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펄프 픽션> 포스터.

영화 <펄프 픽션> 포스터. ⓒ 미라신코리아


갱스터와 마약, 그리고 총격전과 은연 중의 에로티시즘까지. 쿠엔틴 타란티노의 첫 출세작 <펄프 픽션(Pulp Fiction)>은 'B급 감수성'하면 떠오르는 상징들을 몽땅 엮어버린 작품이다. 다만 그 결과가 조악하지 않고 이 영화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승화되었다는 데 이 감독의 특별함이 있다.

무슨 의미인지 영화 내용을 보고도 쉽게 알기 힘든 제목의 <펄프 픽션>은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잡지를 칭하는 '펄프 매거진(pulp magazine)'이란 단어에서 차용해 왔다. 즉 타란티노는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할 뉘앙스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당해 칸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고, 존 트래볼타나 우마 서먼 등 출연 배우들이 침체를 딛고 재기하거나 새롭게 헐리우드에 명함을 내미는 데 훌륭한 디딤돌이 되어주었다. 작품 스타일과는 정반대로 화려한 비단길을 걸어간 것이다.

뒤죽박죽 섞인 시간의 흐름

 영화 <펄프픽션>의 한 장면.

영화 <펄프픽션>의 한 장면. ⓒ 미라신코리아


관객들과 비평가들이 <펄프 픽션>의 가장 특이한 점으로 꼽는 요소는 사건들의 배치다. <펄프 픽션>은 작품 전체가 분명히 하나의 스토리라인을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건들은 옴니버스식으로 쪼개져서 전달되는데, 이때 쪼개진 사건의 조각은 순서를 어긴 채 섞여있다. 따라서 관객들은 하나의 서사를 꼬리에서 머리로, 그리고 다시 몸통으로 왔다갔다 이동하며 감상하게 된다.

오늘날 이런 기법은 익숙하다 못해 식상할 지경이지만, 이 영화가 처음 개봉할 당시에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포스트모던을 대표하는 영화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을 정도다. 실제로 <펄프 픽션>이 국내에 들어왔을 때에, 아직 이러한 전개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지방 극장에서 편집이 잘못된 줄 알고 직접 시간 순서에 맞게 편집에 상영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진다.

이러한 편집 방식을 통해 감독은 관객들이 작품 전반에 더 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돕는다. 시작점부터 끝까지 물 흐르듯 전개되는 작품들은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전혀 없으나, 쉽게 주인공 한 두명의 관점에 몰입한 채로 이야기를 즐기는 데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펄프 픽션>에서 관객들은 각 에피소드 별로 중심 인물을 옮겨다니며 각자의 시선, 배경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관객들은 시간의 배열이 어그러져 있기에, 왜 이 인물이 이 순간 저렇게 행동하는 것인지 바로바로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서사가 전개되는 내내 이를 강하게 의식하게 되고, 새 에피소드가 등장할 때마다 퍼즐을 끼워맞추며 작품이 종료될 때에야 온전히 하나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사실 <펄프 픽션>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다른 영화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당대에나 오늘날에나 더 높은 평가를 받는 데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작품에 깊게 몰입하도록 만드는 감독의 역량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을 것이다. 

<펄프 픽션>에 등장하는 성경의 의미

<펄프 픽션>의 초입부와 결말부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는 바로 성경이다. 새뮤얼 L. 잭슨이 연기한 작중 인물 줄스는 조직의 배신자들을 찾아 처단하는 초반부 에피소드에서 성경 구절을 암송한다(에제키엘서 25장 17절). 또한 에필로그에서 회개를 다짐할 때에 다시한번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며 신의 뜻을 내세운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어두운 뒷골목의 분위기와 유일하게 배치되는 대목이자, 줄스가 뒷골목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성경(구절)이다. 사실 그저 뒷골목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전형적 B급 서사에서 유일하게 '교훈' 혹은 '메시지'라 칭할만할 것을 던지는 것 역시 성경으로부터 회개한 대목 뿐이다.

전형적인 B급 영화들은 앞서 언급한 소재들을 가지고 오로지 자극적인 방향으로만 이야기를 전개하고 영상을 편집하곤 한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겉으로는 B급 감수성의 향기를 짙게 풍기지만, 정작 위에서 언급한 편집 기법을 제외하고도 영상미 자체가 오늘날 보아도 뒤쳐지지 않을 만큼 우수하다.

이는 화질의 좋고 나쁨을 떠나, 작품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에 있어서의 탁월함을 말하는 것이다. 가령 빈센트가 자신의 보스의 애인인 미아를 대접하기 위해 찾아간 락 뮤직 레스토랑에서의 분위기가 그렇다. 식사 중 두 사람간의 어색함 위에서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와 테크노 댄스 이벤트에 참가해 무대에서 춤추는 장면에서의 일면 흥겨우면서도 우스운 역동성 모두가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이처럼 자극적일 수 있는 서사를 절제있게 매력적으로 그려나가는 가운데 화룡점정이 되어주는 것이 성경의 존재이다. 성경을 따라 회개한 줄스와 이를 우습게 여기고 무시한 빈센트 사이 엇갈리는 운명을 통해 타란티노는 삶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던져준다.

B급 감수성과 성경의 조화

 영화 <펄프픽션>의 한 장면.

영화 <펄프픽션>의 한 장면. ⓒ 미라신코리아


물론 이러한 교훈성은 그 자체로서 특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B급 감수성의 세련된 표현'이라는 틀의 마침표로서 찍혀진다면 의미가 달라진다. 더 이상 영화에 동원된 소재들은 자극적이기만 한 도구들이 아니게 되고, '교훈'이라는 메세지를 향하는 의미있는 도구로 탈바꿈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펄프픽션>의 B급 감수성과 성경의 조화는 자극적인 것과 진부한 것의 결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 방향 중 어느 쪽으로 휩쓸리든 한 시대에 수없이 존재하는 비슷한 부류의 영화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두 극단을 적절하게 연결시킴으로서, 그리고 자신만의 뛰어난 연출 기법으로 그 이음새를 자연스럽게 만듦으로서 한계를 극복해냈다.

이 작품 이후로도 타란티노의 영화들에서 B급 감수성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그리고 그 작품들의 성공 역시 늘상 자연스럽게 성취된 것이었고, 타란티노는 자연스레 세계적인 명감독으로 지금까지 명성을 유지해 오고 있다.

왜 타란티노의 영화들은 뻔해 보이는데도 색다른지, 왜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펄프 픽션>은 그가 B급 감수성을 재해석해나가는 자신만의 방향성을 처음으로 보여준 작품이라는 점에서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그 가운데 1990년대 미국의 뒷공기를 느끼는 재미는 덤일 터이다.

영화 리뷰 타란티노 펄프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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