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보성 녹차밭 대한다원에는 아직 찻잎이 많이 올라오지 않은 상태였다
▲ 대한다원 보성 녹차밭 대한다원에는 아직 찻잎이 많이 올라오지 않은 상태였다
ⓒ 강상오

관련사진보기


2015년 3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수입은 줄어들었지만 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율하며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 어느새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버린 어머니와 함께 1년에 두 번 봄, 가을 시즌에 여행을 한다. 비록 값비싼 해외여행은 아니지만 언제까지 내 곁에 있을지 모를 어머니와 함께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은 마음에 며칠씩 시간을 내어 여기저기를 찾아다니고 있다.

그렇게 매년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지 3년째가 되던 지난가을, 추석 연휴를 맞아 3박 4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와서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예전에 크게 다쳐 수술하신 후 계속 안 좋았던 허리가 더 안 좋아지셔서 이제는 걷기도 힘들어하셨기 때문이다. 아픈 허리임에도 늦둥이 막내 아들내미와 함께 하는 제주여행이 좋아서 고통을 꾹꾹 참고 3박 4일을 웃으며 따라다니셨다.

어머니가 입원하고 한동안 집안 살림은 오롯이 내 것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히 요기 챙겨 먹고 집 청소며 빨래며 해놓고 느지막이 어머니 병원에 들러본다. 그리고는 오후에 사무실에 나갔다가 급한 일만 처리하고 일찌감치 퇴근해 어머니 병원에서 저녁 식사하는 걸 보고 밤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집안일에 어머니 돌보랴 일하랴 아주 정신없고 바빴지만 내가 직장을 나와 '내 일'을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그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내년 봄에는 쾌차하셔서 또 어딘가를 함께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흔이 넘어 낳은 늦둥이인 데다가 열아홉 나이에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꼬박 15년을 먹고 살기 바빠 미루고 미루기만 하며 시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어머니는 언제 내 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어 계셨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다행히 어머니 허리는 완쾌까지는 아니지만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을 했고 올봄, 우리는 언제나처럼 함께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여행 가자고 말씀드리면 평소에 TV에서 봐뒀던 여기저기를 말씀하시면서 '가보고 싶다'고 하신다. 요즘은 '나이 들면 다시 애가 된다'는 말이 실감난다. 내일모레 여든을 바라보는 우리 어머니가 요즘 내 눈엔 '애'처럼 보인다.

내가 30대가 되면서 나에게 '결혼 언제 할 거냐?'고 물으셨다. 그러다 내가 크게 병을 앓고 죽을 고비를 넘기는 걸 보시고는 하고 싶은 일 하고 살겠다는 내게 더 이상 '결혼' 이야기는 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요즘은 은근히 내가 결혼하지 않고 계속 어머니 곁에 있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빨리 장가갔으면'하는 마음과 '내 옆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모두 다 하시는 것 같다.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드리는 여행

낙안읍성안에 있는 초가집과 기와집에서는 '민박' 영업을 하고 있었다
▲ 낙안읍성 낙안읍성안에 있는 초가집과 기와집에서는 '민박' 영업을 하고 있었다
ⓒ 강상오

관련사진보기


이번 여행은 우리가 사는 경남 김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전남 순천과 여수를 중심으로 보성과 거제를 둘러보고 왔다. 그전부터 '순천만'과 '여수밤바다'를 이야기 하셨는데 몇 달이 지나 날씨가 따뜻해진 지금에서야 그 소원을 풀어드렸다.

그전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 내가 좋아하는 캠핑을 함께 하거나 특별히 정해진 코스 없이 내키는 대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중간이 쓸모없는 시간이 너무 많았고 지난번 제주 여행에서는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대충 예약해서 간 숙소가 마음에 안 들어 불편하게 잤던 기억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계획을 세워보겠노라며 숙소 후기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예약을 했다. 지역별로 하루씩 머무를 계획이었는데 숙소 평가가 좋은 곳을 찾다 보니 숙소를 먼저 잡고 그 위치를 중심으로 여행 코스를 짜야 했다. 집에서 가장 먼 '보성'을 첫날 코스로 잡았는데 보성엔 마땅한 숙소 정보가 나오질 않아 보성을 둘러본 후 저녁에 다음날 코스인 순천으로 이동해 잠을 자기로 했다.

숙소를 중심으로 숙소에서 가까운 곳부터 가볼 만 한곳을 검색해서 찾았다. 그리고 식당도 어머니가 좋아하는 메뉴로 골랐고 시간대를 계산해서 빡빡하게 코스를 짰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여행은 경치가 좋은 관광지를 천천히 걸어서 구경하는 여행이다. 뭔가를 체험하거나 하는 건 좋아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코스에 들어가는 곳은 박물관과 공원 등이다.

첫날은 보성으로 갔다. 지난해 가을 제주여행에서 제주도 녹차밭을 다녀온 게 기억나서 보성에도 유명한 녹차밭을 가보기로 했다. 아침에 간단히 바나나와 우유를 갈아서 요기하고는 3시간을 달려 도착한 보성에서 점심을 먹고 녹차밭으로 갔다. 보성에 있는 녹차밭은 제주와 달리 평지가 아니라 산에 있어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다. 꼭대기까지는 올라가 보지 못하고 중간쯤 올라가면서 여유를 즐겼다.

보성 녹차밭을 구경하고 나오면 바로 옆에 한국 차 박물관이 있다. 차로 1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라 그다지 크게 볼 건 없지만 간 김에 함께 구경하고 나오니 좋았다. 차 박물관 꼭대기 층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산이라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봄인데도 아직 찻잎이 다 올라오지 않아 썩 구경하기 좋은 시즌은 아니었다.

보성에서 순천으로 넘어가는 길에 낙안읍성에 들렀다. 낙안읍성에는 성곽 안쪽으로 초가집과 기와집들이 많이 있는데 실제로 사람이 거주하며 '민박'을 운영하기도 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에 성곽으로 올라가 성곽 위를 걸으며 낙안읍성 안 작은 마을을 구경하며 사진찍는 재미가 쏠쏠했다.

숙소로 가는길에 미리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간 기사식당의 8천원 정식상차림
▲ 기사식당 숙소로 가는길에 미리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간 기사식당의 8천원 정식상차림
ⓒ 강상오

관련사진보기


낙안읍성 옆에는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 있다. 낙안읍성을 구경하고 나와 박물관까지 둘러보고 싶었지만 저녁 시간이라 박물관은 관람 시간이 지난 후라 둘러보지 못했다. 낙안읍성을 지나 숙소로 가는 길에 미리 찾아둔 기사식당에 들러 밥을 먹었다. 8천 원짜리 정식이었는데 확실히 전라도라 그런지 반찬 가짓수도 많았고 맛있는 것들도 많았다. 우리지역에서 8천 원이면 국밥에 깍두기 하나 주는 게 전부인데 확실히 전라도라 음식 나오는 게 달랐다. 특히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게장을 줘서 좋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순천역 앞에 있는 첫날 숙소로 갔다. 게스트하우스 2인실로 예약을 했는데 방 크기는 작았지만 깨끗해서 마음에 들었다. 역시 열심히 찾아보고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앞 편의점에서 간단한 주전부리와 캔맥주를 하나 사 와서 마시면서 노트북을 펴고 밀린 일을 처리했다. 그렇게 어머니와의 2018년 봄 여행 첫날 여행 일정을 마무리했다.


태그:#여행, #전라남도, #보성, #순천, #낙안읍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