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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아. 네가 서울에 가면 꼭 가보라고 추천할 만한 곳이 있어. 연남동에 있는 스페인 음식점 '라 메사 델 키호테(돈 끼호떼의 식탁)'란다.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여러 소설집과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생강>을 쓴 소설가 천운영씨가 연 식당이야('돈 끼호떼' 표기는 책 본문을 따랐습니다-편집자 주).

식당 이름으로 연상할 수 있듯이 세르반테스가 쓴 <돈 끼호떼>를 읽고 영감을 받아 낸 식당이라는구나. 누구나 그러하듯이 천운영 작가도 어린 시절에 문고판으로만 <돈 끼호떼>를 읽었다가 성인이 되어서 1500쪽이 넘는 완역본을 읽은 모양이야.

줄거리 위주의 문고판에서는 절대로 담을 수 없는 스페인 요리 이야기가 완역본에는 여러 번 등장하거든. 천운영 작가는 소설 속에 나오는 다양한 요리를 통해서 스페인 문화와 그 시대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해. <돈 끼호떼>를 거대한 '먹는 이야기'라고 결론을 내렸어.

<돈 끼호떼>에 빠져 스페인 식당 차린 작가

돈 끼호떼 표지
▲ 돈 끼호떼 표지 돈 끼호떼 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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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끼호떼>에 등장하는 스페인 요리에 빠져서 3년 동안 라만차( 돈 끼호떼의 고향) 지역에 있는 식당을 샅샅이 뒤져서 메뉴를 검색하고 소설 속에서 돈 끼호떼가 이동한 경로를 따라서 3년 동안 오르락내리락했어.

스페인 요리를 맛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스페인에 머물면서 요리를 배운 끝에 '라 메사 델 키호테(돈 끼호떼의 식탁)'를 열고 오너 세프가 되었단다. 햄릿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400년 전 소설 속 주인공인 돈 끼호떼가 즐긴 스페인 요리를 맛보고 싶지 않니? 너도 잘 알겠지만, 아빠는 외국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데 돈 끼호떼를 읽다 보니 스페인 요리가 궁금해지는구나.

천운영 작가는 <돈 끼호떼>를 거대한 '먹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모비딕>이 고래에 대한 지식을 쏟아내는 만큼 스페인 음식에 대한 깨알 같은 정보가 담겨있지는 않아. 대신 <돈 끼호떼>를 음식에 주목하면서 읽다 보면 스페인 사람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더구나. 그럼 <돈 끼호떼>가 들려주는 음식 이야기를 들어볼까?

"지출의 4분의 3은 먹는 데 썼는데, 보통은 쇠고기보다는 좀 질이 떨어지는 돼지고기, 저녁식사로는 고기 부스러기, 토요일은 금욕일이니까 쇠뼈를 곤 곰탕, 금요일엔 콩 수프였고, 일요일이면 다락고기 비슷한 미식이 더러 밥상에 오르기도 했다." <돈 끼호떼 1> 44쪽

돈 끼호떼가 가난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지? 너도 사회시간에 배웠겠지만, 가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엥겔 지수라고 하잖아. 엥겔 지수가 높을수록 가난하다는 뜻인데 지출의 4분의 3을 먹는데 쓰는 돈 끼호떼는 400년 전이라는 시대를 고려하더라도 매우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질이 떨어지는 돼지고기, 고기 부스러기, 곰탕, 콩 수프 등이 그 당시 스페인 서민들의 밥상에 오른 음식이라고 보면 되겠구나. 아빠는 곰탕은 한국 사람만 먹는 건 줄 알아서 '쇠뼈를 곤 곰탕'이 대체 어떤 음식인가 궁금해서 좀 알아봤단다.

아마도 번역가가 우리나라에는 없는 음식이라 이해하기 쉽도록 곰탕이라고 한 모양인데 오야 포드리다(Olla podrida)이라는 스페인 요리더구나. 스페인어로 '썩은 단지'라는 뜻이야. 이 요리가 <돈 끼호떼>에 6번이나 등장해.

