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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안보와 평화를 빌미로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드 배치에 저항하는 소성리 주민들,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고통받는 강정마을 주민들, 평택 미군기지 확장으로 평생을 일궈온 삶터를 빼앗긴 대추리 마을 주민들.

대추리 강제이주 11년, 완전히 변해버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우리가 염원하는 평화가 허울뿐인 것이 아니길 바란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는 정부가 약속했던 합의사항을 이행하기를 바라며, 대추리 강제 행정대집행이 진행된 2006년 5월 4일을 앞두고 대추리 주민들의 삶을 '끝나지 않은 대추리 싸움'으로 연재한다... 기자 말

[1편] 그리운 고향 대추리, 이름이라도 찾고 싶다

대추리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기름진 농토에는 미군기지가 건설됐다. 철조망의 경계속에서 새 건축물이 빼곡한 이곳에서 옛 농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 평택 미군기지 대추리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기름진 농토에는 미군기지가 건설됐다. 철조망의 경계속에서 새 건축물이 빼곡한 이곳에서 옛 농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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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고향을 떠나야 하는 아픔과 주민 이주에 따른 어려움을 겪게 된 데 대하여 정부가 유감을 표명한다." (2007. 2. 14 정부를 대표하여, 김춘석 주한미군기지대책단 부단장)

2007년 2월 14일,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을 벌여왔던 대추리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기로 합의했다. 투쟁을 시작한 지 3년 5개월 만이었다. 정부가 사과하고 이주와 생계대책을 성실히 마련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정부는 '성공적 협의'라 말했지만, 대추리 주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인 것에 불과했다. 김지태 이장을 석방시키기 위해선 다른 방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살자고, 우리를 대표해 앞장서왔던 사람을 차가운 감옥에 가둘 순 없었다. 그는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고, 어린 자식을 줄줄이 둔 아버지이기도 했다. 홀로 바깥에서 집 안의 모든 짐을 진 아내는 또 어찌할 것인가. 한 동네 사람끼리 차마 못할 짓이었다.

한 마을 주민이 아무리 똘똘 뭉쳐 싸워도 경찰과 군대로 무장한 정부를 이길 수가 없었다. 학교가 무너졌고, 마을은 전쟁터가 됐다. 보상금을 이용한 회유와 협박 앞에서 형님, 동생 하던 이웃들이 얼굴을 붉혔다. 수십 년을 함께 한 이웃이 원수가 돼 흩어졌다.

나고 자란 마을, 구석구석 삶이 어린 동네에 제대로 인사조차 못하고 '도둑' 이사를 나왔다. 세간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협의한 날짜 안에 집을 비우지 못하면, 혹여 꼬투리를 잡아 합의를 불이행할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죽어서도 다시 밟지 못할 고향을, 삶을 지탱해준 터전을, 그렇게 떠나왔다.

이주 11년 째. 근처에는 농사지을 땅이 없어, 농사를 지을 사람들은 오가는 데만 꼬박 두 시간 거리에 땅을 얻었다. 그조차 어려운 사람들은 공공근로로 삶을 연명해야 하는 인생이 됐다. 그나마 공공근로도 2014년 종료되면서 지금은 소일거리조차 없어졌다. 너른 들판의 활기를 품던 농민들이 마을회관에서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는 노인이 되었다. 이주 뒤에야 뼈저리게 알았다. 빼앗긴 건 땅이 아니다. 자부심과 활기였고, 생이었다.

하지만 정부 협의는 온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협의사항 중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이주단지 행정명을 '대추리'로 변경해주겠다는 약속이다. 행정지명 변경이 미뤄지면서 주민들은 행정소송을 냈다. 두 번째, 상업용지 분양 건이다. 생계대책의 일환으로 정부는 매수 대상이 된 600여 대추리 주민들에게 세대 당 8평의 상업용지 분양을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4월 LH는 이 합의를 무시한 내용의 분양 공고를 냈다.

대추리 주민들이 오는 5월 3일 대추리 행정대집행 11년을 맞아 청와대 앞으로 가는 이유다. 참고로 5월 4일은 정부가 12년 전(2006년) 대추리에 대한 강제행정대집행을 진행한 날이다.

다음은 신종원 대추리 이장과의 일문일답.

