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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26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 마련된 메인프레스센터에서 다음날 판문점에서 개최되는 남북정상회담 세부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 ▲ 임종석 '정상회담 어떻게 진행되냐하면... ' 2018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26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 마련된 메인프레스센터에서 다음날 판문점에서 개최되는 남북정상회담 세부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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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가 되면 TV 앞에 앉아 뉴스를 본다. 아이들에게는 아빠의 스마트폰에 있는 오락을 하는 시간이지만, 아빠 어깨너머로 힐끗힐끗 세상 돌아가는 바를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째 아이들의 눈치가 수상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지난번 최순실 때만큼 뉴스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조금만 떠들어도 조용히 좀 하라고 다그치는 아빠. 아이들의 입장에선 충분히 억울할 수 있겠다.

최순실, 박근혜와 달리 북한 관련된 뉴스는 나도 그 전에는 대충 듣는 둥 마는 둥 했었으니까. 그래도 어쩌겠는가. 예전과 차원이 다른 남북한 관련 뉴스이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그 의미도 알려줄 겸 슬쩍 이야기를 건넸다.

"이제 곧 있으면 우리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만날 거야."
"뭐? 남북한 대통령이 만나다고? 진짜? 헐."
"응. 그런데 북한은 대통령이 아냐. 위원장."
"위원장? 그게 뭐야?"
"우리는 국민들이 대통령을 뽑잖아? 북한은 그게 아니고 대통령을 물려받아. 그걸 주석, 위원장이라고 부르고."
"그럼 왕이야?"
"아니, 왕은 아닌데 좀 비슷하네.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어려웠다. 북한의 정치구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회주의도, 봉건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체제. 그것은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였다. 북한과 평화를 논하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린 아직 북한을 잘 모른다.

빈곤한 상상력은 분단구조의 한계

냉면 먹으러 평양 가자
▲ 맛있는 냉면 냉면 먹으러 평양 가자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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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주제도 바꿀 겸 다시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은 남북한이 사이가 좋아져서 북한도 갈 수 있게 된다면 뭐하고 싶어?"
"나는 평양에 가서 냉면 먹고 싶어."
"냉면? 왜?"
"아빠가 그랬잖아. 냉면은 평양냉면이 맛있다면서. 그러니까 평양 가서 냉면 먹을 거야."

아빠와 식성이 가장 비슷한 3학년 까꿍이의 대답이었다. 그런 누나에게 지고 싶지 않은지 6살 막내가 끼어들었다.

"아빠, 난 북한을 갈 수 있으면 북한 사람들한테 가서 인사할 거야."
"저번에 평창 올림픽 때도 인사하고 싶다며?"
"응. 근데 못했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가서 인사할 거야."

2007년에 촬영한 판문각
 2007년에 촬영한 판문각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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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되는 대로 이야기를 하는 첫째, 셋째와 달리 둘째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럴 때마다 남다른 대답으로 감탄을 자아냈던 녀석이었건만 유독 오늘만은 조용했다.

"산들이는 북한 가서 뭐 할 거 없어?"
"글쎄."
"너, 산도 좋아하고 역사도 좋아하잖아. 아빠랑 같이 금강산이나 백두산 가고 싶지 않아?"
"잘 모르겠어. 실감이 안 나. 진짜 우리 북한 갈 수 있는 거야?"

당연한 질문이었지만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몇 달 전만 해도 전쟁이 날 수 있다며 뉴스에서 내내 미사일을 보여줬건만 이제는 당장이라도 통일될 것 같은 분위기라니. 단지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이렇게 세상이 달라질 수 있는 걸까? 우리가 너무 오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는 내게 오히려 아이들이 질문을 던졌다.

"아빤, 북한하고 사이가 좋아지면 뭐하고 싶어?"
"아빠? 아빠는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영국 런던까지 가고 싶어.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차를 태운 다음에 유라시아를 횡단할 거야. 신나겠지?"
"그럼 학교는 어떡해?"
"에이. 학교가 문제냐. 여행 다니면 학교에서보다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거야."

