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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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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휴일이라 구내식당이 아닌 밖에서 식사할 수밖에 없는데 호텔 수준의 구내식당 밥을 먹다가 일반 식당 밥을 먹으려니 무엇을 먹을까 망설여질 때가 많다.

"먼저 가서 식사하고 오셔."
"그럴까! 그런데 뭘 먹었으면 좋겠어?"
"당신 입에 들어갈 걸 왜 나한테 물어? 하하."
"하하. 그러게!"

딸아, 오늘은 쉬는 날이니 집에서 점심을 먹었겠구나. 아버지는 짜장면을 먹었는데 네 엄마가 해주는 밀가루 음식 말고는 소화를 못 시키는 사람이라 속이 좀 편치 않다. 너도 엄마가 해주는 수제비를 참 좋아했는데,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먹는 얘기가 나왔으니...

아무리 주인을 잘 만나 하루 세끼 참치 통조림에 이밥 먹는 개나 고양이라도 불행할 수 밖에 없다. 이유는 참치 통조림을 먹던, 생선을 먹던, 개나 고양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선택의 자유야말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이다. 삶이 재미없다 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보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 역시 너희들과 외식을 해도 돈은 아버지가 내면서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결정권은 오롯이 엄마와 너희들에게 있지 않으냐? 이런 경우 내 아내와 자식들이 즐거워하기에 참을 만 하지만 회사 일은 좀 다르다. 시키는 일만 하면 재미가 덜하다.

아버지의 윗세대는 집안일에 있어서만큼은 크고 작은 그 모든 것을 당신께서 선택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든 잘못된 선택이었든 그것은 하나의 권리였고 그 권리는 가족들에게 하루 두 끼 수제비만 먹여도 가족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freedom of choice

너와 나 따질 것 없이 지금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일이다. 물론 잘못된 선택에 따르는 업보는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그 무엇이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의 선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삶의 긴장감을 느끼며 내가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딸아, 회사에서도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아무런 고민 없이 남들이 짜장면 시키면 "나도" 하지 말고 "나는 잡채밥" 씩씩하게 외쳐라. (잘못하면 동료들 간에 미움받을 수도 있으니 요령껏 잘 해라.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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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짬뽕

신미균

5층에 있는 직업소개소에서
신상명세서를 적고 나오는데
문 앞 복도에
누가 먹고 내놓은
짬뽕 그릇 보인다

바닥이 보일 듯 말 듯
남은 국물
1층까지
죽기 살기로 따라 내려오는
참을 수 없는
냄새

짬뽕

(시집 '웃기는 짬뽕' , 출판:푸른사상)




태그:#모이, #딸바보, #아버지, #딸사랑, #짬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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