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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52주 동안, 주당 한 권의 책을 읽고, 책 하나당 하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52권 자기 혁명'을 제안한다. 1년 뒤에는 52개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 기자말

뭘 읽어도 재미있는 행동경제학. 그러나 최고를 고르라면 나는 댄 애리얼리의 <상식 밖의 경제학>을 꼽는다.

저자는 젊었을 때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 매일 소독을 하고 붕대를 갈아야 하는데, 간호사들은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붕대를 과감하게 빠른 속도로 떼어냈다. 고통의 총량이 같다면, 짧고 강한 고통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상식 밖의 경제학> 표지
 <상식 밖의 경제학> 표지
ⓒ 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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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붕대를 가는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덜덜 떨었다고 한다. 그 고통을 느껴보지 못한 간호사들이 내린 결론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만약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이 잘못되었다면, 지금이라도 고쳐야 하지 않을까?

경제학에서 기본 전제로 깔고 있는 것이 인간 선택의 합리성이다. 활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동원하여 가장 기대 효용이 높은 대안을 선택하는 컴퓨터는 아니라 할지라도, 인간은 어찌어찌 합리적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에 걸친 행동경제학의 도전으로 이 가정은 전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고, 행동경제학자들은 전통 경제학이 가정한 인간을 '이콘(Econ)'이라 부르며 조롱한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늦게라도 깨달았다면, 이제라도 바른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의사 결정에 있어 후회를 줄이기 위해 행동경제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짜가 가장 비싸다

뷔페식당에 가서 뱃속이 불편하지 않은 상태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은 현명하거나 부자다. 경제학 용어를 빌리자면 한계효용이 음의 값을 지나는 것은 물론, 때로는 전체효용조차 마이너스가 될 때까지 먹기도 한다. 사은품 때문에 필요 없는 물건을 산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온라인 마트에서 쇼핑할 때는 배송비를 면제받거나 쿠폰을 받으려고 이것저것 필요 없는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는 한다.

공짜가 되는 순간, 저급 초콜릿은 좋은 선택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공짜가 되는 순간, 저급 초콜릿은 좋은 선택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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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직접 지휘했던 실험을 소개한다. 피험자들은 두 개의 초콜릿 중 하나만을 선택하여 구매할 수 있다. 고급 초콜릿과 저급 초콜릿이다. 고급 초콜릿은 개당 50센트가 정가지만, 15센트에 구매할 수 있다. 저급 초콜릿은 1센트에 살 수 있도록 했다. 피험자의 73%는 고급 초콜릿을 선택했다. 대다수 소비자가 두 초콜릿 사이의 품질 차이가 14센트 이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초콜릿 가격을 1센트씩 내려서 각각 14센트, 0센트에 구매할 수 있게 하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69%가 저급 초콜릿을 선택한 것이다. 두 초콜릿의 가격 차이는 여전히 14센트이므로, 효용을 생각한다면 선택을 바꿀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공짜를 선택했다. 합리적인 '이콘'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을, 효용을 거스르는 실수를 '사람'이 한 것이다.

가격을 3단계로 조정해서 다시 실험을 해도 결과는 같았다. 고급 초콜릿은 27, 26, 25센트이고, 저급 초콜릿은 2, 1, 0센트로 가격을 매긴 실험이었다. 27센트 대 2센트인 경우와 26센트 대 1센트인 경우에는 대다수가 고급 초콜릿을 선택했다. 그러나 25센트 대 0센트가 되는 순간, 결과는 뒤집어졌다.

지갑을 열거나 신용카드 결제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어 공짜를 선호했을 수 있다. 그래서 실험자는 카페에서 음식을 구매하는 경우에만 초콜릿을 할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하여 실험을 반복했다. 이 경우에는 공짜라도 어차피 돈이나 신용카드를 꺼내야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공짜 초콜릿에 몰려들었다.

이것저것 따지는 어른과는 달리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저자는 핼러윈 축제 때 사탕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을 상대로 비슷한 실험을 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사탕 1개로 작은 초콜릿 바를, 2개로는 큰 초콜릿 바를 살 수 있었다. 똑똑하게도 아이들은 큰 초콜릿 바를 선택했다. 그런데 큰 초콜릿 바는 사탕 1개로 살 수 있고, 작은 초콜릿 바는 공짜로 주겠다고 하자 아이들의 선택은 곧바로 바뀌었다. 공짜의 마법은 아이들도 홀린다.