이름만 봐서는 우리나라에 있는 홍어찜 같은 음식 같고 뭔가 현지인들만 먹을 수 있는 꽤나 특별한 음식 같은데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콩, 마늘, 양파, 쌀을 넣은 다음 소 등뼈와 골수를 함께 넣어 푹 고아낸다는구나.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갈비탕과 삼계탕을 조합한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어.

이 요리는 스페인에 살았던 유대인의 풍습에서 시작되었는데 유대인들은 금요일 해 질 무렵에서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 안식일(금욕일)이라서 일체의 노동을 금지했거든. 물론 요리도 노동에 포함되니까 토요일은 요리도 할 수 없었어. 할 수 없이 금요일 저녁에 스페인에서 구할 수 있는 흔한 재료를 넣고 우리나라의 곰탕처럼 푹 고아두었다가 토요일에 먹는 거지.

그 당시 이베리아반도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스페인의 종교인 가톨릭으로 개종하도록 강요를 받았는데 박해를 피하고자 돼지기름, 베이컨, 돼지 소시지를 넣어서 스튜를 요리해서 먹었는데 이 음식 이름이 '코시도 마드릴레뇨(Cocido madrileno)라는 음식이야.

'코시도 마드릴레뇨(Cocido madrileno)는 19세기에 들어와 상류층이나 부유층이 즐기는 음식이 되었는데 물론 고기를 듬뿍 넣어서 요리했지. '코시도 마드릴레뇨(Cocido madrileno)와 비슷하지만 고기가 상대적으로 덜 들어가고 콩과 소고기보다는 저렴한 돼지고기를 주로 써서 요리한 음식이 돈 끼호떼가 토요일에 주로 먹은 오야 포드리다(Olla podrida)란다.

17세기 그러니까 <돈 끼호떼>가 쓰인 시대에 돈 끼호떼의 고향인 라만차 지역에서 유행한 음식이야. 이제 가난한 돈 끼호떼가 토요일 주로 먹었다는 곰탕의 수수께끼가 풀렸지?

돈 끼호떼가 먹은 스페인식 과메기

<돈 끼호떼>에 등장하는 요리 중에서 '두엘로스 이 케브란토스'라는 스페인 음식이 있는데 이 음식에도 스페인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의 비탄이 숨겨져 있단다. 스페인어로 '노고와 탄식'이란 뜻인데 이름 그대로 유대인들의 탄식이 숨겨져 있어.

돼지고기 베이컨, 소시지, 햄, 달걀을 기름지게 섞어서 먹는 이 음식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하지? 15세기부터 <돈 끼호떼>가 저술된 17세기까지 스페인은 기독교 순혈주의가 팽배하고 이교도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자행했어. 무자비한 종교 검증으로 무려 30만 명의 이교도가 핍박을 받았고 이 중에서 3만 명이 화형이나 교수형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구나.

이 당시 종교 검증을 하는 잣대 중의 하나가 음식이었어. 유대교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데 기독교도들은 돼지고기를 먹었거든. 유대교인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종교 율법을 어겨가면서 돼지고기로 만든 요리 '두엘로스 이 케브란토스'를 먹었던 거야. 유대인들이 탄식과 비탄을 하면서 억지로 먹은 음식이란다.

돈 끼호떼가 금요일에 먹은 콩 수프도 그의 가난을 상징해. 그가 만일 부자라면 콩 수프가 아닌 고기 수프를 먹었겠지. 요즘이야 콩이 영양가가 놓은 좋은 음식이라고 해서 일부러라도 먹지만 17세기 가난한 유럽사람들에게 있어서 콩은 그저 흔하고 값싼 음식이라서 자주 먹는 것뿐이란다.

