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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거친 단어와 욕설을 쓰는 경우가 늘었다. 대화를 해보면 친구들이나 형들이 종종 쓴다고 했다. 자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말들이라 왜 문제인지 모른다. 엄마들은 걱정이다. 장난처럼 쓰기 시작한 욕설이 습관이 되면 어쩌나, 자칫 그런 언어습관이 인성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또래들끼리 서로 따라하다가 반 전체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어떡하나라는 걱정들이다.

여러 엄마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던 끝에 담임 선생님께 상의를 드리기로 했다. 아이들의 언어습관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 같아 우려가 되니 잘 지도해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선생님은 충분히 공감하신다며 더 세심하게 아이들을 지도하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전혀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제보하세요!"...아이들은 긴장했다

"요새는 어떠니? 요즘도 친구들끼리 욕도 하고 그래?"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어요. 000는 욕 해서 선생님한테 '주의'도 받았어요."
"그랬구나. 친구끼리 나쁜 말을 하니까 선생님이 야단을 치셨나보네."
"네, 선생님이 제보를 시키면 우리가 손 들고 제보를 하고, 걸리면 주의를 받거든요. 지금까지 주의를 가장 많이 받은 애는 000이에요."

아이와 대화를 하다가 툭 튀어나온 '제보'라는 단어에 깜짝 놀랐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단어이기도 하거니와, 학교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단어였기 때문이다.

아이의 말을 듣고 재구성한 상황은 이렇다. 선생님은 날마다 아이들에게 '제보'를 시킨다. 뛴 아이, 욕설을 한 아이, 쓰레기를 버린 아이, 때린 아이, 놀린 아이 등 제보의 내용은 다양하다. 아이들은 경쟁적으로 제보를 하고 지목을 당한 아이는 선생님으로부터 '주의'를 받는다. '주의'의 단계에 따라 체벌의 수위가 결정된다.

우리 아이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 아이는 제보 시간만 되면 긴장된다고 했다. 자신이 지목받을까 봐 두렵다는 것이다. 한 아이는 억울하다고 했다. 친구로부터 지목을 받았지만 자신은 절대로 하지 않았단다. 하지만 선생님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주의'를 받았다면서 울었다.

또 다른 아이는 친구들로부터 '고자질쟁이'라고 놀림을 받는 통에 전학가고 싶다고 했다. 평소에도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편인 아이가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누구보다 열심히 제보를 한 결과였다. 어떤 아이는 제보를 했다가 그 친구가 자기를 원망하는 소리를 듣고는 다시는 안 하기로 했다고 한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아이들은 '제보'로 인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었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 학부모들은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선생님이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졌다하더라도 교육적으로 적절치 않은 방법임은 분명하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인격적 성장을 이뤄가야 할 학교의 현실은 여전히 씁쓸하다. 존중과 배려, 자율과 협력을 가르치기보다는 효율과 통제, 관리에 더 익숙한 학교 문화가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학교는 총체적 관리도구, 제도 자체가 '미치광이'

 <바보 만들기> 표지
 <바보 만들기> 표지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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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교육운동가로 뉴욕시 '올해의 교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존 테일러 개토는 오랫동안 '학교'로 대변되는 국가교육체계의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해왔다. 그는 책 <바보 만들기>에서 "제 가장 뛰어난 동료 교사들 중에도, 그리고 제가 만나본 가장 훌륭한 학부모들 중에도, 교육이 다른 방법으로도 이뤄질 수 있다고 상상하는 사람이 몇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대규모 학교에서 국가독점 의무교육이 거둔 위대한 승리를 보여준다"(38쪽)고 개탄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명령을 따르는 법 말고는 진짜로 가르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수없이 많은 선량하고 열성적인 사람들이 학교에서 교사로, 직원으로, 보조원으로 일하고들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 사람들의 개인적인 노력이 제도 자체의 추상적인 논리에 파묻혀 버리는 것입니다. 교사들이 아무리 정성을 쏟고 열심히 일해도 제도 자체가 미치광이입니다. 양심이 없는 제도죠. 한참 시를 짓고 있던 젊은이도 종이 울리면 바로 공책을 덮고 다른 교실로 달려가 인간과 원숭이 같은 조상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사실을 외울 준비를 하게 하는 그런 제도니까요" (64쪽)


