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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물벼락 갑질' 논란의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가 서울 강서경찰서에 폭행,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조사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조현민 전 전무는 녹음기처럼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를 여러번 반복했다.
▲ 경찰서 조사실로 향하는 조현민 1일 오전 '물벼락 갑질' 논란의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가 서울 강서경찰서에 폭행,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조사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조현민 전 전무는 녹음기처럼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를 여러번 반복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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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강서경찰서에 출석한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기자들 앞에서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란 말만 되풀이했다. 그런데 한진그룹 일가가 범한 잘못은 땅콩 회항이나 물벼락 갑질 정도가 아니다. 한국 현대사에 심대한 부작용을 끼쳤다. 역사에 '심려'를 끼치는 수준이 아니라 명백한 죄악을 범하는 수준이었다.

한진그룹은 독재 정권과의 유착을 통해 부당한 특혜를 받고 재산을 축적했다. 일반 국민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돈을 벌었던 것이다. 전두환 정권 말년인 1987년 대한선주라는 해운사를 인수할 때도 그랬다. 정치학자 최용섭의 <재벌을 위해 당신이 희생한 15가지>에 이런 말이 나온다.

"대한선주는 당시 은행 빚 7938억 원이 있었지만, 정부는 한진그룹이 대한선주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전체 빚의 53%인 4207억 원을 탕감해주었다. 나머지 3731억 원의 빚에 대해서도 이자 없이 20년간 원금만 분할 상환할 수 있도록 했다. 박세길은 그의 책 <한국 경제의 뿌리와 열매>에서 한진그룹이 대한선주 인수로 인해 얻은 부당이익을 2조 4600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런 부당이익 취득은 정권과 유착한 결과로 이루어졌다. 다른 재벌도 그렇지만, 한진도 불법 정치자금을 정권에 제공했다. 일례로, 노태우 전 대통령한테는 170억 원을 제공했다. 30년 전에 170억 원이었으니, 지금의 170억 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높은 가치다.

1980년에 전두환 대통령을 예방한 조중훈 한진그룹 총수.
 1980년에 전두환 대통령을 예방한 조중훈 한진그룹 총수.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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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의 재산 축적은 경제민주화라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부동산 문제가 특히 그랬다. 본래의 사업 분야에 전념하지 않고, 부동산을 부의 축재 수단으로 과도하게 이용했다. 오늘날 일반 국민들이 주택 문제로 고생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거기 있다. <노태우 회고록 하권>에 이런 말이 있다. 

"복부인들이 부동산 투기의 주역처럼 여겨졌지만, 사실 부동산 투기의 주역은 대기업들이었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대기업들이 매입한 부동산 규모는 엄청나, 이들이 부동산을 내놓지 않는 한 땅과 집값을 안정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대목을 쓸 때 노태우 전 대통령의 머릿속에 떠오른 재벌 총수가 있다. 조현민 자매의 할아버지이자 한진그룹의 창업자인 고 조중훈이다. 재벌의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자 비업무용 토지를 매각하도록 한 1990년 '5·8 부동산 조치'를 회고하면서 노태우는 조중훈을 떠올렸다.

"한진그룹의 조중훈 회장은 제주도에 약 400만 평에 달하는 목장을 갖고 있었다. 그는 5·8 부동산 대책에 따라 이 토지가 비업무용으로 판정되어 매각 대상에 오르자, 어떻게든 피해 보려고 애를 썼다. 결국 뜻대로 되지 않자 서울대와 인하대에 기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재벌을 위해 당신이 희생한 15가지>에서는 "재벌 기업들은 총수 직속의 부동산 전담팀이 따로 있거나 부동산을 전담하는 계열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한진에도 그런 기업이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2012년에 발행됐다.

"한진그룹 계열의 정석기업은 부동산 임대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2005년 매출 규모는 267억 원이지만, 서울 소공동 해운센터빌딩 등을 소유하며 자산 가치가 매출의 10배를 넘은 알짜 기업이다. 이 회사는 한진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출발점으로 몇 년 전 조양호 회장 형제 간에 법정 다툼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부동산업을 담당하는 회사가 재벌 그룹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재벌의 부 축적에 부동산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뜻한다."


