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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단 한번 사막에 발을 디딘 사람은 더 이상 사막을 벗어날 수 없다.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이 독특한 근원 한가운데서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사막에서의 삶은 근본으로 축소된다. 사막이 내뿜는 절대적 고요와 고독 속에서 인간은 그가 본래 속했던 곳, 바로 자기 자신에게로 내던져지고 만다."

30여 년 동안 전 세계 25곳의 사막을 홀로 건넌 탐험가 아킬 모저가 자신의 저서인 <당신에게는 사막이 필요하다, 2013년>에서 말하는 '당신에게 사막이 필요한 이유'이다.

파란 하늘과 황금 모래길... 내가 간 길이 길이 되었다.
 파란 하늘과 황금 모래길... 내가 간 길이 길이 되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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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그걸 아는 이는 별로 없다.
 흙먼지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그걸 아는 이는 별로 없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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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넘보려면 시간, 체력 그리고 경비가 따른다. 하지만 이 3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기란 쉽지 않다. 여행은 상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떠나는 것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면 더욱 그렇다. 망설이면 손해다.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광대하고 건조한 곳. 면적은 860만㎢(*미국 906만㎢), 동서 길이 5600㎞의 시간이 멈춰버린 북아프리카의 적색 평원. 그곳이 사하라 사막 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니 사막을 꿈꾸기는 쉬워도 비행기 트랩을 오르기는 쉽지 않다.

<아킬 모저>의 책이 한국어로 출간되기 훨씬 이전 그들에게도 사막이 필요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곳 사하라 사막을 달리기 위해 한국의 열혈남녀 15명이 의기투합했다. 회사원 성직자 가정주부 대학생 직업군인 자영업자 은행원 신문기자 연구원 등 직업도 사는 곳도 모두 달랐다. 사막레이스 출전 경험은 전무(全無) 했다.

하지만 그들은 생각과 다짐을 행동으로 옮겼다. 물론 거대한 자연에서 영혼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아킬 모저와 같은 사막여행은 아니다. 사막을 달리기 위해서다. 한국을 포함해 36개국에서 156명의 선수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156명의 건각들이 사하라의 열사 위로 뛰어들었다.
 156명의 건각들이 사하라의 열사 위로 뛰어들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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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광야를 가로질러 고래계곡으로...
 가자! 광야를 가로질러 고래계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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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는 2010년 10월, 이집트 지역 사하라 사막에서 5박 7일 동안 260km의 거리를 38km 35.7km 43km 38.4km 95.3km 3km로 나누어 달렸다. 출국 6개월 전부터 카이로에 집결해서 경기가 열리기 직전까지 나는 대회 신청, 장비 준비 그리고 사막에서 살아남는 노하우 모두를 대원들에게 전수했다. 그들은 나를 '대장'이라 불렀지만 정작 나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대원 모두를 챙기고 소소한 질문에까지 답해 주느라 녹초가 되었다.

매일 아침, 사막의 스산한 새벽 기운 속에 출발신호가 떨어지면 태양은 기다렸다는 듯이 선수들을 향해 50도가 넘는 열기를 쏘아댔다. 그대로 노출된 종아리와 팔뚝은 속수무책으로 타들어갔다. 선크림을 발라도 살갗이 검붉게 익어갔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하중, 흐르는 땀 줄기과 멈추지 않는 갈증, 터진 발가락과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만 갔다. 겁 없이 덤벼든 인간들이 혼쭐이 나 하나 둘 모래위에 쓰러지면, 후송차량이 수시로 탈진과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한 선수들을 실어 날랐다.

나는 국가대표! 펄럭이는 36개 출전국의 국기들
 나는 국가대표! 펄럭이는 36개 출전국의 국기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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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서부 건천지역 호숫가에 설치된 첫 번째 베이스캠프
 카이로 서부 건천지역 호숫가에 설치된 첫 번째 베이스캠프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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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과의 사투는 진즉 시작됐다.
 모래바람과의 사투는 진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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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15명의 한국선수들은 엄청난 투혼을 발휘했다. 하지만 신출내기들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지… 38.4km 레이스 4일째 저녁 캠프, 한국선수 일부가 보이지 않았다. 저녁 5시 40분, 제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선수와 스태프 모두 초조하게 기다릴 즘, 둥 둥 둥… 선수들의 도착을 알리는 북소리가 캠프 안팎으로 울려 퍼졌다. 나는 직감으로 그들이 한국선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김용하(17:44), 박영선(17:45), 김선미(17:46) 그리고 신동채(17:47) 선수가 1분 간격으로 도착했다. 자신의 체력을 넘어 스스로의 한계를 넘나들었다.

