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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안전한 나라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안전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한국은 안전한 나라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안전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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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안전한 나라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안전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예컨대 살인사건 빈도를 놓고 멕시코나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비교적 안전한 나라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덜 살해당한다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폭행, 강도, 강간 등의 강력범죄도 삶을 심각히 위협하기 때문이다. 강력범죄 전체를 놓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하면, 한국은 대체로 평균치보다 조금 더 위험한 나라가 된다.

개인들이 얼마나 안전하다고 느끼는가도 중요한 사회적 지표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혼자 밤거리를 다닐 때 안전하다고 느끼느냐'는 질문에 한국인들 64%가 그렇다고 답했다. 미국의 74%는 물론, 회원국들 평균인 69%보다 낮았다. 살인율과 안전감을 종합한 안전지수에서도 한국은 미국보다 낮은 점수를 얻었다.

 살인과 안전감(밤에 혼자 걷기 안전하다고 느끼는 정도)을 종합한 안전지수에서 한국은 7.5점으로 미국 7.8점보다 낮았다.
 살인과 안전감(밤에 혼자 걷기 안전하다고 느끼는 정도)을 종합한 안전지수에서 한국은 7.5점으로 미국 7.8점보다 낮았다.
ⓒ OE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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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들과의 비교를 떠나서도, 시민 10명 중 4명 정도가 밤에 혼자 걷기 두렵다고 느낀다면, 그 사회를 '안전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불안감조차 차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계층의 차이가 있다. 평균 소득이 높은 지역은 대체로 치안 상태가 더 양호하기 때문이다.

빈부차가 안전의 차이로 귀결되는 것은 부당하며, 이 격차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차별인 성적 차별에 대한 반응은 다른 듯하다. 성적 차이가 안전의 차이로 귀결되는 것은 부당하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하면 꽤 많은 이들이 거품을 물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보다 안전한가? 

여러 범죄 지표에서 한국은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불법 마약사건은 미국의 8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살인 역시 미국의 절반 미만이고, 강간도 미국의 절반에 그치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살인 통계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살인사건은 대부분 신고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간은 어떤가? 미국의 강간 신고율은 30~40%인 반면, 한국은 6~10%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강간 신고율이 미국의 반의반도 못 되는 상황이라면, 한국의 성폭행 문제가 미국보다 덜하다고 말할 수 없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강간'의 의미다.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살인은 사람의 목숨을 뺏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동등하게 비교될 수 있다. 반면 '강간'은 두 나라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강간의 정의는 '강제로 간음함'이다. 그리고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강간은 강제성이 있어야 하며, 폭행 또는 협박이 수반되어야 한다.

반면에 미국 연방정부는 2013년부터 성범죄 통계에 새로운 강간의 정의를 사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강간이 "여성의 의지에 반한 강제적 성행위"였으나, 이제 "피해자의 동의가 없는 성행위"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변화를 볼 수 있다. 하나는 한국처럼 남성도 강간의 피해자로 인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강간에서 '강제성'의 제거다.

여기서 두 번째 변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강간'에서 '강'을 제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2015년 캘리포니아의 '명시적 동의법(Affirmative Agreeement)' 통과로 한층 더 구체화 된다.

협소한 정의, 낮은 신고율, 증가하는 성폭행

이제 미국에서 강간은 '강제로 하는 성행위'가 아니라, '동의 없는 성행위'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정의는 전 세계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 독일 또한 2016년에 법 개정을 통해 강간에서 강제성을 제거했고, 스웨덴은 캘리포니아 수준의 명시적 동의법을 마련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나라들과 한국은 '강간율' 자체를 비교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앞 나라들의 강간 통계에는 한국이 '강제성,' 즉 폭행이나 협박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혐의나 무죄 판결을 내린 강간 사건이 포함되어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폭행과 협박'을 강간의 구성요소가 아니라 가중처벌의 요소로 간주한다.

