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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실
 나는 미국 대학에서 강의한다. 가르치는 게 업이지만, 매년 빠짐없이 수업도 듣고 시험도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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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 대학에서 강의한다. 가르치는 게 업이지만, 매년 빠짐없이 수업도 듣고 시험도 치러야 한다. 게다가 성적이 시원찮으면 재시험도 감수해야 한다. 해마다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윤리규정 교육이 그것이다.

이 필수교육은 다양한 내용을 다룬다. 예컨대 학자가 지켜야 할 연구윤리에서부터, 얼마 이상의 선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금지규정에, 학생들의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가 따위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교육이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은 성인지감수성(젠더의식)이다. 여기에는 어떤 행동이 성폭력에 해당되는가 뿐만 아니라, 타인의 성폭력 사건을 인지했을 때 어디에 어떻게 신고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 내용이 담겨 있다. 교육 내용을 숙지했는가를 테스트하는 간단한 시험도 포함돼 있다.

앞서 말했듯 이것은 매년 이수해야 하는 의무교육이다. 만일 귀찮거나 바쁘다고 건너뛰면 어떻게 될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교육을 받지 않으면 연봉 인상자 대상에서 자동으로 제외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좋든 싫든 기를 쓰고 기간 내에 수료증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나는 '아동학대신고 교육'까지 추가로 받는다. 입학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기 때문인데, 신입생 가운데 미성년자들이 끼어있는 탓이다. 미성년자들이 성적으로,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학대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 나는 해당 기관에 신고할 의무를 진다. 그 의무를 게을리할 경우 형사 입건 될 수도 있다.

교육을 받고 시험을 보는데, 80점을 넘기지 못하면 통과할 때까지 몇 번이고 시험을 봐야 한다. 솔직히 말해 귀찮다. 하지만 매년 비슷한 내용을 반복해서 교육 받다 보니 달달 욀 정도로 익숙해지고, 이것이 서서히 나의 태도를 바꾸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강제로 시작된 교육은 세상의 문제에 대면할 용기를 주고 있다. 그 결과 성폭행 생존자들을 돕는 방법을 배우거나, 심폐소생술을 익히는 것과 같은,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한 선택까지 하게 되었다. 이게 교육의 힘일 것이다.

 한국의 경찰, 검찰, 법원은 교육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찰, 검찰, 법원은 교육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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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찰, 검찰, 법원은 교육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의무화된 성 관련 교육은 예비군을 대상으로 한 반공 강연 비슷한 분위기가 되기 쉽다. 흔히 이런 교육은 강사에 따라 내용이 자유자재로 바뀌는 '비체계성'을 특징으로 하며, 수강자는 대개 좀비같은 표정으로 앉아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내가 학교에서 받는 교육은 모든 직원이 알아야 할 최소한의 내용이 메뉴얼화 되어 있어, 모두가 동일한 내용을 배우게 된다. 교육 방식은 간편하고 효율적이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관련 지식을 익혀야 수료할 수 있고, 이 의무교육을 받지 않으면 심각한 불이익을 받는다.

내가 교육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한국의 경찰, 검사, 판사들에게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투 운동의 배경에는 제 역할을 못해 온 경찰, 검찰, 법원이 있다. 법과 정의가 공정히 집행되어 왔다면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성폭력 생존자가 처음 찾아가는 경찰서에서부터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경찰관이 생존자 보호 의식이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고,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주거나 심지어 가해자와의 합의나 고소 취하를 종용하는 일까지 있다. 비록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하나, 증거수집 단계에서부터 수사의 체계성과 엄밀성이 결여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경찰들의 피해자 대응법을 철저히 메뉴얼화 해 교육하는 것이 첫 단계일 것이다. 검사나 판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에서 미투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서지현 검사가 고발한 조직 내 성폭력이었다. 내부의 성폭력을 해결하지 못하는 집단이 외부의 성폭력을 해결할 수는 없다. 

 강제하고 유도해야 문화가 바뀐다
 강제하고 유도해야 문화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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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하고 유도해야 문화가 바뀐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를 바꾸는 것이고, 문화를 바꾸는 가장 효율적 방법은 법과 교육이다. 법은 강제하고, 교육은 유도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법은 빠른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유익하고, 교육은 장기적이고 근원적 변화를 이루는 데 효과적이다.

우선 표준화된 젠더의식(성평등의식)검사, 교육, 평가시험 과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공무원들이 받는 교육 내용은 강사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주관적이고 비체계적인 경우가 많고, 참석도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꼭 알아야 할 내용을 효율적으로 교육한 뒤 평가 결과를 임용, 승진, 임금에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생존자에게 수치심을 주거나 왜곡된 성의식을 드러내는 검사나 판사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개선되지 않으면 과감히 퇴출시켜야 한다. 얼마 전 캐나다에서 성폭력 생존자에게 '왜 다리를 오므리지 못했느냐'고 물은 판사를 해고한 것이 좋은 사례다(관련 기사 : "왜 무릎을..." 성폭행 피해자 탓한 판사는 '해고'됐다). 판검사들도 사람인만큼, 자신이 자라난 개인, 가정, 사회문화적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법조인이 편견과 고정관념을 지닌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은 아닐지 모른다. 문제는 이들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도록 유도하고 강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울러 성폭력 관련 형법을 구체화해서 판사가 개인적 재량권을 남용하지 못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사람에 따라 판결이 고무줄처럼 늘고 주는 불공정한 사태를 줄일 수 있다. 학교나 직장 등에서 성폭력을 목격할 때 신고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려할만 하다.

한국의 성폭행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 중 하나는 생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흔한 수법은 성폭행 피해자의 과거 '행실'을 문제 삼는 것이다. 예컨대 옷차림, 직업, 과거 이성관계 등을 끄집어내 망신을 주는 것이다. 목적은 '너는 당할 만 했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성폭력 재판시 생존자의 과거 행실을 묻거나 증거로 쓸 수 없게 하는 피해자 보호법(shield law)을 마련해 놓고있다. 재판과 전혀 상관 없는 정보를 끌어들인 생존자 때리기로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가 법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1970-80년대에 생겨난 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이 피해자 보호에 얼마나 게으른 상태인지를 보여준다.

[강간의 기준을 '항거'에서 '동의'로 바꿔야 하는 이유]
① '꽃뱀론'으로 성폭력을 지지하는 당신에게
② 담뱃불 협박당하고, 싫다고 말해도 '강간'이 아니라고?
③ 성범죄 18~50%가 '꽃뱀 자작극'이라고?
④ 성폭행 피해자에게 "왜 저항 안했나" 묻는 사회
⑤ "섹스 전에 허락받는 게 말이 되냐"는 남자들에게
⑥ 법무장관 외모 칭찬한 대통령이 '사죄'한 이유
⑦ 데이트폭력 살인범도, 찜질방 추행범도 풀어준 법원
⑧ "왜 무릎을..." 성폭행 피해자 탓한 판사는 '해고'됐다
⑨ 일단, '강간'이라는 말부터 없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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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