운송 분야에 역점을 두겠다며 정부 특혜를 받고 주식투자를 받은 한진그룹이 부동산업에 정신을 쏟고 그로 인해 국민들 주택 문제까지 위협했던 것이다. 한진그룹의 부도덕성은 경제민주화를 저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정치민주화를 훼손하는 방법으로도 재산을 축적했다.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위기에 빠진 박정희 정권을 구하고 이를 통해서도 곳간을 불렸다.

김대중 납치사건 직후. <김대중 자서전 1권>의 한 페이지.
 김대중 납치사건 직후. <김대중 자서전 1권>의 한 페이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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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8월 8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지휘 하에 김대중 납치사건이 도쿄에서 발생했다. 일본 영토에서 한국 국가기관이 공권력을 행사한 이 사건으로 한일관계는 급속히 악화됐다. 이때 조중훈은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이 김대중 사건을 갖고 박 정권을 심하게 압박하지 않도록 하는 데 관여했다. 재미동포 언론인이자 백악관 출입기자였던 문명자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에 이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본 정부의 목소리는 눈에 띄게 작아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박정희가 돈으로 다나카의 입을 막았다'는 루머가 분분한 실정이었다. 그러던 차에 73년 10월 ······ 조중훈 사장이 미국 주재 한국 관리에게 떠벌린 무용담이 몇 다리 건너 필자의 귀에 들어왔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내가 PP(박정희)의 부탁으로 오사노를 통해 다나카 수상을 만나 김대중 사건을 해결했다.'"


오사노 겐지는 전일본항공 대주주였다. 조중훈이 오사노의 도움으로 다나카 총리를 만나 사건 무마를 청탁했다는 것이다. 문명자 기자는 한국 재계 인사로부터도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청와대 인사로부터도 비슷한 제보를 받았다.

문명자는 제보 수집에 그치지 않고 조중훈의 출입국 기록, 오사노 및 다나카의 호텔 숙박 기록 등을 조회했다. 이를 토대로 납치사건 직후에 세 사람이 하코네 코라 호텔에 함께 숙박한 사실이 있으며, 외환은행 도쿄지점에서 인출된 3억 엔이 2차례에 걸쳐 조중훈한테서 다나카에게 넘어간 사실을 확인했다. 또 조중훈이 다나카의 마음을 사고자 서울에서 여성 다섯 명을 데리고 간 사실도 확인했다.

다나카 가쿠에이.
 다나카 가쿠에이.
ⓒ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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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 엔의 정치자금 기부를 통해 조중훈은, 납치사건으로 국제적 고립 위기에 빠진 박 정권을 구했다. 박 정권의 민주주의 탄압을 도운 것이다. 문명자의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조중훈이 미국 주재 한국 관리를 만나 '무용담'을 소개했을 때의 상황이다.

"조중훈은 자신이 사건을 그렇게 무마했으므로 PP의 앞날이 승승장구할 것이며, 그런 공을 세운 자신의 앞날은 또 얼마나 양양할 것인가 하고 기염을 토했던 것이다."


이런 대목도 있다.

"이렇게 3억 엔을 들여 다나카 매수 공작에 성공한 후 조중훈과 대한항공은 그의 말대로 승승장구했다."


한진그룹은 정경유착도 모자라 경제민주화 및 정치민주화 탄압에까지 가담했다. 거기서 얻은 대가를 곳간에 쌓아놓았다. 땀 흘려 정상적으로 돈을 벌지 않았던 것이다. 부당하고 불법적인 재산 위에 올라앉았던 것이다. 그렇게 축적된 조중훈의 재산이 조양호를 거쳐 조현민 남매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한진그룹은 갑질 피해자들뿐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도 잘못을 범했다. 역사에 '심려'를 끼치는 정도가 아니라 죽을죄를 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가문은 역사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닌 것들 위에서 스스로 내려와야 한다. 다른 재벌들도 마찬가지다. 



태그:#한진그룹, #조중훈, #조현민, #물벼락 갑질, #김대중 납치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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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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