대추리는 신종원 이장의 고향이자 자부심이다. 그는 대추리에서 나고 자라 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농사를 지었다. 좋은 농부를 꿈꾸던 그가 대추리 투쟁의 선봉에 선 것은, 오롯이 땅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대추리에서 쫒겨난 이후 11년째 이장 일을 보고 있는 그의 꿈 중 하나는, 아직 지켜지지 못한 대추리의 협의사항을 완결짓고 이장일 을 내려놓는 것이다.
▲ 신종원 대추리 이장 대추리는 신종원 이장의 고향이자 자부심이다. 그는 대추리에서 나고 자라 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농사를 지었다. 좋은 농부를 꿈꾸던 그가 대추리 투쟁의 선봉에 선 것은, 오롯이 땅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대추리에서 쫒겨난 이후 11년째 이장 일을 보고 있는 그의 꿈 중 하나는, 아직 지켜지지 못한 대추리의 협의사항을 완결짓고 이장일 을 내려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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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까지 대추리에 남아 투쟁한 44가구가 이주한 곳이니까 당연히 바깥사람들에겐 '대추리'라고 마을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명칭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가?
"지금 사는 동네는 행정적으로는 노와리다. 사람들이 날 이장님이라 부르지만 동네 사람들이 붙여준 직책에 불과하다. 행정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대추리 투쟁은 고향 땅을 지키고자 했던 주민들의 싸움이었지 않은가. 대추리는 부당한 강제 이주에 대한 저항이었고, 쫓겨났다고 해서 그 의미와 정신이 사라진 건 아니다.

마을 어른들이 여기 이사와 사시면서도 '대추리 언제 해준다는 거여?' 많이들 물으신다. 그렇게 고향 땅 이름이라도 간직하길 바라셨던 분들이 하나 둘 돌아가시고 있다. 그걸 볼 적에 뭐라 표현할 수 없게 마음이 아프다. 행정적으로는 간단한 문제인데 왜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결국 우리 능력으로는 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도 참…."

- 생계대책으로 약속 받은 상업용지는 어떤 문제가 있는 건가?
"문제는 많았는데 말하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세상에 낙인찍힌 놈들이다. 저 사람들 돈, 보상 받으려고 또 저 지랄을 해, 그 소리를 평택 싸움 하는 내내 들었다. 그게 최고 듣기 싫은 소리였다. 그래서 그 동안은 되도록 국방부가 잘 알아서 하길 기대했다. 근데 결국 아니더라.

2006년에 대추리 분교 행정대집행하고 정부가 협의매수를 많이 종용했다. 협의매수를 안하면 불이익을 준다고 하면서. 이주자들 생계대책 차원에서 상업용지를 주는데, 협의자는 좋은 상권의 용지 8평을 주고 비협의자는 5평을 주겠다고 했다. 학교 무너져, 농사도 못 지어. 그러니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많이 흔들리고 결국 협의매수로 빠져나갔다.

다들 터전을 뺏겼는데 정부가 이렇게 장난을 치는 게 정말 용납이 안 됐다. 이걸 우리가 끝까지 싸우면서 협의자, 비협의자 상관없이 모두 평등하게 8평씩 주는 걸로 최종합의를 끝냈다. 그런데 지난 4월 LH에서 분양 공고를 냈는데, 고덕 이주민들과 우리 주민들 간에 싸움을 붙여놨더라."

대추리 마을 입구에도 생활대책용지 분양과 관련한 주민설명회 현수막이 걸렸다. LH분양 신청자격은 조합만이 갖기 때문에 고덕과 옛 대추리 주민들을 사이엔 우호죽순 조합이 만들어지고 있다. 대추리 44가구 주민들은 별도의 조합을 만들어 이에 대응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조합을 선택해야하다보니 조합들 사이에도 경쟁이 생겨나고 있다
▲ 생활대책용지 주민설명회를 알리는 현수막 대추리 마을 입구에도 생활대책용지 분양과 관련한 주민설명회 현수막이 걸렸다. LH분양 신청자격은 조합만이 갖기 때문에 고덕과 옛 대추리 주민들을 사이엔 우호죽순 조합이 만들어지고 있다. 대추리 44가구 주민들은 별도의 조합을 만들어 이에 대응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조합을 선택해야하다보니 조합들 사이에도 경쟁이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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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민들 간의 싸움이라니,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 건가?
"고덕 국제화계획지구를 만든다고 550만 평을 수용했는데, 고덕 이주민들이 2천 명이다. 우리는 협의자, 비협의자 상관없이 모두 상업용지로 8평씩 주는 걸로 정부 협의가 됐지만 그쪽은 협의가 되면서 그냥 뿔뿔이 흩어졌다. 이주단지고 뭐고 아무것도 못 만들고. 그런데 이번에 LH가 분양 공고를 내면서, 우리와 그쪽 모두 동등한 조건으로 같이 분양신청을 하면 추첨으로 결정하겠다고 밝힌 거다. 상업용지와 근린생활시설용지를 분양하는데, 둘 다에게 신청할 권한을 주겠다는 말이다.

