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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4주기인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4.16 세월호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 영결추도식’을 마친 뒤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이 합동분향소로 돌아가지 않고 유가족들에게 전달되었다. 참사 후 화랑유원지에 설치되어 1,448일간 추모객 73만여명을 받았던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는 이날 행사를 끝으로 문을 닫게되었다.
▲ 가족 품으로 돌아간 세월호참사 희생자들 영정사진 세월호참사 4주기인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4.16 세월호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 영결추도식’을 마친 뒤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이 합동분향소로 돌아가지 않고 유가족들에게 전달되었다. 참사 후 화랑유원지에 설치되어 1,448일간 추모객 73만여명을 받았던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는 이날 행사를 끝으로 문을 닫게되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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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세월호 참사
 4.16 세월호 참사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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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때 극적으로 구조됐지만, 불과 이틀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강민규 전 단원고 교감을 순직 인정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자가, 청원을 시작한 지 7일만에 6600여 명을 넘었다.

국민청원은, 유족들이 제기했다. 유족들은 청원서에서 "작년, 대통령님의 지시로 단원고 기간제 선생님들의 순직 인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교감 선생님의 죽음 또한 다른 선생님들과 같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한다"라고 호소했다.

유족들은 또한 "교감 선생님은 무엇 때문에 세월호 합동분향소, 416 기억교실, 세월호 참사 4주기 합동 영결·추도식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하신 것인가? 정부가 주관하는 합동 영결·추도식에서도 (고 강 교감을 빼고) 304명이라 칭했다"라고 밝혔다.

유족들은 "교감 선생님이 구조되고 나서 다른 생존자들과 달리 병원으로 옮겨지지 않은 점, 목포해경에서 장시간의 조사를 받은 점, 강압 수사를 받게 된 점 등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며 이에 대한 진상조사도 요구했다.

이어 유족들은 "다시 열리는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조사가 이루어지고, 순직도 인정돼 세월호 참사 희생자로서 기억되고, 그의 마지막이 떳떳하고 명예로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참사 당시 강 교감은 선실을 오가며 학생 구조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지병인 당뇨 때문에 저혈당 쇼크로 쓰러진 뒤 헬기로 구출됐다. 뭍에서도 인명 구출에 애썼지만 "왜 혼자만 살아 왔느냐"는 유가족들의 절규를 접해야 했다.

고 강 교감은 참사 다음 날인 17일 오후 진도실내체육관 뒷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에 벅차다. 내 몸뚱이를 불살라 침몰 지역에 뿌려 달라.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는 내용이 담겼다.

고 강민규 교감을 순직 인정해 달라는 청원에 동의한 사람이 일주일만에 6600여 명을 넘겼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청와대 답변을 받으려면 한 달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신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라도 선생 할까"

청와대 누리집에 있는 국민 청원글 캡쳐.
 청와대 누리집에 있는 국민 청원글 캡쳐.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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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유족들이 쓴 국민청원 글 전문이다.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희생자는 305명입니다.

교감 선생님의 순직 인정을 위해서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순직 기각결정 취소 소송을 진행했었으나, 현재 있는 법으로서는 죽음의 형태가 순직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 기각결정을 받았습니다. 작년, 대통령님의 지시로 단원고 기간제 선생님들의 순직 인정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교감 선생님의 죽음 또한 다른 선생님들과 동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2016년 대법원판결(16.2.18)이 나기 약 20일 전 박근혜 정부는 법을 바꿔버렸습니다(16.1.27). 처음 소송을 진행할 때 교감 선생님은 '공무상 사망', 다른 희생 교사분들은 '순직'이었습니다. 그런데 법의 이름을 '공무상 사망→순직, 순직→위험순직'으로 단순히 명칭만 변경하여 '이미 순직처리가 되었다. 오해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했습니다. 저희가 주장하는 것은 공무상 사망/순직/위험순직 등의 명칭으로 세월호 교사들의 죽음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라는 특수한 사건이니만큼 모두 같은 입장으로서 인정해주고 동등한 처우를 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교감 선생님의 죽음은 무엇 때문에 세월호 합동분향소, 416 기억교실, 세월호 참사 4주기 합동 영결·추도식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하신 것입니까? 정부가 주관하는 합동 영결·추도식에서도 모두 304명이라 칭했습니다. 법에서 외면하고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추모하는 자리에서도 기억해주지 않았습니다. 교감 선생님이 왜 돌아가셨는지 그 원인을 제대로 알고 행동했다면 이럴 수 있었을까요? 교감 선생님을 세월호 참사 희생자로서 기억될 수 있게, 교감 선생님의 마지막이 떳떳하고 명예로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세월호 참사 당시 교감 선생님의 행적에 대해 <김어준의 파파이스>#73을 통해 드러난 의문점들이 있습니다. 교감 선생님이 구조되고 나서 다른 생존자들과 달리 병원으로 옮겨지지 않은 점, 선원들과 관공선에 태워져 목포해경에서 장시간의 조사를 받게 된 점, 욕설을 포함한 강압 수사를 받게 된 점 등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많습니다. 또한, 생존자 방치에 대한 문제도 있습니다. 다시 열리는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서는 이러한 교감 선생님의 건도 조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감 선생님도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이십니다.

이런 비극적이고 억울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 이 글을 직접 확인하려면 :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207748



태그:#세월호 참사, #고 강민규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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