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이란 뭘까?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솔직함'을 중요한 미덕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거짓말 하지 말 것,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것. 다 좋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진짜 거짓말 하지 않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면 그걸 '솔직함'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걸까?

무슨 말이냐고? 우리는 '말'이라는 것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말은 너무 쉽게 허공에 휘날려 사라져 버리고, '진심'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타인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말은 또 다른 오해와 오독을 낳는다. 아무리 거짓말하지 않으려 하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해보려 해도 그게 상대방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면 좌절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말 말고 다른 매개를 통해서는 어떨까? 지난달 25일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신작 <클레어의 카메라>는 범람하는 언어의 세계 속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다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카메라 속 카메라

 <클레어의 카메라> 스틸컷.

<클레어의 카메라> 스틸컷. ⓒ 콘텐츠판다


만희(김민희 분)는 칸영화제 때문에 출장 온 영화배급사 직원이다. 어느 날 그의 상급자 양혜(장미희 분)가 그를 부정직하다는 이유로 내쫓는다. 어느 부분에서 그런 부정직함을 느꼈느냐는 만희의 질문에 양혜는 명료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부정직한 사람과는 같이 일하기는 힘들다, 정직한 건 후천적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라는 뜻 모를 말만을 반복한다.

해고된 만희는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잠시 칸에 머무른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재직 중인 클레어(이자벨 위페르 분)를 만난다. 클레어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다니는 의문의 여성이다.

만희를 자른 양혜는 감독인 소완수(정진영 분)를 만나는데, 둘은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면서 서로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곤 했던 관계다. 바닷가에서 완수는 양혜에게 만희가 배급사를 '그만 둔 것'을 아쉽다고 말한다. 양혜는 완수에게 만희가 해고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로 그만 둔 것이라고 말했음을 예측할 수 있는 대목. 그리고 양혜는 만희의 영어실력에 대해서 말한다. 영어는 못했노라고. 하지만 영화 내내 클레어가 만희와 대화하는 대목을 집중해서 들어보면, 단순하지만 명료하게 대화한다.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클레어와 대화하는 데에 있어 별 문제는 없다.

양혜 말대로, 서로에게 솔직하지 않으면 같이 일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혜는 만희에게 해고 사유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았고, 완수에게는 해고가 아니라 퇴사라고 거짓말을 했다. 본인 감정에 대해서도 솔직하지 못한 셈이다. 사실 양혜가 만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 건 만희가 완수와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 크다. 물론 양혜와 완수가 공식적으로 교제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나쁠 수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혜는 만희에게 구체성 없는 '너는 정직하지 않아'라는 가치판단 한마디로 자신과 만희 모두에게 솔직해지지 못하게 된다.

클레어는 어떨까. 그는 한마디 말보다 셔터를 누르는 것에 집중한다.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카메라에 담는다. 클레어의 카메라는 완수와 양혜, 만희 모두를 담아낸다. 그러면서 '예쁘다'라는 말을 자주 반복한다. 길거리의 개에게도 '참 예쁜 개구나("Il est beau chien")라고 한다. 클레어는 자기가 마주치는 존재마다 '어떠하다'라고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그 찰나의 순간들을 포착해내곤 한다.

이 부분이 클레어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보통 현실에서 '직관'은 곧바로 상대방에 대한 가치판단으로 이어지기 쉽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서 직관적인 판단을 내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클레어의 직관은 남다르다. 그의 직관은 상대방을 판단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생각했을 때 예쁘다 여기는 미적인 순간을 오롯이 느끼고 이해해 보려고 힘쓰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양혜나 완수가 만희를 판단하는 그 직관적인 언어들이 만희를 이해하는 데에 하나도 유효해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카메라'는 이중적인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홍상수의 카메라는 상대방에게 와 닿지 못하는 사람들을 찍는 기능을 하고 영화 속 클레어의 카메라는 상대를 좀 더 잘 느끼고 이해하기 위한 매개로 작용한다.

가치판단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

 <클레어의 카메라> 스틸컷.

<클레어의 카메라> 스틸컷. ⓒ 콘텐츠판다


말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정당화에 실패하는, 하지만 자신이 실패했음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홍상수의 영화에 자주 나타나는 캐릭터들이다. 홍상수는 매번 인간관계는 단순하지 않으며, 우리는 그 다양한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실패하더라도 계속 의사소통을 성실하게 시도해 나가야 한다는 말을 영화를 통해 건네고 있다. 오독되거나 오해받기 쉬운 말들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에 확실한 방법이라는 그 게으름이 관계를 해친다는 것을, 역시 <클레어의 카메라>는 그려낸다.

양혜는 본인이 만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를 솔직하게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양혜는 한 번도 솔직하게 이야기한 적 없었고 섣부른 가치판단도 서슴지 않는다. 또한 만희와 하룻밤을 보낸 적 있었던 완수도 딱히 다를 바 없다. 파티에 참석한 완수가 발코니에서 짧은 옷을 입은 만희를 보자 한 말은 가관이다. 싸구려 관심의 대상이 돼서 좋을 게 뭐야. 넌 너무 예뻐. 네가 가진 그대로 살아. 뭘 홀리려고도 하지 말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것은 단순한 '맨스플레인'이 아니다. '도대체 뭔 소릴 하는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만희의 표정을 보라. 나는 나 자체로 아름답고, 그래서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었을 뿐인데 내가 관심 받고 싶어서, 뭘 홀리고 싶어서 이러고 있다고? 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당신이 나에 대해서 뭘 알기에 그렇게 충고하는 건데? 아마 완수가 만희에게 소리 지르면서 잔소리하는 장면이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이 턱턱 막히게 했다면, 그건 상대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가 상대를 서슴없이 판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홍상수 클레어의 카메라 김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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