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 망가졌다. 무려 950일 동안 전방 30cm 안에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의 곁을 지켜준 핸드폰이 더 이상 내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멘붕'(깊은 혼란)에 빠졌다.
이 친구를 당장 어떻게 살려낼지부터 이 안에 담긴 소중한 정보들을 어떻게 살려내야 할지 신경이 온통 핸드폰으로 향했다. 껐다 켰다를 반복해보지만, 핸드폰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내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
-핸드폰이 망가진 첫째 날나는 하굣길에 절친한 친구와 1시간 정도 전화를 하면서 집에 가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핸드폰 고장으로 이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먼저, 집에 가는 버스에 탑승해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핸드폰을 바라보며 창문의 커튼으로 바깥 햇빛을 막았겠지만, 핸드폰이 없으니 차창 밖으로 보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동, 옷차림, 표정 그리고 풍경들을 보면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후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핸드폰을 하면서 강아지가 이끄는 대로 가는 편이었는데, 핸드폰이 없으니 강아지가 평소에 어디를 자주 가는지, 어디를 제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강아지와 같이 나도 함께 산책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둘째 날
나는 항상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으로 뉴스와 실시간 검색어를 정독한다. 핸드폰이 망가진 사실을 까먹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핸드폰의 홈버튼을 눌러 보았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 벽에 걸린 아날로그 벽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후, 학교 갈 채비를 하였다.
학교에 갈 준비를 하면서도 핸드폰으로 영상을 시청하며 양치를 하고 옷을 입었는데 오늘은 거울로 얼굴을 보며 양치를 하고 옷을 입었다. 밤사이 부은 내 얼굴을 보는 이때만큼은 핸드폰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오늘은 수업이 한 개뿐이라 듣고 곧장 집에 왔다. 확실히 핸드폰이 없으니 수업에 집중도 잘 되고 좋았다.
-셋째 날
약 두 달전부터 계획되어있던 가족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여행지가 집에서 약 4시간 정도 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어 가는 내내 노래와 드라마를 시청하며 여행 가는 길을 즐기고 싶었으나 스마트폰의 부재로 이마저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여행길에 올랐을 텐데 이번엔 가족들과 함께 농담도 주고받으며 여행을 시작했다.
-넷째 날드디어 여행이 끝나고 집에 가는 날. 전 날만 해도 스마트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 재미난 여행 후기를 친구들에게 어서 들려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입이 간지럽고 순간 일상이 재미없게 느껴졌다. 이건 스마트폰의 문제가 아닌 '핸드폰' 자체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마지막 날처음으로 불편한 날이었다. 요즘은 학과 공지가 홈페이지가 아닌 단체 채팅방에 올라오는데 그런 것들을 바로 읽을 수 없으니 너무 불편하였다. 시험이 끝나고 곧바로 집에 가서 컴퓨터로 학과 공지를 읽었다. 별일이 없었다는 점에 크게 안도할 수 있었다. 집에선 스마트폰이 크게 필요하지 않아,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하는 나로선 완전히 스마트폰 없는 생활에 적응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스마트폰 없는 5일의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 최소 3-4시간씩 사용하던 나로서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일상 전체가 뒤틀릴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여유가 생기고 주변을 좀 더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과제 수행 및 학과 공지 확인 등의 학교생활과 소통에 문제가 조금 있었지만, 스마트폰이 없음으로 얻는 이점 또한 나쁘지 않아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대인들이여!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지 말자.
스마트폰은 잠시 멀리하고 주위를 둘러보자.
나의 핸드폰아! 그동안 수고했다.
다음 생엔 좋은 주인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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