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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기 2016 이천시도자기명장, 이천시 '지강도요'에서
 김판기 2016 이천시도자기명장, 이천시 '지강도요'에서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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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 왔다. 오월의 나무 이파리는 싱그럽고 더욱 넓어진다. 꽃처럼 깊어진다. 가정의 달, 감사, 사랑, 축제 등으로 찾아볼 곳도 많다. 지난 5월 1일, 김판기(60. 지강도요)명장을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이천도자예술마을)에서 만났다.

김 명장은 제32회 이천도자기․꽃축제가 한창인 예스파크 내 '국제인터로컬 워크숍'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인터로컬 워크숍'은 이천 도예가들과 해외 도예가들이 도자제작시연, 전시, 강연 등을 하며 관람객들과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다.

김판기 명장은 2016 이천시도자기명장이다. 김 명장은 이천에서 처음으로 도자 작업을 시작했다. 어느덧 36년 전이다. 그동안 명장의 수상과 전시 경력은 그가 얼마나 작품에 전력투구하고 매진했는지를 보여준다.1997년 동아공예대전 입상을 시작으로 2000년 동아공예대전 대상, 2008년 경기도 공예품 경진대회 금상, 2008년 유네스코 우수 수공예품 지정(award), 2012년 광주 백자공모전 대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1998년『한․일도자기 교류전』을 시작으로 2007년 『중국 정더젼 현대도자전』, 2016년『한불수교 130주년 파리 K-day우수문화상품 전시』2017년 이태리 밀라노 한국공예전 등 단체전과 개인전에 수차례 참여했다.

김 명장은 올해만 3번의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했다.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한 『도자, 설원을 품다』, 뒤를 이어『달항아리전』, 오는 8. 19.(일)까지 한국도자재단 이천세계도자센터에서 열릴『이천공방도: Part1. 장인의 도자기전』등.

김판기 명장에게 이번 축제 기간은 쉼과 재충전의 시간이다.

"이전 도자기축제 때는 작가로서 행사에 참석했어요. 올해는 관람객으로 예스파크와 축제장을 두루 둘러보고 있습니다. 축제는 내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지만 다른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관람할 수 있죠. 아주 오랜만에 축제를 즐기고 있는데 무척 좋네요.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에 아름답고 훌륭한 건물이 들어서고 마을이 형성돼 가고 있어 놀랍고요. 작가로서도 고무적[鼓舞的]입니다. 이번 축제는 예스파크에서 처음 진행한 거라 긴장했거든요. 한데 볼거리 즐길거리, 체험할 거리가 많네요. 도자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꽃도 볼 수 있어 좋고요. 무엇보다 관람객들이 많이 와주셔서 즐거워하시고 흡족해하셔서 좋습니다."

김 명장에게 도자 작업을 하게 된 계기를 들어봤다.

"1983년,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죠.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청자'를 처음 봤는데 굉장히 신기했어요. '천 년 전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이토록 깊은 색깔을 빚을 수 있었을까' 정말 궁금했습니다.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였잖아요. 그 길로 가방 하나 둘러메고 서울에서 이천행 버스를 탔어요. 도자기를 배울 수 있다는 희망에 사로잡혔죠. 무작정 내려왔어요. 근데 막상 이천터미널에 도착해보니 어디로 가야할지 앞이 캄캄하더군요. 당시에는 통신이나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고 이천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거든요. 당연히 아는 사람도 없었고요."

이천터미널에서 내린 청년은 전통가마가 있는 곳을 찾아 신둔면 수광리까지 왔고 한명성 도예가의 우당청자에서 머물게 됐다. 숙식이 제공되고 도자작업을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청년은 만족했다. 많은 이들이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는 우당청자에서 5년 동안 청자와 도자기에 관한 기본 지식과 기술을 습득했다. 그 후 여러 요장을 다니며 백자와 분청 작품, 생활자기 등 다양한 도자기술을 터득하고 연마했다. 그렇게 11년이 흐른 뒤 지강도요를 설립했다.

