여성? 22일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 코너 중 '내시 천하'는 내시에 대한 다소 편협한 시각을 보여준다. 또 '명품을 즐기는 여성'이라는 안일한 시선도 포함되어 있다. ⓒ KBS


* 5월 7일 방송분
내시1 : "상선 제가 어제 보았습니다. 류 내시가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선 : "그러다가 남자가 되겠어. 몸을 까고 증명해보시오."

남성의 성기를 거세했을 뿐인 내시를 사실상 '여성'으로 간주한 것이다. 김준호가 연기하는 '상선'은 내시의 신분이나 '성기가 없으므로' 왕이 아닌 중전(여성)이 되기를 꿈꾼다. 그리고 '내시천하' 속 내시들은 여성이 아닌 남성의 몸을 보면서 열광한다. 남성의 성기가 없다고 이들이 곧 여성이 된다는 내용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내시=고환 없음=여자... 볼 때마다 불편하고 이상하다"

무지개인권연대 활동가 기린은 개인 SNS 계정을 통해 '내시천하'를 비판하며 "거세된 남성성이 '정상적인' 남성들에 의해 어떻게 조롱당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정상성의 기준을 남성의 성기에 놓고 이를 박탈당한 존재들은 사회적으로 그려진 여성성 또는 무성애적, 동성애적 성향을 가져야 한다고 막무가내로 규정한다"고 지적했다.

시청자들의 항의 또한 적지 않다. 시청자들은 '내시천하' 코너의 일부가 들어간 KBS 한국방송 페이스북 페이지에 "내시가 왜 여자지. 성전환이랑 같은 의미로 보는 건가"라거나 "코너 내용 자체가 계속 내시=고환 없음=여자를 중심 소재로 끌고 가는 내용이라 볼 때마다 불편하고 이상하다. 분명 문제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민감한 소재인데 여전히 아무 문제 의식 없이 내용을 짜는 것 같다"라고 비판 글을 올렸다.

 22일부터 방송된 KBS 2TV <개그콘서트> 코너 '내시천하'의 한 장면.

22일부터 방송된 KBS 2TV <개그콘서트> 코너 '내시천하'의 한 장면. ⓒ KBS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이승한씨는 "예능에서 내시를 흔히 말하는 여성성을 갖춘 캐릭터로 소비하는 건 그 역사가 제법 길다"면서 "그건 남성의 재생산 능력, 성기능만으로 남성의 정체성을 평가하는 이상한 믿음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씨는 "남성의 성격적 특징을 오로지 생식능력에 기반을 둔 것으로 간주하고, 개인의 성장과정이나 사상 따위와는 무관하게 생물학적 요소인 것으로 비하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남성혐오적인 접근이다"라며 "그러니 성기를 잃은 내시의 행동을 과장하고 왜곡함으로써 다른 남성들과 비교해 웃음거리로 만들며 '불완전한 남성'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이씨는 이 코너에 대해 다른 측면의 우려도 전했다. 그는 "남성이 '불완전한' 지위에 가면 '노리개를 차고 분첩을 바르고 가로수길을 거닐며 꽃가마를 타'는 걸 욕망하는 여성이 된다는 식의 발상은 여성혐오적인 접근이기도 하다"라며 "여성이 바라는 바가 오로지 소비와 과시라는 식의 묘사뿐 아니라, 남성으로부터 남성기를 제거하면 여성이 된다는 식의 묘사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단순히 '남근의 부재'로 치환하는 여성혐오인 셈"이라고 비판했다.

또 "물론 그 코미디를 꾸리고 있는 사람들이 대단히 혐오적인 코미디를 만들어야 겠다는 악의를 품고 그런 걸 만든 것도 아닐 거고 웃은 사람들도 대단한 악의는 없을 것이다"라며 "그저 익숙한 코드를 변주한 것일 테지만 적어도 2018년에는 이것보단 더 섬세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콩트를 만드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KBS "그런 의도 아니니, 조금 더 지켜봐 달라"

동아시아 역사연구자 김종성씨는 "기록상으로 볼 때 한국에서 내시제도가 등장한 것은 9세기 전반인 신라 흥덕왕 때인데 당시 내시는 거세된 남자들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어렸을 때 개에 물려 남성성을 상실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일부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13세기 후반에 고려가 몽골의 지배를 받게 된 뒤로 큰 변화가 발생했다"라며 "출세를 목적으로 거세한 뒤 몽골 내시가 되는 남자들이 늘어나면서 고려 궁궐에서도 거세된 남자들이 내시의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것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군주들이 내시를 두고자 했던 것은 왕권 강화를 위해서였다. 일반 관료들과 달리 내시들은 하층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귀족들과 연계될 가능성이 낮았다. 친자식도 없었기 때문에 권력과 재물에 대한 욕심도 적었다"면서 "내시들은 귀족 관료와는 대립하기 쉬워도 왕실과는 대립할 가능성이 낮았다. 그런 점에서 개그콘서트의 내시 코너는 역사적 현실과 배치된다. 내시가 왕권을 노린다는 설정은 한국 역사에서는 상당히 낯선 풍경이었다"라고 피력했다.

KBS 측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8일 <오마이뉴스>에 "코너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런 의도로 만든 것은 아니니 조금 더 지켜봐 달라"라고 당부했다.

내시천하 개그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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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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