말해 놓고 보니 한심했다. 북한과 사이가 좋아지면 기껏 한다는 일이 여행 밖에 없다니. 그것은 그동안 섬 아닌 섬에서 살았던 이의 빈곤한 상상력이었으며, 분단구조의 한계였다. 이제 세상이 바뀌면 우리 아이들은 이와 같지 않겠지? 너희들은 좀 더 자유롭게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었으면.

군대 시절의 기억

2005년 판문점 방문시
 2005년 판문점 방문시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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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하고 다시 가본 판문점
 제대하고 다시 가본 판문점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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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시작될 남북정상회담과 그에 따른 한반도의 변화. 아이들과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생각하는 한반도의 평화가 떠올랐다. 진짜 봄바람이 불어오면 무엇이 바뀔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곳은 18년 전 판문점 옆 DMZ였다. 통일대교와 판문점을 잇는 1번 국도가 지나는 바로 그곳. 나는 그곳에서 수색중대원으로서 수색을 했는데, 판문점을 왕복하는 하늘색의 유엔사 소속 관광버스와 가끔 마주칠 때마다 모멸감을 느껴야만 했다. 버스 안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수많은 외국인들의 시선이 사파리의 맹수를 보는 그것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와서 판문점을 보고 난 뒤 그곳에서 완전무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군인을 발견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즐거움과 호기심 어린 시선들. 왜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는가. 왜 우리의 비극이 그들에게는 한낱 한나절의 관광으로 소비되어야 하는가.

이는 해외에 있는 서점을 갔을 때도 비슷했다. 아무리 한국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외국인들은 한국을 생각보다 잘 몰랐다. 외국 서점에서 'Korea'는 대부분 'Korean War'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한국은 곧 전쟁이었으며, 미국과 맞장을 뜨는 'North Korea'(북한)가 의외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지금은 촛불혁명인지도 모른다).

이런 한국이 이번 정상회담 이후에는 다른 위상을 가질 수 있을까? 어쨌든 이번 회담에서 종전협정 더 나아가 북미회담에서는 평화협정까지 갈 수도 있다면 이제 한반도는 세계 각국에게 단순히 전쟁이 아니라 평화의 상징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대성동 마을 기록관에 전시된 ‘대성동 자유의 마을’ 지도.
▲ 수색 매복을 다녔던 그곳 대성동 마을 기록관에 전시된 ‘대성동 자유의 마을’ 지도.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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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내가 떠올리는 또 하나의 공간은 역시나 군대 시절 수색 다녔던 곳이다. 당시 우리 부대는 국도 1호선 말고도 판문점 근처 지역을 수색, 매복했는데 그 중에 유독 한 지역이 눈길을 끌었다. 대성동 옆 대성동 호수라는 곳 인근이다. 비록 휴전 이후 숲이 우거지고 사람이 살지 않은 지뢰밭이었지만 그곳은 분명 마을의 흔적이 있었다.

동네 어귀쯤 되는 곳에 위치한 커다란 밤나무와 그 뒤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 우리는 수색을 돌다가 더우면 헬멧으로 그 물을 떠서 더위를 식히곤 했었다. 오래 전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집터로 보이는 곳에는 조금만 파면 도자기 파편이 있었고 어떤 후임병은 그곳에서 조선시대 마패를 발견해 인사동에 몰래 팔기도 했다. 위치상 그곳은 파주에서 개성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이었던 만큼 꽤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촌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주거하고 활동했던 그 공간이 소멸해버렸다. 아마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과는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내가 살던 기억이, 내가 살던 터전이 전쟁으로 인해 사라진 비극. 과연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DMZ가 다르게 태어날 수 있을까?

격동의 한반도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당신이 살아계시는 동안 통일이 된다고 하셨고, 아버지는 내게 당신이 살아계시는 동안 통일은 힘들 거라고 말씀하셨다. 이젠 내 차례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겠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통일은 되지 않아도 최소한 평화는 안착시키겠다고. 그게 우리 세대의 몫이니 너희는 그것을 바탕으로 꿈을 꾸라고.


태그:#육아일기, #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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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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