'우리는 왜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라는 도발적인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학교의 총체적인 관리 아래서 성장이란 불가능하다"(156쪽)고 일갈한다. 학교가 스스로 배움의 과정을 통해 독자성과 자립성을 키우기보다는 순응하고 의존하는 아이들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삶터와 괴리된 채 교실에 갇혀 시간과 과목을 쪼개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사회성, 공동체성을 익힐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제도화 된 학교 교육을 충실히 받아도 지역사회에서 의미있고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면 그 교육은 잘못된 것이고 시간 낭비일 뿐이다.

"교육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든 그것은 독창적인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이어야지, 틀에 맞춘 인간형을 찍어내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 커다란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창의성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자기 인생에 지표로 삼을 가치관을 세울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이 있는 장소, 자신이 함께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정신적 풍요로움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세상에 중요한 일들이 어떤 것들이고 사람이 살고 죽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120쪽)


학교 탄생의 불편한 진실

저자는 획일화, 표준화 된 교과 과정과 관리 매뉴얼에 따라 운영되는 학교교육의 문제를 학교의 기원에서 찾는다.

'국민학교'라는 이름의 현대 의무교육제도는 1819년 프로이센에서 시작됐다. '예나 전투'에서 프랑스 나폴레옹에게 패배한 프로이센은 유럽 열강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의무교육제도를 만들었다.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문건에서 중앙집권화한 학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피히테는 학교가 길러내야 할 인간상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제안했다.

1.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
2. 고분고분한 광산 노동자
3. 정부 지침에 순종하는 공무원
4. 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일하는 사무원
5. 중요한 문제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하는 시민들

당시 프로이센 아동 92%를 교육하는 국민학교의 목표는 강한 독일을 만들기 위한 복종과 순종의 사회화였다. 훗날 독일이 나치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가 되어 세계사적 비극을 남긴 것도 이 같은 교육제도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로이센의 학교교육체계는 미국으로 수출됐다. 일본도 이 교육시스템을 따랐고 군국주의적 교육철학에 바탕을 둔 교육제도를 식민지 조선에 이식했다.

"학교란 특정한 사회공학 모델을 지탱하는 긴요한 부속품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모델은 사람들로 하여금 통제력의 뾰족한 정점을 떠받드는 피라미드 안에서 여기저기 자리를 지키는 돌멩이 노릇을 하게 합니다. 학교는 이런 피라미드 모양의 사회구조가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책략입니다...(중략)...이 어느 것도 필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어느 것도 벗어던질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을 어떤 방법으로 키워낼지 우리에게는 사실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단 하나만의 올바른 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라미드가 가진 환상의 힘을 우리가 깨뜨릴 수 있을 때 이 사실은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41~42쪽)


학교 개혁에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나서야 하는 이유

학교교육체계의 뿌리와 바탕이 이러하니 선한 몇몇의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학교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상황이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지금의 교육체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변화는 필연적이고 혁신은 불가피하다. 학교 교육에 대한 위기 의식이 높으니 더디더라도 변화의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이것은  학교 교육 혁신에 교사 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힘을 합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학교의 해독을 중화시켜주는 것은 가정과 지역사회"(110쪽)라고 충고한다. 학교의 혁신과 회복, 지역사회 내 교육자원들이 선순환하는 교육생태계 구축 등 굵직한 과제들을 실현하기 위해 학부모와 지역이 참여하고 소통해야 한다. 학교와 마을의 경계를 허물고 민주적 소통과 협력적 관계속에서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데 학교 혁신의 길이 있다.

"'교육이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중요한 질문에 개인과 가정, 지역사회가 저마다 나름의 의미를 떠올리도록 하십시오...(중략)...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전문가가 여러분 대신 해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150쪽)

덧붙이는 글 | <바보 만들기>(존 테일러 게토 지음 / 민들레 펴냄 / 2005.7 / 9,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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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출판 담당 기자로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ohmybook20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