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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공간을 계획하고, 고쳐나가는 과정을 담아갈 이 연재는 앞으로 공간의 완성, 그 이후 공간에서 만들어갈 일들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 기자말

살면서 자신의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는 건 쉽지 않다. 나도 그랬다. 지금까지 몇 번의 이사를 했다. 내가 주로 이사를 다닌 곳은 신도시 역세권의 지어진 지 20년쯤 되는 오래된 아파트였다.

위치는 좋으나 집은 매우, 매우, 매우 낡은 아파트. 그때마다 새 집에서 평생 살겠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한 인테리어 공사를 최선을 다해, 매우 대대적으로 했다. 그때마다 뭔가 새로운 방식의 공간 배치를 꿈꿨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한계는 분명했다.

가장 최근의 인테리어 경험은 약 9년쯤 전이다. 나는 어느 집이나 비슷한 구조인 아파트에 나만의 생활방식을 반영하고 싶었다. 단지 벽지의 색깔이나 싱크대 상하부장의 재질과 디자인만 달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쓰임새의 변경을 원했다.

우선, 가장 넓은 방을 안방으로 사용하는 게 나는 마뜩치 않았다. 잠만 자는 곳인데, 낮에는 거의 비워놓을 그 공간을 왜 집에서 가장 빛이 잘 들고 넓은 곳으로 배치해야 할까. 옛날 우리 안방은 침실이면서 거실이면서 식당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안방은 그냥 잠만 자는 곳이다. 가장 작은 방, 가장 안쪽에 있는 방에 침대만 놓고 쓰겠다, 가장 큰 방에는 책꽂이와 책상을 들여놓겠다는 나의 의견에 동네 인테리어 사무실 실장님은 안 된다는 이유를 백 가지쯤 나열하셨다.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결혼할 때 마련한 열 자짜리 장롱이 들어갈 곳이 없었다. 안방에는 장롱, 침대, 화장대가 기본 옵션이었다. 그걸 깨려는 순간 가구들은 길을 잃고, 공간의 성격은 매우 애매해진다. 책꽂이와 장롱이 함께 있는 풍경은 어딘가 이상했다. 타협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안방의 역할이 고정되고 나니 나머지는 크게 바꿀 수가 없었다. 거실에는 아무것도 놓고 싶지 않다, 주방 한쪽에 붙박이처럼 보이는 냉장고는 안 보이는 곳으로 보내고 싶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버티고 선 키큰 높이의 신발장도 베란다 쪽으로 빼고 싶다, 중문은 달지 않겠다...등등 나의 요구를 듣는 실장님은 무슨 이런 집이 다 있나, 하는 표정이셨다. 그래도 최대한 나의 요구에 맞춰주려 애써주셨다.

하지만 기존의 아파트 배치의 공식대로, 정해진 대로 공사를 하는 데 매우 노련한 시공팀은 나의 익숙치 않은 요구에 늘 당혹스러워 했고, 마무리는 어딘가 조금씩 아쉬웠다. 그것은 성실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선반에 몹시 꽂혀 있었다. 작은 아파트지만 갤러리처럼 꾸며놓고 싶었다. 거실을 비우는 대신 마주 보는 양쪽 벽에 높낮이가 다른 긴 선반을 달았다.

인테리어 사무실 실장님은 선반에 꽂힌 나를 위해 매우 '스페셜한' 장식 선반을 주방 벽에 만들어주셨다. 그것도 매립형으로! 나는 그 선반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보여주시는 실장님 앞에서 떼달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화장실의 타일은 최소한으로 쓰고 싶었다. 포인트로 다른 종류의 타일을 조금만 사용해보자는 실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완성된 화장실에는 포인트 타일이 지나치게 분포되어 있었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거보세요, 예쁘잖아요!"라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시는 실장님 앞에서 역시 떼달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한옥을 사서, 그 집의 골조를 존중하면서도 실상은 거의 새로 짓다시피 대대적인 공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가 원하던 공간을 마음껏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정말, 정말, 정말!!!!! 나는 모든 디테일을 빼놓지 않고 챙기며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이 집에서 구현할 것이라고 다짐을 거듭했다.

