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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곡2리는 요즘 떠들썩하다. 평소 10원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박제원(92·사진)씨가 마을을 위해 수천만원을 선뜻 내놨기 때문이다.

한 달 전 근곡2리 이장 홍성기씨는 박씨의 부름에 집으로 찾아갔다. 박씨는 "부녀회에 1000만원, 경로회에 1000만원을 내놓을 테니 필요한 곳에 써달라. 마을회관 앞 내 자투리땅에는 원두막을 지어줄 테니 마을 사람들이 마음껏 사용하게 하라"고 말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이장 홍씨는 곧바로 박씨의 기부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얘기를 전해 들은 마을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지기는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어르신은 다 떨어진 신발 한 짝도 고쳐 신는 검소한 분이에요. 아무리 돈이 있어도 그렇게 큰돈을 선뜻 마을에 내놓으실 줄 누가 알았겠어요. 가실 날 얼마 남지 않아 큰 턱 한번 내시나 싶어 모두 놀랐죠."

공무원 출신 박제원씨는 원삼면장을 거쳐 1983년 백암면장을 끝으로 30년 공직생활을 마친 후 고향인 근곡2리에서 농사일을 하며 지냈다. 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많아 '동네 큰 어른'으로 통한다. 갑자기 기부를 결심한 이유를 묻자 "우리 마을 사람들이 다 착하고 열심히 사니까 뭔가 해주고 싶었지. 많이 못 줬다. 별 거 아니다"라며 쑥스러워했다. 

박제원씨는 용인 이씨와 더불어 관내에서 가장 오래된 세거성씨 가운데 하나인 '죽산 박씨'다. 죽산 박씨 호곡공파 종친 회장을 지낼 적엔 호곡공파 묘단을 설립하고 호곡공 파보를 만들기도 했다. 그만큼 용인에 깊이 뿌리를 박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일생을 살아온 그다.

"아버님은 평소 한번 결심한 일에 대해선 누가 말려도 그대로 하세요. 그래서인지 마을에 돈을 기부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가족들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잘 하셨다' 했죠."

며느리 김귀남(58)씨는 시아버지의 기부가 자랑스러운 눈치다. 젊은 시절부터 가장 가까이에서 박씨를 봐왔지만 이번 기부는 예상하지 못했다. 딸 넷에 아들 하나인 박씨는 자녀들에게도 늘 검소한 생활을 강조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마을을 위해 선뜻 기부를 결심했을 때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단다.

요즘 마을 사람들은 박씨가 기부한 돈으로 무엇을 해야 좋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30가구, 50명도 채 되지 않는 근곡2리는 점심 때면 마을 노인들 모두 회관에 모여 식사를 나눠 먹을 만큼 정이 넘치는 곳이다.

마을회관 앞 모퉁이는 벌써 공사가 한창이다. 우물이 있던 곳을 흙으로 메우고 그 땅 위에 원두막을 올릴 예정이다.

"원두막은 제일 크고 좋은 걸로 해. 넓고 튼튼하게 만들어."

공사 현장에 잠시 나온 박씨가 이장 홍씨에게 다시 한 번 당부한다. 박씨의 깜짝 선물 덕분에 농사일, 밭일을 하던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담소를 나누고 새참을 먹으며 잠시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백암면에서 제일 크고 좋은 원두막에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 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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