레이스 6일째, 전날 오전 6시 30분에 시작된 무박 2일의 95.3km 레이스에서 선수들에게 주어진 31시간이 오후 1시 30분에 종료됐다. 마지막 구간에서 결국 2명의 외국 선수가 레이스를 포기하고, 한국의 신동채 선수만이 캠프를 향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신발을 칼로 찢어 발목까지 퉁퉁 부은 발을 밀어 넣고 출발했는데… 침묵 속에 시간이 더디게 흘러갔다. 모두의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는 더 이상의 부상 악화 없이 무사히 캠프에 도착하기만이 간절했다. 

나의 발목을 잡는 복병은... 발목아래 물집이었다.
 나의 발목을 잡는 복병은... 발목아래 물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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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의 밤... 쏟아질 듯 밤을 밝히는 은하수 무리
 사하라의 밤... 쏟아질 듯 밤을 밝히는 은하수 무리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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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시간을 2시간 넘긴 오후 3시 30분! 둥 둥 둥… 또 다시 북소리가 울렸다. 그는 온 몸이 상처로 얼룩진 채 비틀거리며 캠프로 다가섰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가시밭을 밟는 듯 했어요.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걷다가 쓰러져 죽더라고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내 의지가 강해도 아픔이 사라지기는커녕 육신의 고통이 정신과 영혼에까지 물어뜯는 것 같았어요.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아팠지만… 지금은 행복합니다." 목사님은 캠프입구에 도열한 선수들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하고나서, 부축하는 스태프 어깨에 무너지듯 쓰러졌다.

레이스 마지막 날, 한국선수 모두는 카이로 기자(Giza)지구에서 스핑크스와 삼대 피라미드를 끼고 돌아 피니쉬라인에서 영광의 양탄자를 밟았다. 열사와 싸우고 모래폭풍 속에서 밤을 지새웠지만 그들의 표정은 여유만만 했다. 사막을 건너는 방식이 사뭇 아킬 모저와는 다르지만, 바쁜 일상에서 자신을 추스르려 떠났다 피곤에 지쳐 되돌아오는… 깃발여행보다는 나은 듯싶다. 그들도 사막이 내뿜는 고독 속에서 잊었던 자신을 만났을 것이다. 나도 그들과 함께 밤하늘의 무수히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최고의 행복감을 느꼈으니 말이다. 세월이 흘러 다시 일상에서 만난 그들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자신 영역을 확장하며 성장했다. 여전히 자신의 가치를 더 견고히 다지고 있었다.

우리는 사하라를 함께 넘어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사하라를 함께 넘어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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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노라, 뛰었노라 그리고 완주했노라~!
 왔노라, 뛰었노라 그리고 완주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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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사막을 달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가장 자유로운 공간에서 가장 절정의 순간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사막이다. 모래와 하늘, 지구상 가장 단색의 공간에서 영혼의 속도로 걷는 낙타와 보조를 맞추는 것도 괜찮다. 선수들은 아무것 없어 보이는 사막에서 지금까지 몰랐던 다른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아는 것을 써먹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계획하고 생각하는 시간보다 행동하는 시간을 더 늘리자. 아는 것보다 하는 게 힘이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사막이 필요할지 모를 일이다.

한국의 팀 출전 멤버 <프리덤> 3인... 모두 결승선을 넘었다.
 한국의 팀 출전 멤버 <프리덤> 3인... 모두 결승선을 넘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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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막, #오지, #김경수, #이집트,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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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핑계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드는 조금은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오지레이서라고 부르지만 나는 직장인모험가로 불리는 것이 좋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난 19년 넘게 사막과 오지에서 인간의 한계와 사선을 넘나들며 겪었던 인생의 희노애락과 삶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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