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가 개봉한 25일 수도권 지역의 한 멀티플렉스 상영관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가 개봉한 25일 수도권 지역의 한 멀티플렉스 상영관 ⓒ 성하훈


"아는 수입배급사는 26일 개봉하는 작품이 있는데, 5개 스크린을 겨우 잡고 한숨만 내쉬고 있다."
"26일 개봉하는 한국영화는 상영관이 6개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마저도 감사해야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영화인생 30년 만에 예매관객 100만 명 넘기는 건 처음 본다. 도대체 끝이 어딘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아래 <어벤져스3>)가 개봉한 25일 국내 영화계 인사들은 SNS에 한탄을 쏟아냈다. "재앙처럼 느껴진다"는 말도 나올 만큼 한 영화에 쏠리는 지대한 관심에 허탈해 하고 있었다. 독주를 예고한 <어벤져스3>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대작영화의 스크린독과점 공세가 또 다시 한국영화시장을 덮쳤다. 이번에는 2461개 스크린을 차지하며 영화시장을 싹쓸이했다. 지난해 7월 한국영화 <군함도>가 2027개의 스크린을 차지해 안팎의 비판을 받았다면, 1년도 채 안 돼 이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한국영화산업을 비웃는 사례가 나온 것이다.

현재 한국영화 스크린 수는 모두 2890개다. 어떤 영화든 하나의 스크린에 하루 한 번이라도 상영될 경우 스크린 수에 집계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날 하루 <어벤져스3>가 차지한 스크린 수는 전체의 85%를 넘는 수치다.

다른 통계 수치들 역시도 획일화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매출액 점유율은 무려 95.1%였다. 25일 하루 영화관 수입은  <어벤저스3>가 거의 전부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어벤저스3>는 이날만 1만1430회가 상영돼 상영 횟수 점유율은 72.8%에 달했고, 스크린 점유율 46.3%였다. 공급좌석도 196만 6천석을 차지했다. 

이날 단 1회라도 상영된 영화가 모두 107편이었다. 이 중 <어벤져스3> 이외에 1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그날, 바다> 한 편이 유일했다. 이날 <어벤져스3> 외 다른 영화의 상영 횟수는 1천회에 못 미치는 674회로 초라했다. 나머지 영화는 들러리 역할에 불과했던 셈이다. 

특히 대기업 멀티플렉스 극장의 몰아주기가 두드러진 것도 <어벤저스3>의 흥행에 큰 도움이 됐다. <어벤져스3>의 극장별 상영횟수 점유율을 살펴보면, 메가박스가 78.6%, 롯데시네마는 74.2%, CGV는 73% 순이었다. 메가박스의 경우 직영관에서 상영한 비율은 80.6%에 달했다. 이에 비해 멀티플렉스에 속하지 않은 단관극장들의 상영횟수 점유율은 44.7%로 절반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12년째 심화되고 있는 스크린독과점

 수도권 지역 한 멀티플렉스 극장의 26일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 시간표

수도권 지역 한 멀티플렉스 극장의 26일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 시간표 ⓒ 성하훈


물론 일부에서는 관객의 선호도에 따른 것이고, 시장논리에 입각한 결과라는 주장한다. 관객이 한 영화만 찾는 상황에서 스크린이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계 내에선 다양성은 사라지고 오직 한 영화가 시장을 장악한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지 않다. 다양성을 말살하는 수준의 독과점 행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영화가 이 같은 환경을 고쳐낼 능력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2006년 처음으로 스크린독과점 논란을 일으켰던 <괴물>의 스크린이 647개였다. 지금과 비교하면 상당히 얌전한 수치로 보일 정도다. 이후 12년이 지나 4배 가까이 늘어날 만큼 스크린독과점의 위세는 커졌다. 그동안 수많은 토론회와 논쟁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해법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불치병으로 굳어지고 있다. 해마다 그런 시도를 비웃듯이 스크린독과점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은 영화계에 있다. 법적 규제가 낫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면서 이미 상영-배급의 분리나 스크린규제 등에 대한 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개선할 수 있는 방법들은 이미 다 나와 있는 셈이다. 대기업들이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지만 영화계가 뜻을 모으며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해결이 안 되는 것은 영화단체들이 각자 다른 입장을 견지하면서 합의점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단체들마다 현안에 대한 입장차이가 있다 보니 문제의 심각성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해결방식에 대해 각각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는 대기업과의 관계성도 일정하게 작용하고 있다. 국회의원들 역시도 이를 핑계 삼아, 발의한 법률안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자세는 안 보인다. 법안 발의가 다분히 형식적이고 면피성으로 보여지는 이유다. 

그나마 지난해 11월 영화인들이 개별적으로 모여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 대책위원회'(이하 반독과점 영대위')를 출범시켰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지난 3월 독과점 반대 운동의 주축으로 나선 영화인들이 주주로 있는 배급사가 CGV 단독개봉을 추진해 논란을 빚은 것은 단적인 예다. 배급사는 효율적 개봉을 위해 대기업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만, 과거 대기업독과점 규제를 주장했던 태도와는 상당히 모순되는 일이라, 영화계 내부적으로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벤져스3>의 스크린독과점 기록 갱신은 영화산업을 조롱하는 것처럼 비쳐지기에 상당히 씁쓸하다. 거대자본이 영화시장을 유린하고, 하나의 영화가 100개가 넘는 영화를 들러리로 만들고,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극장들은 이에 적극 협력하는 현실에서, 제대로 대응 못하는 한국영화의 모습은 그래서 참 안타깝다. 언제까지 스크린독과점기록 갱신을 지켜만 봐야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어벤저스 스크린독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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