그런 다짐으로 나는 건축가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그때로부터 장장 9개월째 씨름을 거듭하고 있다. 나와 건축가의 씨름이 아니다. 나는 요구만 할 뿐, 씨름은 건축가의 몫이다.
대지의 모양을 측정하고, 그 안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의 면적을 확인하는 것이 첫 단추였다. 그뒤로 우리의 집은 점차 구체화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아래의 그림이 그 첫 번째 도면이다.

최초의 도면이다. 햇빛 잘 드는 곳에 안방을 배치하고, 화장실과 샤워 공간을 분리했다. 일반 주택의 기능에 충실한 공간배치였다. 선한공간연구소 엄현정 소장 제공
 최초의 도면이다. 햇빛 잘 드는 곳에 안방을 배치하고, 화장실과 샤워 공간을 분리했다. 일반 주택의 기능에 충실한 공간배치였다. 선한공간연구소 엄현정 소장 제공
ⓒ 이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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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서 가장 취약한 점은 무엇일까. 바로 수납이다. 일단 한옥으로 이사를 하려면 아파트에 쌓여 있는 많은 살림살이를 버리고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는 전제가 뒤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납은 매우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엄현정 소장은 다락으로 그것을 해결하려고 했다. 이 집에서 꼭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화장실과 샤워실의 분리였고, 화장실이 두 개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건축가는 세면대를 화장실 바깥으로 뺄 것을 제안했다. 내가 산 집은 <방1>이라고 되어 있는 쪽이 남향이다. 욕조에 앉아 따뜻한 햇빛을 누리고 싶다는 나의 요구를 반영하여 화장실이 남쪽에 배치되어 있고, 안방과 화장실이 세트처럼 붙어 있다.

이 도면을 받아들고, 나는 새로운 요구와 수정을 요청했다. 안방은 그리 크지 않아도 된다, 부엌을 남쪽으로 하면 좋겠다, 다른 두 개의 방을 좀더 크게 쓰고 싶다, 욕조에서 화단을 내다볼 수 있다면 좋겠다 등이었다. 그러자 엄현정 소장은 다시 아래의 도면을 보여줬다.

잠만 자는 안방의 크기를 대폭 줄인 도면. 화장실 두 개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나의 뜻을 어떻게든 구현하려고 고생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거다, 싶지는 않았다.
 잠만 자는 안방의 크기를 대폭 줄인 도면. 화장실 두 개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나의 뜻을 어떻게든 구현하려고 고생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거다, 싶지는 않았다.
ⓒ 선한공간연구소 엄현정 소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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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만 해도 화장실 두 개는 살아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전히 안방의 위치가 마음에 걸렸다. 낮에는 비워둘 공간에 햇빛이 잘 드는 게 좋은가? 이른 아침 눈 부신 햇살에 눈을 뜨는 게 아침잠 많은 내게 좋은가? 아니었다. 이른바 문간방이라고 하는, 대문 옆 쪽으로 안방을 옮겨보기로 했다.

그런데 워낙 건물 면적이 작아서 모두 다 오밀조밀했다. 어느 한 곳이라도 확 키워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화장실 두 개를, 샤워실과 화장실의 분리를, 세면대의 독립을 포기했다. 도면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능한 모든 곳에 다락을 넣어 최대한 수납 공간을 확보하기로 했다. 

이 도면을 그리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가구와 가전제품 중 이사할 때 가지고 갈 것과 버리고 갈 것의 목록을 정하고, 각각의 모든 사이즈를 재야 했다. 통돌이 세탁기는 놓을 곳이 없으니 빌트인 드럼세탁기로, 김치냉장고와 일반냉장고 두 개는 같이 놓을 곳이 없으니 하나로 통합된 것으로, 스탠드 에어컨 역시 놓을 곳이 없으니 벽걸이 에어컨으로 교체해야 했다.