김판기 명장은 전통도자기법과 한국적 전통성을 충실히 수용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현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취향에 맞춰 지속가능한 작품을 제작하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그의 작품은 우리 전통의 단단한 뿌리와 정체성에 기초한 기법에 현대적 디자인을 접목시켜 소비자가 도자작품을 일상에서 쉽게 접근하게 한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움, 예술성과 실용성을 고루 갖춘 작품이다.'라는 평을 받고 있다.

예컨대 '청자 빗살문양'은 도자기 안은 청자빛, 즉 철유(철이 함유된 유약)를, 바깥은 갈색 유약을 입힌 뒤 신석기 시대 빗살문양을 접목시켰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조각도로 수많은 선을 새겨 흙의 자연스러운 질감과 세련미를 살린 독창적인 제작기법을 사용했다.

김판기 명장의 '청자 빗살문양 다기', 예스파크에서 열리고 있는 이천시도자기, 꽃 축제장 전시 판매부스에서
 김판기 명장의 '청자 빗살문양 다기', 예스파크에서 열리고 있는 이천시도자기, 꽃 축제장 전시 판매부스에서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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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기 명장은 십년을 주기로 작업에 변화를 시도한다. 작가가 작업과 작품에 변화를 주는 일은 쉽지 않다. 변화는 실험의 과정에서 오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우직하게 가야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현재의 편안함과 익숙함에 안주하고 싶죠. 변화는 매우 어려운 시도니까요. 도자기는 마지막에 불이 도와줘야 하는데 그것 또한 쉽지 않아요. 게다가 우리나라 도자기는 세계적으로 우수해요. 선조들의 작품 앞에서 늘 주눅이 듭니다. 한데 수많은 실패를 통해 배웁니다. 공예 관련된 책, 축제, 국내 및 외국의 각종 페어, 파리 메종 오브제 등에서 최근 디자인과 흐름을 봐요. 허투루 흘러 보내지 않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소비자들의 선호도를 읽으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변화를 시도합니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연구하고 많이 실험하고 집요하고 꾸준하게 만들면서 또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 거죠. 천 년 전 우리 선조들은 최고의 하이테크 상품을 만들었는데 물질이 풍부하고 기술이 뛰어난 이 시대에 살면서 더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청자와 분청 작업에 이어 근래에는 달항아리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달항아리는 20년 전부터 제작했고, 최근 높이 80cm 폭 80cm 달항아리 제작에 성공했다.

"물레작업을 할 때 손으로 도자기 형태를 제어를 해요. 이때 작은 작품은 내가 만들고 싶은 대로 주무를 수 있죠. 한데 큰 작품은 달라요. 이번 달항아리는 제 손으로 흙을 제어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워낙 기물이 크다보니 제작하는 데 쉽지 않았죠. 만드는 것부터 건조와 가마에 소성하기까지. 완성품을 유추하며 제작하는 과정에서 알았습니다. 제 손으로 흙을 제어할 수 없는 한계점에 다다르자 오히려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형태가 나오더군요. 인위가 가미되지 않은 한국적인 자연스러움이라고 할까요."

김판기 명장의 달항아리, 이천도자기 꽃축제장에서
 김판기 명장의 달항아리, 이천도자기 꽃축제장에서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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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기 명장은 '도자기는 흙 한 줌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은 항상 진행 중이다. 명장은 전통도자기의 맥을 이어가는 방법에 대해서 잠깐 언급했다.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가고 있는 도예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도자재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신상품 개발비 지원 등을 예로 들었다. 명장은 역사에 남을 발자취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도자기가 발전하고 변화하는 데 약간의 도움을 준 작가로 남고 싶다고 한다.

김판기 명장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또 끝나고 도자기축제장을 둘러봤다. 사고 싶고 선물하고 싶고 갖고 싶은 도자기가 너무 많았다. 꽃도 보기에 좋았다. 5월이다. 


태그:#이천도자기꽃축제, #전통도자기 , #변화 , #예스파크 , #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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