"어떻든지 간에," 돈 끼호떼가 말했다. "지금 나는 디오스코리데스가 말하는 그 약초들이나 라구나 박사가 그려놓은 풀들 전부보다도 빵 한 조각이나 정어리나 청어 대가리 한두어 토막이면 정말 맛있게 식사를 할 텐데. <돈 끼호떼 1 >242쪽

양 떼를 쳐부숴야 할 적군으로 생각하고 용맹스럽게 창을 휘두르다가 마침내 목동이 던진 돌멩이를 맞고 갈비뼈 두 개가 무너지고 이빨이 부서진 돈 끼호떼가 중얼거린 말이란다. 만신창이가 된 자신을 낫게 해줄 좋은 약보다 더 간절히 먹고 싶은 정어리와 청어가 궁금하지 않니?

너도 짐작하겠지만 그 당시 청어와 정어리는 귀하지도 비싼 고기가 아니란다. 청어와 정어리는 어부도 헛갈릴 만큼 비슷하게 생겼는데 둘 다 흔한 고기였단다. 정어리는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명태와 더불어 국민 생선이었어. 그만큼 싸고 흔했다는 이야기지.

청어는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이 잡혀서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들의 주요한 식량원이었어. 워낙 많이 잡히다 보니 한꺼번에 먹지 못하고 다양한 형태로 저장해놨다가 먹었지. 포항의 과메기가 원래는 청어 보존 식품의 하나였어. 물론 요즘은 청어가 귀해져서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긴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돈 끼호떼가 사랑한 청어요리는 사르디나스 아렌케(Sardinas Arenque)라고 보면 될 거야. 청어를 소금에 절인 다음 훈제 건조해서 만드는 건데 스페인식 과메기라고 할 수 있겠다.

돈 끼호떼에게는 영혼의 음식인 사르디나스 아렌케도 그 당시 스페인의 시대 상황과 연관이 있어. 기독교가 지배하던 그 당시 유럽에서는 예수의 고난을 기리는 사순절 기간에는 육류를 먹을 수 없었어. 사르디나스 아렌케 즉 스페인식 과메기는 사순절 기간 서민들에게 육류를 대신해서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지. 돈 끼호떼를 비롯한 당시 스페인 서민들이 청어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란다.

그럼 스페인 귀족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살펴볼까?

"그들은 땅 위에 자리를 잡고서 풀로 식탁보를 만든 뒤 그 위에 빵과 소금, 칼, 호두알, 치즈 조각, 하몽의 통뼈를 놓았는데 잘 씹히지 않으면 빨아먹어도 좋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또 까맣게 생긴 맛있는게 있었는데, 이름은 캐비아이고 상어 알로 만든 것으로, 먹으면 심한 갈증을 유발하는 음식이라고 했다." <돈 끼호떼 2 >638쪽

하몽은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서 만드는 햄인데(스페인어로 햄이라는 뜻이야) 제조 과정이 길게는 3년까지 걸린다는구나.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오랫동안 매달아 놓거든. 캐비아는 철갑상어 알을 요리한 것이니까 예나 지금이나 음식으로는 부의 상징이야. 푸아그라, 송로버섯요리와 함께 세계 3대 진미에 속하지.

아마도 인용문 속의 귀족들은 캐비아를 빵에 발라 먹을 거야. 귀족들은 여행하면서도 전속 요리사를 대동하고 캐비아를 즐겼던 반면에 돈 끼호떼와 그의 하인 산초는 방랑기간의 대부분을 빵과 물로 배를 채웠어. 아주 운이 좋은 날에야 치즈, 양파, 포도 등을 곁들인 식사가 할 수 있었지.

돈 끼호떼가 먹었던 음식을 따라가다 보면 그 당시 민중들의 삶이 보인단다.


돈 끼호떼 2 - 기발한 기사 라 만차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민용태 옮김, 창비(2012)


돈 끼호떼 1 - 기발한 시골 양반 라 만차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민용태 옮김, 창비(2012)


태그:#돈 끼호떼,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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