강간을 매우 협소하게 정의하고, 성적 편견과 2차가해 등으로 신고율이 낮은 한국은 통계가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큰 문제를 갖고 있음이 드러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강간의 빠른 증가추세다. 만일 다른 나라가 사용하고 있는 포괄적 정의를 적용하면 이 증가 추세는 한층 더 가파른 그래프를 그릴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범죄 비교. 통계에는 한국의 강간발생률이 미국의 절반으로 표시되지만, 한국 강간 신고율은 6~10%로, 미국 30~40%의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과 미국의 범죄 비교. 통계에는 한국의 강간발생률이 미국의 절반으로 표시되지만, 한국 강간 신고율은 6~10%로, 미국 30~40%의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 Nation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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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의 하단 오른쪽의 작은 그래프를 보면, 미국은 강간 사건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온 것을 볼 수 있다. 반면에 한국은 계속해서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적잖은 한국인들이 밤거리를 혼자 걷기 두려워하는 하나의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보수적 강간의 정의는 남성들을 불리한 상황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여성의 의사를 무시하는 폭력성을 체화하기 쉬우며, 이런 법과 문화에 익숙한 이들이 외국에서 범법자로 전락할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것은 강간 아니에요'라고 항변할 것인가?

'강간'이라는 말부터 없애라

강간이라는 말을 없애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강간'이라는 말을 없애면 '강간범'도 사라지겠지만, 그런 의미에서는 아니다. 말을 없애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실업, 실연, 불행도 같은 방법으로 해결하면 될 테니 말이다. '강간'이라는 말 자체가 '강제성'을 요구하는 편향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강간을 없애고, 미국의 여러 주처럼 '1급 성폭행(sexual assault in the first degree)' '2급 성폭행' 등으로 구분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여성의 명시적 동의 없이 가한 성폭행은 지금의 강간에 준하는 범죄로 다루고, 폭행이나 협박이 수반된 경우는 1급 성폭행으로 가중처벌하는 것이다.

성폭행의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거부하면 성폭행(No means no) 2) 명백한 동의 없으면 성폭행(Only yes means yes). 여기서 한국은 첫 번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판 과정에서 언어적 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고, '항거가 불가능할 정도의 폭력이나 협박이 있었는가'를 따지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2) 동의 없으면 성폭행은 상대가 오해의 여지 없이 분명한 동의를 표했는가를 본다. 폭행이나 협박은 물론, 강제성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이 법에 대해 우려하는 남성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이것은 모두에게 유익하다. '합의'의 모호성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표정이나 옷차림 따위에서 '피해자가 합의한 줄 알았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그 터무니없는 오해로부터 남성들을 보호해 준다.

한국의 현행법은 한쪽이 합의하지 않은 행위조차 '합의'로 간주한다. 반대 의사를 표하는 것으로 불충분하고, 협박이나 폭력이 수반되어야 강간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강간죄에 있어서 폭행 또는 협박은 피해자의 항거를 불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하고"라는 20년 전의 낡은 판례가 지금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앞서가는' 것 좋아하고, '글로벌스탠다드' 좋아하는 정부가 왜 지난 세기의 케케묵은 판례를 걷어차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만일 어떤 누군가 계약서를 내밀면서 '극렬히 항거하지 않으면 합의가 이뤄진 걸로 알겠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계약이 아니라 치료일 것이다.

한국의 법제도는 치료가 필요하다.

[강간의 기준을 '항거'에서 '동의'로 바꿔야 하는 이유]
① '꽃뱀론'으로 성폭력을 지지하는 당신에게
② 담뱃불 협박당하고, 싫다고 말해도 '강간'이 아니라고?
③ 성범죄 18~50%가 '꽃뱀 자작극'이라고?
④ 성폭행 피해자에게 "왜 저항 안했나" 묻는 사회
⑤ "섹스 전에 허락받는 게 말이 되냐"는 남자들에게
⑥ 법무장관 외모 칭찬한 대통령이 '사죄'한 이유
⑦ 데이트폭력 살인범도, 찜질방 추행범도 풀어준 법원
⑧ "왜 무릎을..." 성폭행 피해자 탓한 판사는 '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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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