이것은 이득보다 손실을 더 크게 평가하는 심적 회계(mental accounting) 효과 때문이다. 일반적인 거래에는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이 존재하지만, 공짜 거래에는 나가는 것이 없기 때문에 비대칭적으로 크게 느껴지는 손실감이 없다. 손실은 없고 이득만 있으니 '캐이득'이라 느끼는 것이다.

공짜가 판단을 흐리는 일은 비금전적 소비 행위에도 발생한다. 예컨대 우리는 무료 관람일에 박물관에 가서 사람들에 치여 괴로운 하루를 보낸다. 효용 측면에서 보면 입장료를 내고 쾌적한 관람을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시간도 유한 자원이다.

행동경제학의 교훈

행동경제학이 다루는 다른 주제들도 가볍게 살펴보자.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해 비대칭적으로 큰 가치를 매기는데, 이것이 소유 효과다. 피험자들에게 머그잔을 보여주면서 얼마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 물은 경우와 그들에게 머그잔을 일단 가지게 한 다음 얼마를 주면 컵을 되팔겠냐고 물은 경우를 비교하면 후자의 경우 사람들은 전자에 비해 두 배 이상의 가격을 부른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던 집을 팔 때 비슷한 조건의 다른 집보다 더 비싼 가격을 매긴다. 이러한 행위는 집을 적시에 판매하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 좀 더 현명하게 행동하려면 내가 지금 소유효과에 빠져 과도한 가격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돌아볼 일이다.

정박 효과도 우리가 알면서 빠지는 함정의 하나다. 물건 가격을 짐작해 보라고 하면서, 물건을 보여주기 직전에 전화번호 뒷자리가 몇인지 물어본다. 이렇게 하면 전화번호 뒷자리가 큰 숫자인 사람일수록 물건 가격을 높게 부른다. 아무런 상관도 없는 숫자가 마음속에 닻을 내리고, 추측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권장 소비자가격은 정박 효과를 노리고 그 자리에 쓰여 있는 것이다.

후광효과 역시 흔히 사용되는 마케팅 기법이다. 어떤 사람에게 매료되면 우리는 그의 모든 면을 긍정적으로 본다. 조각 같은 외모에 축구도 잘하는데 가정에도 충실한 데이비드 베컴에게 홀딱 빠져 버렸다면, 그가 사용하는 휴대폰이나 자동차도 좋아 보인다. 스타 마케팅은 후광효과를 노린 것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스타가 광고하는 상품이라도, 상품 그 자체만을 보고 판단을 내려야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좋아하던 스타까지 싫어질 수 있다.

이콘으로 변신하기

공짜의 유혹은 시간이나 기회와 같이 훨씬 더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게 한다.
 공짜의 유혹은 시간이나 기회와 같이 훨씬 더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게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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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콘'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잠깐이라면 이콘처럼 행동할 수 있다. 실용적 학문으로서 행동경제학의 존재 의의는 우리가 선택을 할 때 빠지는 각종 함정을 최대한 피해 갈 수 있도록 조언해 주는 것이다. 커피 한 잔 사면서 행동경제학적 오류를 체크할 필요야 없겠지만, 정말 중요한 결정이라면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자. 공짜라서, 내 것이라서, 또는 좋아하는 스타가 광고하는 물건이라서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가득한 이 책에서 내가 공짜 효과를 유독 길게 설명한 것은, 공짜야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함정이라고 생각해서다. 저자의 말처럼, 공짜가 사실은 더 비싸다. 공짜의 유혹은 시간이나 기회와 같이 훨씬 더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게 한다. 성급한 선택은 후회라는 감정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힌다.

이 책에서는 하나만 기억하자. 공짜가 제일 비싸다. 공짜를 제시받았다면, 그걸 선택했을 때 내가 무얼 놓치게 되는지 꼼꼼히 살펴보자. 중요한 결정일수록 자기 자신을 돌아보자.


상식 밖의 경제학 - 이제 상식에 기초한 경제학은 버려라!

댄 애리얼리 지음, 장석훈 옮김, 청림출판(2008)


태그:#52권 자기 혁명, #댄 애리얼리, #<상식 밖의 경제학>, #행동경제학, #공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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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이 강물처럼 흐르는 소통사회를 희망하는 시민입니다. 책 읽는 브런치 운영중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junat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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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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