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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적한 잎에 잔털이 나 있다.
▲ 잔털제비꽃 넓적한 잎에 잔털이 나 있다.
ⓒ 이새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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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하면 가수 조동진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조동진(1947∼2017)은 작년 8월 28일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의 나이 70세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콘서트를 20여 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 9월 16일 있을 공연 제목은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올지 모를 '하나'의 공연-조동진 꿈의 작업 2017"이었다. 이 콘서트는 조동진이 13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서는 공연이었기에 둘레 사람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올지 모를" 공연이 아니라 '다시는 올 수 없는' 공연이 된 것이다. 후배 가수들은 선배의 콘서트를 취소하지 않고 그 공연 제목 그대로, 그 날짜에 공연을 했다. 이 공연은 존경과 감사, 추모를 담아 한 헌정 공연이었다.

조동진(1947∼2017)은 2017년 8월 28일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의 나이 70세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콘서트를 20여 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
▲ ‘조동진 꿈의 작업 2017’ 공연 포스터 조동진(1947∼2017)은 2017년 8월 28일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의 나이 70세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콘서트를 20여 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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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생 '노래하는 음유 시인'

조동진은 '행복한 사람', '작은 배', '제비꽃', '나뭇잎 사이로' 같은 노래를 불러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가수 유희열은 "철없던 나에게 '정서'를 가르쳐 준 건 조동진"이었다고 했고, 음악평론가 신현준은 "아픈 영혼에 행복 주던 얼굴 없는 가수"라고 했다.

그의 노래가 다 그렇듯 노랫말을 다시 음미하면 그가 천생 '노래하는 음유 시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복한 사람'에서 그는 세상 사람에게 묻는다.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 "외로운가요 당신은 외로운가요" 그런 다음 '그러나' 앞에 '아'를 붙여 "아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 한다. 사실 이 대목을 들으면 더 울고 싶고, 더 외로워지기도 한다.

특히 '제비꽃'은 그가 진정 세상을 노래하는 시인이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쉬운 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려운 시도 아니다. 다만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 같은데 뚜렷이 잡히지 않고, 그 뚜렷이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이 사람들 마음을 뒤숭숭하게 하지 않나 싶다. 아래에 노랫말을 옮겨 본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때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 너머 먼 눈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 있고 싶어


잎이 쑥 잎을 닮았다. 그래서 다른 제비꽃과 바로 구별할 수 있다.
▲ 남산제비꽃 잎이 쑥 잎을 닮았다. 그래서 다른 제비꽃과 바로 구별할 수 있다.
ⓒ 이새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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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은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청맥, 1991)에서 '제비꽃' 시를 쓰게 된 내력을 밝힌다. 그는,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봄바람 속에서 짧게 흔들리고 있는 그 꽃을 발견하게 되면 반가움과 함께 왠지 애처로운 생각도 든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꿈 많은 젊음이 갖는 절망감을 보는 듯해서 더욱 그러하다"고 한다. 이 시의 제목을 '제비꽃'이라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제비꽃'(1985)을 불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제비꽃의 실제 모델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물론 내 노래 속의 등장인물은 내가 살아오면서 실제로 만났던 사람들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중략) 특히 〈제비꽃〉을 지으면서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여성 이미지는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있던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 가운데》의 니나 붓슈만과 프랑스 작가 앙드레 슈발츠-바르트(Andre Schwarz-Bart)의 《내 이름은 고독(A Woman of Named Solitude)》에 나오는 혼혈 노예 '솔리튜드'였다. 아마도 세상과 맞서며 끊임없이 자신과의 투쟁을 벌이는 두 여주인공에게서 상당한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우리와 닮은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꿈과 사랑, 슬픔과 좌절, 그러고는 조금씩 달관해 가는 그 성숙 과정을 노래해 보고 싶었고, 그래서 조금 욕심을 내어본 노래가 〈제비꽃〉이다.
-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청맥, 1991)
 
그는 '제비꽃' 시를 쓰면서 니나 붓슈만과 솔리튜드를 생각했다. 이 시는 동화처럼 서사를 갖추고 있고, 한 소녀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의 말처럼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꿈과 사랑, 슬픔과 좌절, 그러고는 조금씩 달관해 가는 그 성숙 과정을" 노래에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조동진이 쓴 시, 그 시를 쓰게 낸 사연, 노래에 대한 해설이 실려 있다.
▲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청맥, 1991) 표지 조동진이 쓴 시, 그 시를 쓰게 낸 사연, 노래에 대한 해설이 실려 있다.
ⓒ 청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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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조동진 또한 앞글에서 살핀 안동 대곡분교 홍성희(3학년), 김춘옥(2학년)과 마찬가지로 활짝 핀 제비꽃에서 '웃음'("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을 읽는다. 그런데 홍성희와 김춘옥이 제비꽃의 웃음을 직관으로 단순하게 '방글방글' '생글생글'로 붙잡았다면, 조동진은 그 웃음에서 '한 인간의 인생'을 본다. 1연에서는 '꿈과 사랑'(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2연에서는 '슬픔과 좌절'(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3연에서는 '달관'(창 너머 먼 눈길)의 웃음으로 말이다. 그는 제비꽃의 웃음에서, 꿈과 희망을 보고, 힘들지만 그래도 버텨내겠다는 의지를 읽고, 지난날이 한없이 그립지만, 그래서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 있고" 싶지만, 이제는 지금을 긍정하는 달관의 웃음으로 노래한다. 연마다 있는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에서 그 웃음은 저마다 결이 다른 웃음이고,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세상을 알고, 살아가고, 이제 곧 세상을 떠날 때의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베로키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이다. 여자의 머리는 단발처럼 보이지만 뒤통수 뒤로 머리를 묶어 내렸고, 양옆 머리는 펌을 했다. 보통 이 흉상을 ‘제비꽃을 든 여인’(이 여인은 지네브라다)이라 하지만 잘 보면 ‘꽃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왼손으로 제비꽃을 ‘가슴에 조심스럽게 대고’ 있다. 기독교에서 제비꽃은 장미, 백합과 더불어 성모님께 바치는 성실과 겸손의 꽃이다. 지네브라는 신앙이 아주 깊었는데, 베로키오가 지네브라를 제비꽃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대리석. 1476년.
▲ 베로키오의 〈제비꽃을 안은 여인〉 베로키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이다. 여자의 머리는 단발처럼 보이지만 뒤통수 뒤로 머리를 묶어 내렸고, 양옆 머리는 펌을 했다. 보통 이 흉상을 ‘제비꽃을 든 여인’(이 여인은 지네브라다)이라 하지만 잘 보면 ‘꽃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왼손으로 제비꽃을 ‘가슴에 조심스럽게 대고’ 있다. 기독교에서 제비꽃은 장미, 백합과 더불어 성모님께 바치는 성실과 겸손의 꽃이다. 지네브라는 신앙이 아주 깊었는데, 베로키오가 지네브라를 제비꽃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대리석. 1476년.
ⓒ 바르젤로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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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제비꽃을 선물로 받았다. 그는 말한다. "이제 그 소녀들은 모두 성장해서 누군가의 아내와 아기 엄마들이 되었을 터이고, 제비꽃 같은 것은 모두 잊고 말았겠지만, 그러나 제비꽃은 올해도 피어나고 내년에도 어김없이 피어날 것"이라고. 그래서일까. 그는 떠났지만 제비꽃이 필 무렵이 되면 그의 노래 〈제비꽃〉이 생각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제비꽃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네이버 ‘이새별 블로그’에 한번 들러 보세요.



태그:#제비꽃, #김찬곤, #조동진, #우리같있을동안에, #남산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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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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