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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장 구경을 참 좋아한다. 예전에 내가 살던 곳, 그 곳에는 도깨비 시장이 있었다. 다녔던 피아노 학원은 그 시장 안쪽에 위치했는데 초입에는 떡볶이 집이 두 군데 있었다. 그 떡볶이 집에 가면 알록달록한 하얀 얼룩이 있는 초록색 납작한 그릇에 일회용 비닐을 하나 끼워 납작한 국자로 밀가루 떡볶이를 한 스푼 크게 떠주셨다.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면 늘 먹을 것이 많았다. 도너츠부터 시작해 한 봉지에 두 개 혹은 세개로 묶여있는 찰옥수수도 있고, 바구니에 놓인 채소와 과일을 한 보따리씩 사고 가방에 차곡차곡 넣는 일은 엄마를 따라 다니며 할 수 있는 나의 작은 행복이자 일상이었다.

많이 살 때면 하나씩 한웅큼씩 덤으로 더 넣어주고 천원, 이천원씩 깎는 흥정의 재미. 그래서 가던 단골집으로 늘 향하던 엄마 모습이 선하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학교 뒤에 있었던 분식집 혹은 문방구에서 판매하던 떡볶이는 작은 종이컵으로 300원, 긴 종이컵은 500원이었다. 그와 쌍벽을 이뤘던 아이스크림도 한 스쿱에 300원, 두 스쿱에 500원이었다. 특히 보라색 부분을 좋아했던 나는 아주머니가 그 보라색을 많이 퍼주실 때 참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난다.

잉어빵보단 붕어빵이 더 담백하고 좋은데, 많이 사라졌다. 두개/천원.
▲ 붕어빵 잉어빵보단 붕어빵이 더 담백하고 좋은데, 많이 사라졌다. 두개/천원.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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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장에 와도 천원으로 사먹을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졌다. 꼬치 어묵도 500원에서 700원으로 오른 곳이 많고, 붕어빵도 4개 천원에서 2개 천원으로, 우동도 5천원이 기본이다. 물건을 사고 '시장은 현금'이라는 당연하다 싶은 공식을 따르려 했는데, 현금이 모자란다. "카드도 되나요?"라고 조심스레 말씀드렸더니, "카드도 좋지. 이건 돈 아닌가? 이거 안 받음 이제 장사 못해"라고 하시며 웃으며 담담하게 말하셨다.

조금 더 싼 곳, 좋은 곳, 유명한 곳을 가기위해 검색을 시도한다. 그 시장에 가면 장사가 잘 되던 어떤 집이, **명물, 30년 전통이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고, 그런 이야기가 TV 프로그램에 방영되면, 현수막에 *** 출현이라고 크게 써 있다.

속초중앙시장에 가면 **닭강정이, 전주에 가면 **는 꼭먹어봐야 된대. 광장시장에는 ***가 유명해. 이렇든 **시장=@@ 라는 공식이 생겼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그 주변은 그와 유사한 가게들로 번지게 되었다. 맛집으로, 명물이라고 불리는 그곳에는 사람들이 줄서서 사기 바쁘고, 다녀온 사람들은 비슷한 리뷰를, 인증샷을 또는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를 넣어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알린다.

한때 500원에 팔던 흔하디 흔한 단팥빵이 가게 마다 약간씩 다르고, 지역 명물이라니 궁금하여 이 단팥빵 저 단팥빵을 다 먹어보았다. 속이 꽉 차고 약간 덜 달고, 견과류가 들어가 있고의 차이는 있었지만 어느새 이런 내가 한심해지기도 했다.

저렴하면 장사가 잘 될까? 프리미엄에 반대로 너무 저렴한 빵집은 또 저렴한대로 힘들고 단가를 맞추기 위해 애를 쓰게 된다. 그렇게 우리 동네 주변에 생겨난 빵집도 몇 년이 지난 지금, 1개 정도만 유지하고 있다.

얼마전, "치킨을 시켜먹자"는 아버님의 말씀에 나는 먼저 배달앱을 떠올렸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남편이 말했다. "가능한지는 모르겠는데, 여긴 다 아는 사람들이라 그냥 주문하던 곳에 전화로 하면 돼" "왜? 요즘 세상에"라고 했더니, "수수료 내니까 엄마는 그냥 동네에서 쿠폰 한 장 주면 두 마리 시키고, 쿠폰 쓸 때는 배달 안 시키고  직접 가서 가져오셔".

얼굴 안 보고 앱으로 주문하고, 오프라인으로 직접 가게에 가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발품 팔지 않고, 오프라인에 판매하는 물건이 온라인에서는 더 싸게 판매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주머니에 카드 하나면, 모바일폰 하나면 괜히 주머니에 현금을, 잔돈을 넣어다니지 않아도 된다.

너무나 편해진 세상. 불편하더라도 현금을 가지고 다니고, 자주 가던 아주머니에게 가서 주문을 했을 때 서로 안부를 묻고, 좋은 일이 있을 때 서로 소식을 알리기도 하고, 마트에서 하는 '1+1' 행사가 아니라 하나 더 주기도 하는 인심이, 내가 두 손이 두둑할 때 오히려 하나 드셔 보라고 주는 오지랖이 언제였던가.

나는 지금 홍천에서 지내고 있다. 이 거리를 걷다보니, 다이소가 아니라 'Popcorn'이라는 가게에 오게 되고, 수영복 구입하려는데 어디 가면 좋을까란 남편의 말에 체육사에 가보면 어떠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마침내 배달 온 치킨에는 '양념치킨'이란 문구가 써있고, 두꺼운 종이로 된 상자 안, 호일에 치킨이 쌓여 있었다. 양념치킨 소스와 특제 겨자소스와 함께 말이다. 치킨을 먹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몇 년 후에도 분명 이 맛을 똑같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태그:#시장구경, #양념치킨, #홍천읍, #동네인심, #무서운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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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에 거주하며, 다양한 시드니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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