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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Action Plans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 이하 'NAP') 초안이 공개되었다. 한국은 2007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좌절된 이후 국내외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답변을 요구받아왔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국제사회에 계속하여 공표해왔다.

올해 3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문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이번 여성차별철폐협약 심의과정에서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 포함될 것'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기도 하였다.

이명박 정부 때 수립된 제2차 NAP는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 제정 방안을 마련해보겠다'는 매우 추상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그로부터 만 6년이 지나 수립되는 문재인 정부의 제3차 NAP에는 이제 실제 법제정까지 가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할 역할이 주어져 있다.

그런데 지난달 법무부는 제2차 NAP의 차별금지법 관련 내용을 말 그대로 '복사 후 붙여넣기'한 제3차 NAP 초안을 공개하였다. 아니, 본문 중 '기본법 제정 추진'이라는 문구만은 '방안 검토'라고 세심하게 바꿈으로써 오히려 내용을 후퇴시켰다. 인권을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의 계획안으로 보기에는 눈을 의심케 하는 내용이었다.

초안의 또하나의 근본적인 문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유예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초안은 후퇴한 내용에 대한 변명을 덧붙이듯 '다양한 사유를 이유로 한 차별이 사회문제로 제기되는 상황에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으나 국민 여론과 시민사회의 첨예한 대립상황이 있는 상황'이라고 국내 상황을 설명하였다.

'첨예한 대립상황'이라는 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하면서 구체적인 내용 서술을 피하고 있지만, 이 내용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그 누구보다 정부가 이 '대립상황'의 내용을 국내외에 반복하여 밝혀왔다. 즉, 유엔에서 정부가 반복하고 있는 입장에 따르면 '성적지향 등의 차별금지사유 등에 대한 사회적 논란(controversy)'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을 비롯한 일부 사유를 차별금지법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들, 이것이 초안이 '국민 여론…의 첨예한 대립상황'이라고 부른 상황의 실체다. 그러나 이 주장들은 어떠한 사회구성원들은 법을 통해 평등권을 인정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서, 인권의 대전제인 '인권의 보편성'과 '모든 이의 평등한 존엄성'을 부정하는 주장들이다.

'인권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주장은 NAP가 바꿔내야 할 '문제적 상황'

인권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주장을 용인하면서 인권 정책을 논할 수는 없다. 차별금지법의 내용과 관련하여, 더 좋은 법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회구성원은 법을 통해 인권을 보장받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어떠한 경우에도 민주사회에서 함께 논의할 가치가 있는 주제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초안은 이러한 문제적 주장들을 '첨예한 대립상황', '찬반론'이라고 부름으로써 이들을 민주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당한 의견의 하나인 것처럼 승격시키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근거 마련'과 관련하여서는 '종교계 등의 이견이 큰 상황이므로 국민적 공감대 형성 필요'이라고 서술함으로써 성소수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기 전에는 법을 통한 보호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회구성원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들은 인권 문서에 절대로 포함되어서는 안 되는 표현들이다. 인권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일부 사회구성원을 사회에서 배제하자는 주장을 국가 차원에서 승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10년간 바로 이러한 정부의 태도가 소수자에 대한 차별, 모욕, 혐오를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우리 사회의 인권 상황을 크게 후퇴시켜 왔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차별과 불평등, 모욕과 배제가 일상화되고 확산되고 있는 지금, 인권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주장들이야말로 문재인 정부가 가장 강하게 맞서야 하는 인권 문제다. 차별 선동에 따라 차별금지법 제정이 가로막히고 지방자치단체의 인권조례가 폐지되는 상황들, 문재인 정부의 인권 정책은 지금 이 상황들을 바로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첨예한 대립상황'은 바로 지금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

인권의 보편성을 둘러싼 '이견', '첨예한 대립상황'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니라 바로 지금 차별금지법 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하는 이유다. 소수자에게는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을 제정해주면 안 된다는 주장이 당당하게 나오는 이런 상황이야말로 법제도와 정책을 통해 적극적으로 바꾸어내야 하는 차별 상황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2006년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해당하는 '일반평등대우법'을 제정하면서 이 법은 '무엇보다 모든 차별요소와 관련하여 신호효과를 추구하고 있다'고 그 입법의 취지를 밝혔다. 일반평등대우법의 제정은 '독일에서 다양성이 인정되고 차별이 없는 문화를 창조하겠다는 정치적 의사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국가는 차별금지법을 마련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그리고 그 법을 제정하여 시행하는 과정을 통해 지금과 같은 차별 상황을 바꾸어내야할 책무가 있다.

그럼에도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는 '(사회적 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어렵다'는 앞뒤가 바뀐 주장을 계속해왔다. 한국 정부의 이러한 모순적이고 책임회피적인 태도 때문에 2017년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대한민국이) 그동안 차별금지사유를 둘러싸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하여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조치를 충분하게 취하지 않은 것'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인권의 평등한 향유에 대한 차별의 해로운 영향에 대해 국민과 입법자들의 인식을 높여'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강하게 권고하였던 것이다.

촛불 정부의 소명, 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유엔의 국제인권기구들은 지난 10년간 한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복하여 권고해왔고, 갈수록 그 우려의 정도와 권고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2017년 유엔 사회권위원회, 2018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권고 이행 상황을 중간 보고해야할 3개의 주요 권고 사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연달아 포함시켰다.

2017년 제3차 유엔 인권이사회 국가별 정례인권 검토(UPR)에서는 24개국이 한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여, 차별금지법 제정은 최다 권고를 받은 항목 중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갈수록 강해지는 권고들은 2007년 이후 10년 넘게 법 제정과 관련하여 아무런 진척이 없는 한국의 상황, 그리고 법 제정의 걸림돌로 '사회적 논란'을 거론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 등을 국제사회가 매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은 그동안 유엔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의지와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기한 차별금지 원칙을 실현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여러 번 천명해왔다. 제3차 NAP 초안은 '평등의 원칙은 우리 헌법의 최고원리'라는 선언을 담았다. 이제 그 실현으로 나아가야할 단계이다.

문재인 정부의 NAP는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따른 국가의 책무, 그리고 국내외에 공표해온 약속에 따라 모든 이의 평등권을 실효성 있게 보장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인권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차별을 선동하는 주장들로 차별금지법 제정이 가로막히고 인권조례가 폐지되는 현재의 상황이 '국민 여론의 대립상황'이 아니라 NAP를 통해 해결해야할 매우 심각한 인권 문제임을 명확히 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실제적인 방안들을 계획에 담아야 할 것이다.

촛불 정부의 NAP가 마무리되는 2022년 한국이라면, 평등에 관한 기본법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평등을 확산하는 법·정책을 적극적으로 운용 중인 사회여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사회가 이 단계까지 나아가도록 만드는 일은 촛불로 세워진 정부의 소명이며 촛불로 새로운 사회를 열기로 한 모든 이의 책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혜인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이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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