고덕 분들 입장에서야 좋은 기회가 생긴 거지만, 우리는 협의했던 대로 못 받고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 발생한 거다. 우리는 상업용지로 협의한 건데, 근린생활용지를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긴 거니까. 결국 우리끼리 싸우라는 얘기 아닌가. 주민들 사이에 대립을 만드는 거다. 대추리 투쟁 때는 대추리 주민 간에 대립을 만들어서 서로 배신자다, 싸우게 만들어놨었다. 이주하고 나서는 행정명칭 때문에 노와리 주민들과 대립관계를 만들어 놓더니, 지금은 상업용지 때문에 고덕 분들과 또 대립각을 세우게 된 판이다. 왜 자꾸 이런 상황을 만들어 놓는가. 관계부서 찾아가서 이러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했는데, 불이익이 생기면 나중에 소송하라고만 하더라."

- 국방부 등 관련 부처에 정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해보진 않았나?
"했다. 그랬더니 알았다고, 기다리라고만 했다. 그러고 나서도 LH 주민설명회에서 또 이상한 이야기가 들리더라. 국방부에 요청을 해서 우리 합의문대로 이행을 하라고 했고 조율중이라는 답변도 들었다. 그런데 지난 4월 초에 LH 공고문이 뜬 거다. 이게 뭐냐고 국방부에 따지니 국방부에서는 우리도 모르는데 공고가 났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왜 우리에게 이런 땅을 주려고 하는가, 이거는 아니다, 라고 하니까 억울하면 소송하라는 식이다. 분한 마음에 신청을 안 하려고도 했는데, 신청을 안 하면 분양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서 기회가 박탈된다니 안할 수도 없고. 이런 상황이다."

- 지난 정부의 문제이기도 하고, 새 정부에 대한 요구사항이 너무 많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 3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이유는 뭔가?
"2007년 합의 당시 문재인 현 대통령이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현 정부의 누구보다 우리 문제를 잘 아는 분이다. 우리도 계속 평택시와 국방부, LH에 민원을 넣고 있는데 누구하나 제대로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청와대에 민원을 넣었는데도 답이 없고. 지금 농민들은 모내기철이라 정신이 없다. 어르신들은 연세가 많아 버스도 못 탈만큼 거동도 불편하신데 그래도 가시겠다고 한다. 약속했던 것도 이행시키지 못하면 대추리는 있으나 마나하는 마을이라고. 도대체 지금 우리를 뭐로 알고 있어서 이러느냐는 거냐고.

무시도 이런 무시가 없는 거다. 강제 이주가 우리로 끝이겠나? 이후에 이런 사업으로 인해서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또 있을 텐데, 우리가 싸우면 그때 그 사람들이 고마워할 것 아닌가. 우리처럼 걱정 안하고 자기 것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정 모르는 사람들이 또 우리에게 돈 욕심 부린다고 욕할까 두렵다. 하지만 비난 받으면 받아야지 어떻게 하겠나. 이걸 바로잡지 못하면 대추리는 영영 패배자일 수밖에 없는데."

마지막까지 싸운 44가구가 이주해 살고 있는 이주단지 앞에 붙은 마을안내도. 안내도의 지명은 '대추리'지만, 행정 지역명은 노와리다. 나이든 주민들의 꿈은 대추리의 지명을 되찾아 대추리 주민으로 공동체를 일구며, 남은 생을 사는 것이다.
▲ 대추리 마을 안내도 마지막까지 싸운 44가구가 이주해 살고 있는 이주단지 앞에 붙은 마을안내도. 안내도의 지명은 '대추리'지만, 행정 지역명은 노와리다. 나이든 주민들의 꿈은 대추리의 지명을 되찾아 대추리 주민으로 공동체를 일구며, 남은 생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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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유해정 기자는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대추리, #미군기지, #협의문, #청와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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