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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발발한 지 어언 68년, 비핵화와 종전이라는 꿈같은 이야기가 지근거리까지 다가왔다. 한국 근현대사에 가장 길고 지난했던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전쟁, 그리고 이념 갈등이 끝이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광장에서 "정상회담은 위장 평화전술"이라고 외치고 "박근혜를 석방하라"는 일부 보수적 노년층이 있고 이들에 대해 적대감을 가진 세대가 있다. 나아가 사회 곳곳에 만연한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승자가 없어 보이는 세대 전쟁은 또 어떻게 종전시킬 수 있을까?

메소포타미아 문명 사람들도 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도 "요즘 애들은 예의가 없다"고 했다던데 세대 갈등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 있을 법하다. 그러나 책 <세대 게임>의 저자는 이 시대 대한민국 사회가 겪고 있는 세대 갈등은 종전의 것과 다른 소위 기획된 "게임"이라고 주장한다.

청년은 비참하고 노인은 화려하다

 전상진 / <세대게임> / 문학과지성사 / 2018.1.5
 전상진 / <세대게임> / 문학과지성사 / 2018.1.5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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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에서 노시인 이적요는 말한다. 이 대사는 자신의 늙음이 벌이고 타인의 젊음이 상인 현실에 대한 절규로 그려진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작금은 한국사회에서 젊다는 것은 노력 아니 '노오력'을 요구하며 험난한 사회구조를 각자도생으로 돌파해낼 것을 요구하니 참으로 '벌'일 수도 있다. <세대게임>은 젊음이 젊은이를 위한 상이 아닌 사회 변화라고 말한다.

"노인은 더 이상 이타적이고 수동적이고 겸양하지 않는다. 이기적이며 능동적으로 탐욕을 부린다. 청년 역시 변했다. 그들은 무엇보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문제해결의 주체였던 청년은 문제로 전락했다." (52쪽)
 
경기는 어렵다지만 노인들을 위한 복지 정책은 매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강화된다. 보수정권이라던 박근혜 정권은 대선 시기부터 전면적인 노인 복지로 지지층을 확보하려고 했다.

노인계층은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책과 정치집단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자기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고 단기적인 복지를 지향한다. 그래서 청년계층은 노인계층이 관철시키는 이기심의 발현을 보고 좌절하고 그들의 무책임함에 적대감을 느낀다.

여기서 하나 의문이 든다. 진정 노인이 욕망덩어리이며 세대 전쟁에서 악역인가? 그렇다 한들 노인의 복지와 미래세대의 복지가 양자택일의 대상인가?

한국의 노년은 실제로 복지가 필요하다(2017년 기준 OECD 회원국 중 66세 이상 노인인구의 상대적 빈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누구도 생존과 기본적인 빈곤 탈출을 위한 노력을 과욕 혹은 사치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노년층의 정책과 이익 집단화 현상을 청년세대의 고난과 엮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점을 필자도 말한다. 한국형 세대 전쟁은 조금 결이 다르다. 그래서 청년의 대척점에 '기성세대'라는, 딱 집어 어느 연령대라고 보기 모호한 세대를 놓는 것이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줄어만 간다. 진즉 노동 시장에 진입한 소위 '기성세대'는 지금의 세대가 느끼는 스펙과 학력의 인플레이션과 취업시장의 어려움을 겪은 바 없다. "나는 최루탄 맞으며 민주화 운동하고 잔디밭에서 기타 치면서 학사경고도 받았지만 대기업 입사했다"는 세대가 된다.

세대전쟁의 진실

이때 사람들은 큰 치즈를 내놓지 않는 식당 주인이 아니라 손쉽게 치즈를 가졌던 사람을 공격한다. 즉 정치적 프레임으로 세대 전쟁이 발발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비난의 세대 게임'이라 정의한다.

<장고: 분노의 추격자>에 등장하는 '만딩고 결투'와 유사하다. 만딩고 결투는 두 흑인 노예가 상대방을 죽여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게임이다. 두 노예는 서로를 죽여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옆에서 생사의 기로에 자신을 던진 악덕 주인이 보인다. 그의 목숨을 끊으면 자유가 손에 들어오나 애초에 노예에게 주인에 대한 공격은 선택지에 없다.

'비난 게임'은 고도로 복잡한 정책의 부작용을 비난할 대상을 세워 공격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세월호 참사를 책임진 자 없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책임진 정치 집단은 여태 없다. 소위 유체이탈 화법처럼 자신이나 자신이 소속된 집단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책임인 것처럼 공을 넘겼다.

박근혜 정부는 이 비난 게임을 이용했다. 연금이 동날 위기 상황은 기존 연금 시스템의 잘못으로,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임금 피크제'를 필두로 한 유연한 노동 환경을 받아들이지 않는 기존 노동자들의 문제로 치환시켰다.

홍준표 "남북합의 결코 수용못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4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4.27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비난 게임'은 고도로 복잡한 정책의 부작용을 비난할 대상을 세워 공격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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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김무성 대표는 "노조가 쇠파이프를 안 휘둘렀으면 소득 3만 불이 되었을 것"이라고 확언한다. 보수 야당이 된 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도 같은 프레임을 사용한다. 그는 "귀족노조가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을 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보수 청년단체인 '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도 같은 구호를 외친다. "정규직 노조가 중요한 개혁마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기업의 투자 의지가 꺾이고 기득권층은 좋은 일자리를 독점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청년이 비참해진 까닭을, 노인을 포함한 기성세대에게서 찾기 때문이다. 내일보다 오늘을 사는 기성세대에게 젊은이의 일자리, 주거 문제, 기업의 상황, 국가 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렇게 기성세대는 미래세대에게 마땅히 남겨야 할 몫을 거덜 낸다." (143쪽)
 
그러나 필자는 장년층 고용과 청년층 채용의 상관관계는 없음을 강조한다. 또 사실 이 모든 갈등과 대결구도에서 교묘하게 책임을 회피하는 집단을 조명한다. 자본가나 권력자 같은 기존의 구조적 문제의 책임자들이다.

예컨대 최근의 군산 GM사태를 보자. 정부의 지원을 바라고 이른바 '먹튀'를 세계 시장에서 거듭해 온 자본의 속성은 비판하지 않는 사람들이 GM 사원들을 '귀족노조'라고 힐난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한 바 있다.

결국 세대라는 이름표를 붙여 세대의 전쟁터에 투신하는 것은 이를 통해 이득을 볼 설계자들의 바람이자 참전자의 손해다. 작금의 고난은 특정 세대가 홀로 만들어 낸 것도 아닐뿐더러 그들을 도깨비방망이처럼 내리친다고 해결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대 전쟁의 장기 말이 될 것을 거부하고 구조의 개혁으로 사회를 변혁하는 일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에게 요구된다. 작은 세대 전쟁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세대 게임 - '세대 프레임' 을 넘어서

전상진 지음, 문학과지성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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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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