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든 피겨스>의 스틸 컷.

영화 <히든 피겨스>의 스틸 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페미니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따로 공부하거나 알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생각을 더해 읽어주려고 합니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지만 어려운 사람들, 페미니즘에 대한 몰이해를 가진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드라마, 책, 방송 등을 보고 읽으며 전달하겠습니다. 아직 페미니즘이 어색한 당신, 페미니즘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저와 함께하지 않으실래요? - 기자 말.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치열했다. 1957년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성공시키면서 미국은 엄청난 압박을 받았고 인간을 우주로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것이 바로 '머큐리 계획'이다.


데오도르 멜피 감독의 영화 <히든 피겨스>는 이 머큐리 계획의 숨겨진 공신인 3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것도 바로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 천재적인 수학능력을 가진 캐서린 존슨, 변혁을 꿰뚫어보고 변화를 이끌었던 도로시 본, 흑인 여성 최초의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 잭슨이다.


흑인과 여성, 이중의 차별

 영화 <히든 피겨스>의 스틸 컷. 상사의 지독한 방해와 직장 동료들의 차별에도 꺾이기보다는 당당히 자신의 능력을 믿고 사랑했던 그녀니까. 참고만 있지 않고 본부장에게도 소리치며 자신의 부당함을 외쳤던 그녀니까 가능했다.

영화 <히든 피겨스>의 스틸 컷. 상사의 지독한 방해와 직장 동료들의 차별에도 꺾이기보다는 당당히 자신의 능력을 믿고 사랑했던 그녀니까. 참고만 있지 않고 본부장에게도 소리치며 자신의 부당함을 외쳤던 그녀니까 가능했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은 흑인 여성이다.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의 미국은 인종차별도, 남녀차별도 극심했다. 기술의 발전을 이끌어나간다는 변혁의 주체 NASA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중요한 일들과 기밀들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고 여성들은 보조를 하는 정도의 역할에 그치고 있었다.


게다가 흑인 여성이라면 더했다. 누구보다 빠른 계산 능력을 가진 캐서린이지만 그녀가 맡아야 했던 일은 전산원이였다. 그것도 임시직을 오가는. 그녀가 가진 능력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생겼다. 우주선을 보내고 안전하게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수학 계산이 필요했는데 마땅히 이를 맡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NASA 소속 전산원이였던 캐서린은 머큐리 계획의 핵심적인 일을 담당하고 있는 부서의 임시직으로 발령받는다. 캐서린은 꿈꿔왔던 일을 맡게 돼 매우 기대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제대로 일을 맡겨주지 않았다. 그녀가 흑인 전산원이라는 이유로.

NASA에는 기밀인 업무가 많았다. 국방부 브리핑 자리에는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규칙이 없어 들어갈 수 없었고 해석해야할 숫자들에는 온통 검은색 칠이 칠해져있었다. 마치 '넌 흑인 여성이니까 안돼'라고 외치듯이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본부에는 흑인 여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마저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매번 800m를 오가야 했다.


당시 흑인 여성들에 대한 차별은 단지 사회적 지위나 명예에만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화장실을 사용하는 문제, 정수기를 사용하는 일, 커피를 마시는 일까지. 의식주 아주 밑의 기본적인 것들부터 차별이 존재했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사랑하는 그녀들이었지만 심각한 차별을 깨트릴 수 있을까 싶었다.

매번 그녀들에게 흑인이고 여성이라는 억압이 계속 쏟아졌기 때문이다. 캐서린에게는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고 지독한 편견이 따라붙고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 잭슨에게는 헛된 꿈이라는 말과 어려운 조건들이 계속 붙는다. 도로시는 뛰어난 관리자로서의 능력을 지녔지만 백인 여성의 견제를 받으며 올라가지 못한다.


차별 아래 발전은 없다

 영화 <히든 피겨스> 스틸 컷. 능력 있는 캐서린에겐 지독한 편견이 따라붙고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 잭슨에게는 헛된 꿈이라는 말만 붙는다. 도로시는 뛰어난 관리자로서의 능력을 지녔지만 백인 여성의 견제를 받으며 올라가지 못한다.

영화 <히든 피겨스> 스틸 컷. 능력 있는 캐서린에겐 지독한 편견이 따라붙고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 잭슨에게는 헛된 꿈이라는 말만 붙는다. 도로시는 뛰어난 관리자로서의 능력을 지녔지만 백인 여성의 견제를 받으며 올라가지 못한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최초로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일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먼저 인공위성을 성공시킨 소련이다. 모두가 주목하는 상황에서도 차별이라는 딱지가 계속 붙었다. NASA 안의 수많은 백인 남성들이 전혀 해내지 못했던 계산으로 해답을 찾아내는 캐서린이지만 흑인이라서, 여자라서.

화장실이 없어서 800m를 오가는 시간 동안 그녀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시간은 사라졌고 검은색 마킹이 도배된 문서를 알아볼 수 없는 것처럼 그녀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이도 없었다. 최초로 유인 우주선을 보내는 일, 그런 변혁의 중심인 NASA가 화장실이나 커피포트 같은 작은 것조차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차별과 편견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차별과 편견보다도 숫자 너머를 보는 일,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일을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백인 남성들을 거느리고 있는 우주그룹의 우두머리 본부장 알 해리슨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조명에 비친 검은색 마킹에서 캐서린이 '아틀라스'라는 용어를 발견하고 방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을 해냈던 것처럼 흑인 여성이라는 편견의 틈에서 그녀의 능력을 발견해낸다. 그가 남긴 명대사는 인상 깊다.


"이제부터 NASA에서는 모두 같은 오줌을 눈다."

단순히 백인 남성이었던 그가 있었기 때문에 캐서린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조차도 처음에는 전혀 그녀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상사의 지독한 방해와 직장 동료들의 차별에도 꺾이기 보다는 당당히 자신의 능력을 믿고 사랑했던 그녀니까. 참고만 있지 않고 본부장에게도 소리치며 자신의 부당함을 외쳤던 그녀니까 가능했다.


비록 특별하지 않다 해도

 영화 <히든 피겨스> 스틸 컷. 본부장 알 해리슨은 캐서린의 재능을 알아보고 차별적인 화장실 제도를 폐지한다.

영화 <히든 피겨스> 스틸 컷. 본부장 알 해리슨은 캐서린의 재능을 알아보고 차별적인 화장실 제도를 폐지한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혹자는 흑인이자 여성이었던 그녀들이 자신의 꿈을 이뤄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그녀들의 능력은 평범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중요하게 봐야할 것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동등하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어렸을 적부터 천재적인 수학 능력을 보여줬던 캐서린은 어땠나. 백인이었다면 남성이었다면 사회의 정상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녀였지만 흑인이기 때문에 흑인 학교를 다녀야했고 여성이기에 중요한 직책보다는 전산원, 비서 등의 업무밖에 맡을 수 없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도로시나 메리 잭슨 역시 마찬가지. 같은 흑인 남성으로부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편견의 시선을 받는 그녀들이기에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그래서 그녀들의 성공이 더욱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녀들은 스스로 명확한 사실들을 증명했다. 흑인이라서, 여성이기 때문에 부족하지 않다는 것. 백인들이, 남성들만이 큰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흑인이라도 여자라도 할 수 있다는 것. 검은색 마킹으로 도배된 문서를 해석할 수 없는 것처럼 편견과 차별로 도배된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 그녀들은 이를 증명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자기도 모르게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블랙 페미니즘 영화 <히든 피겨스>를 추천한다. 

흑인 여성 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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