고장이 나면 고쳐 쓴다, 가급적이면 쓰던 걸 계속 쓰고 새 걸 안 사는 게 나의 모토였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나마 냉장고는 20년, 김치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이 모두 10년은 훌쩍 넘은 것들이라 여기저기 고장이 나고, 삐걱대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졸지에 가전제품 매장에 가서 1년쯤 후에 구매할 가전제품의 목록을 살피고, 팸플릿을 얻어와 사이즈를 각각 표시해서 건축가에게 전달했다. 어디 가전제품뿐이겠는가. 가지고 있던 가구 역시 가로, 세로, 폭이 안 맞아서 거의 가지고 갈 수가 없을 듯했다. 어지간 하면 붙박이로 다시 짜는 걸로 전제하고, 있는 가구는 다 처분을 염두에 두기로 했다.

모든 것은 공간의 협소함 때문이었다. 집 크기에 살림의 사이즈를 줄여야 했다. 원치 않게 미니멀리즘을 실현하게 생겼다. 정리하자고 마음을 먹으니 안 쓰고 묵은 살림들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깨달았다. 가전제품, 가구만이 아니라 옷이고 책이고 신발이고 가방이고 그릇이고 안 쓰고 쟁여두기만 한 것이 그득그득했다. 한꺼번에 정리하기도 일일 테니, 그때로부터 현재까지 나눠주고 버리는 게 일이다.

내가 많이 버렸고, 짐이 별로 없다는 말을 건축가는 '1'도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우리집에 찾아와 매의 눈으로 집 안 곳곳을 스캔했다. 문이란 문은 다 열어보고, 책꽂이에 꽂힌 책 중 높이가 높은 책과 낮은 책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신발은 높은 게 많은지 낮은 게 많은지까지 체크했다.

"이것도 가져가실 건가요?"

그건 가져가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더 버리고 더 버리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완성 직전의 도면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직전일 뿐, 아직 완성은 아니었다. 완성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었다.

일반적으로 안방이라고 할 공간을 과감히 공용 공간으로 바꾸고, 흔히 문간방이라고 일컫는 공간에 안방을 배치했다. 화장실 두 개는 이 공간에서는 사치였다. 과감하게 포기했다. 비울 곳은 비우고, 실용적인 공간은 압축적으로 구성, 공간 효율성을 높였다.
 일반적으로 안방이라고 할 공간을 과감히 공용 공간으로 바꾸고, 흔히 문간방이라고 일컫는 공간에 안방을 배치했다. 화장실 두 개는 이 공간에서는 사치였다. 과감하게 포기했다. 비울 곳은 비우고, 실용적인 공간은 압축적으로 구성, 공간 효율성을 높였다.
ⓒ 선한공간연구소 엄현정 소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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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첨언하자면, 저 도면과 도면 사이에는 노출하지 않은 도면은 물론 보이지 않는 순간이 장강처럼 흐른다. 수많은 숫자들이 도면 아래 깔려 있는 것은 물론이고, 선 하나 그을 때마다 건축가와 시공자, 나는 정말 끙끙대며 토론과 토론과 토론과 토론을 거듭했다.

우리의 이야기에는 일본과 한국의 건축 특징, 보기에 예쁜 것과 살기에 편한 구조의 차이, 그림으로는 가능해 보이지만 구현으로는 불가능한 것들의 문제점, 정해진 예산 범위 내에서의 허용 여부 등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만났다 하면 서너 시간, 네다섯 시간이 훌쩍 흘렀다.

나는 집 한 채를 짓는 게 아니라 우주를 창조하는 것 같았다. 실상 틀린 말도 아니다. 나는 내가 지은 집에서 나만의 세상을 누리며 그곳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는 문장을 완성하고 싶다. 그러니 이 집을 짓는 것이 나의 우주를 창조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나의 속사정을 태곳적 선현들은 아셨나보다. 우주(宇宙)의 한자가 집 우(宇), 집 주(宙)인 걸 보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다.(https://blog.naver.com/hyehwa11-17)



태그:#작은한옥수선기, #한옥, #집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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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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