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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마켓/주문번호
20180404-000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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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전화
02-XXXX-XXXX

며칠 전, 누군가가 큰 형님에게 보낸 문자 내용이다. O마켓에 주문한 적 없는 큰 형님은  아래 전화로 문의전화를 하다가 보이스피싱의 덫에 걸리고 만다. 주문한 적도 없는데 돈이 빠져 나간 것은 은행 계좌에 문제가 생긴 것이니 은행도 믿지 말고 국가가 보장하는 안전계좌로 모든 돈을 인출하여 입금을 하라는 식이었다.

다행히도 돈을 입금하기 위해 은행에 가기 직전에 큰 형님은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보이스피싱을 의심해서 전화를 하신 것은 아니었다. 오늘 나랑 같이 꽃사진을 찍으러 가기로 했는데 은행일 때문에 못 가겠다고 전화를 하신 것이다. 그 전화가 없었다면 소중한 재산이 사기꾼들의 손아귀로 넘어갈 뻔했다. 돈도 돈이지만 마음을 크게 다치실 뻔했다. 

큰 형님은 대학에서 오랫동안 행정실장으로 계시다가 오래 전에 정년퇴임을 하셨다. 나처럼 숫자에 약한 분도 아니고 명석한 머리로 거의 반평생을 대학의 살림을 도맡아 하셨던 분이다. 그런 큰 형님이 보이스피싱에 걸려든 것은 스스로도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전주시 완산칠봉에 자리한 꽃동산은 40년 가까이 한 주민이 자신의 박봉을 털어 가꾸어놓은 것을 전주시가 인수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 분홍꽃비가 내리다 전주시 완산칠봉에 자리한 꽃동산은 40년 가까이 한 주민이 자신의 박봉을 털어 가꾸어놓은 것을 전주시가 인수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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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언젠가는 꽃비이리라. 저 분홍꽃잎들처럼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답기를 바랄 일이다.
▲ 분홍꽃비가 내리다 우리도 언젠가는 꽃비이리라. 저 분홍꽃잎들처럼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답기를 바랄 일이다.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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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형님과 나는 겹벚꽃과 철쭉으로 유명한 완산칠봉 꽃동산으로 갔다. 이 꽃동산은 40년 가까이 한 주민이 자신의 박봉을 털어 가꾸어놓은 것을 전주시가 인수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큰 형님 말로는 꽃동산이 가장 근사할 때는 분홍꽃비가 내릴 때라고 한다. 벚꽃잎이 바람에 날려 난분분 떨어지는 것을 꽃비라도 하고 꽃눈이라고 한다.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마치 흰 눈이 내린 것 같아서 꽃눈이요, 그 모양이 또한 흡사 비가 흩뿌리듯 해서 꽃비라 했으리라.

벚꽃이 질 무렵이면 완산칠봉 꽃동산에 분홍빛 왕겹벚꽃이 핀다. 겹벚꽃이 질 즈음 철쭉이 만개한다. 왕겹벚꽃은 벚꽃에 비해 꽃숭어리가 크고 풍성하여 꽃눈이 내린 길바닥은 눈사태를 방불케 한다. 그냥 눈도 아니라 분홍눈이다. 하지만 딴은 그렇다. 그 풍경이 아무리 아름답기로 꽃이 지는 것을 환호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마음은 전혀 딴판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기도 하다.

큰 형님은 나의 사진 선생님이기도 하다.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서 있다.
▲ 분홍꽃비 내리던 날 큰 형님은 나의 사진 선생님이기도 하다.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서 있다.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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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질 무렵 완산칠봉 꽃동산에 왕겹벚꽃이 피고, 분홍빛 겹벚꽃이 질 즈음 철쭉이 만개한다.
▲ 분홍꽃비가 내리던 날 벚꽃이 질 무렵 완산칠봉 꽃동산에 왕겹벚꽃이 피고, 분홍빛 겹벚꽃이 질 즈음 철쭉이 만개한다.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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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큰 형님과 나의 마음이 그랬다. 우리도 언젠가는 꽃비이리라. 누구라도 그러하리라. 다만, 자연과 하늘의 도움에 나의 간절함을 더해 아름답게 살다가 가면 될 일이다.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답기를 바랄 일이다. 세월의 무정함이 야속해도 지는 모습조차 아름다운 분홍꽃눈을 상상하면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큰 형님과 나는 우산을 쓰고 사진기를 조작해야하는 불편함도 잊은 채 꽃보다도 환한 마음으로 팡팡 셔터를 눌러댔다. 비가 와서 미끄러운 비탈길을 조심스레 오르내리며 홍안의 소년들처럼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완산칠봉 꽃동산은 왕겹벚꽃이 질 즈음 철쭉이 만개한다.
▲ 분홍꽃비가 내리다 완산칠봉 꽃동산은 왕겹벚꽃이 질 즈음 철쭉이 만개한다.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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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겹벚꽃은 지고 철쭉은 만개하고
▲ 완산칠봉 꽃동산 분홍빛 겹벚꽃은 지고 철쭉은 만개하고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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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꽃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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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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