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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을 주는 것들
- 베르톨트 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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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유명한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Brecht)의 시 '즐거움을 주는 것들(Vergnügungen)'을 읽어 보자. 심오한 비유와 상징으로 인생에 대한 통찰을 묵직하게 담아낸 건 아니지만, 제목 그대로 즐거움에 관한 일상적인 목록을 작성하듯 가볍게 쓰여진 것이 이 시의 특징이다.

동독 베를린에서 주로 활동했던 브레히트의 다른 저작들이 대개 그의 사회주의적 정치 성향을 강하게 보여주는 반면, 이 시는 정치색이 드러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독일어로 쓰여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1950년대 독일 고유의 지역적 색채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이 시의 또다른 특징이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 살아도 느낄 수 있을 법한 일상 생활 속 소박한 만족감이 담겨 있다.

한때 웰빙이란 단어가 유행하더니, 그 다음에는 욜로(YOLO)를 잠깐 외치다가, 요즘에는 각종 매체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소확행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맥락을 보면 조금 씁쓸해지기도 한다. 가성비 좋은 맛집을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에 한참 시간을 쏟은 후에야 한 끼를 때우고, 야근 후 집에서 혼자 치맥을 즐긴다거나, 주말에 넷플렉스로 영화를 몰아서 보는 것 정도로 우리가 이미 행복하다니.

이렇게 소확행으로 규정되는 행복에는 미래에 대한 어떠한 기대감도 없고 타인과의 연대도 없다. 그저 잠깐의 즐거움으로 현재의 불안과 고통을 피하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잠시 동안이라도 이렇게 안락한 기분을 느끼며 사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과연 이걸 행복이라고까지 부를 만한가.

행복론은 철학사의 오랜 주제 중 하나로 다루어져 온 만큼, 서양 고대 철학에서는 행복을 즐거움과 연관지어 논의하기도 했다. 즐거움을 소극적으로만 규정하면, 단순히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즐거운 것이고, 따라서 고통을 피하고 오로지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고통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고 순수하게 즐겁기만 한 행동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때로는 약간의 고통이 동반될 때 더 큰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 7권(1153b-1154a)에서 '행복이 완전한 것이라면 그 완전함은 개념상 어떤 것이 더해지지도 빠지지도 않아야 하므로, 행복한 삶 속에는 즐거운 삶이 당연히 들어 있고, 행복이라는 개념을 논하는 데 있어서 즐거움의 개념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제10권(1175a-1176a)에서는 '즐거움을 주는 행위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 만큼, 각각의 행위가 주는 즐거움이 다르고, 같은 행위라도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이 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 다시 말하면, 행복이 삶의 목적이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행위를 한다.

브레히트가 쓴 시처럼 나만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도 한 번 쭉 적어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했듯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그것들을 꼭 실천하자. 행복해지기 위해.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Aristoteles,1969, Nikomachische Ethik, übersetztvon F. Dirlmeier, Reclam.
Brecht,Bertolt, 1954/1993, Bertolt Brecht Gedichte 5: Gedichte undGedichtfragmente 1940-1956, 본문 인용된 시는 필자 번역, Aufbau-Verlag Berlin und Weimar Suhrkamp Verlag Frankfurt am Main.



태그:#즐거움, #소확행, #행복론,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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