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봄'이라는 낱말은 사람들 뇌리에 5.18, 금남로, 대검, 총, 공포, 붉은 피, 주검 등의 연관 단어들을 불러들이고 '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어휘로 자동완성 된다. 80년대 광주에서는 해마다 5월만 되면 예식장 예약률이 저조했다. 5월엔 청첩장을 돌리지 않기에 결혼축의금 지출도 없었다. 시민들은 스스로 5월에는 결혼식을 삼가는 불문율을 엄수했다. 결혼의 계절 5월에 광주에서는 결혼축가 대신 장송곡이 도시를 가득 메우곤 했다.

그러던 1982년, 그해도 역시 5월이 아닌 2월 추위에 한 건의 결혼식이 치러졌다. 주변 동지들이 중신을 서고 주선하여 성사된 혼사였는데 장소는 화려한 예식장이 아닌 산기슭의 묘비가 즐비한 공동묘지였고, 초례청엔 그날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부재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명랑한 결혼 축가 대신 애절한 한편의 진혼곡을 제창했다. 

 윤상원과 박기순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비. 윤상원 열사의 생가에 설치돼 있다.

윤상원과 박기순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비. 윤상원 열사의 생가에 설치돼 있다. ⓒ 이돈삼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광주민중항쟁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와 후배 박기순의 영혼결혼식 주제가였다. 레퀴엠 또는 웨딩마치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후 각종 시위와 집회의 첫 식순에 등장하는 출정가로 애창됐다. 비장한 곡조와 결연한 노랫말은 민중을 강력한 연대의 대열로 결집시켰다. 군사·독재정권은 이 노래의 파장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공식석상에서는 금지곡이었다. 지난 정부시절 보훈처가 주관하는 어느 해 5.18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행진곡' 제창 대신 악단의 흥겨운 '방아타령'이 망월동 영령들을 능멸하기도 했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포스터.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포스터. ⓒ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2018년 봄, 온갖 탄압과 시련을 견디고 5.18 정식 지정곡으로 선정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레퀴엠에서 결혼행진곡으로 장르를 확장했다. 박기복 감독의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진혼곡 '임을 위한 행진곡'은 결혼행진곡으로 한 쌍의 혼례를 빛냈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광주 첫 시사회는 '임을 위한 행진곡 광주 출정식'으로 대체되었다. 광주 5.18을 소재로 한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경제적, 사회적 악조건을 극복하고 3년 만에 겨우 완성됐다. 그리고 의미 있는 첫 시사회가 출정식이라는 이름으로 광주에서 개최된 것.  5.18을 소재로 한 데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제목을 단 작품에 비우호적이었던 전 정권 하에서 직간접적으로 가해지는 방해와 위협을 무릅쓰고 크랭크인에 돌입하여 마침내 마지막 컷을 선언하기까지 뜻있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지지가 뒷받침되어 주었다.   

역사적인 첫 광주시사회는 '출정식'이라는 행사 이름에 걸맞게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거행되었다. 출연진은 겸손한 자세와 인사말로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과 공유를 호소했다. 배우들은 혼신의 노력으로 연기한 영화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소망을 강하게 내비쳤다. 작품을 접하게 된 계기, 첫 시놉시스를 접하고 난 후에 받았던 충격, 그리고 작업을 하면서 자신들에게 일어난 변화와 연기에 임했던 각오를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자신들의 작은 노력이 당시 고통 받았던 광주시민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5.18의 진실을 알리는 데 기여하길 바라는 듯했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된 '임을 위한 행진곡'

식전 행사가 마무리 되고 드디어 스크린이 밝아오자 객석은 침묵이 흘렀다. 사전 언론노출이 많지 않아 스포일러는커녕 줄거리 개요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참석한 시사회 관중석엔 긴장감이 흘렀다.     

영화는 5.18과 이철규 열사 변사사건을 큰 줄기로 구성됐다. 그러나 화면은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았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관객의 정서적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풀어가려는 배려가 돋보였다. 과장하거나 통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주인공들이 경험한 사랑과 동지애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과 투쟁 과정을 진지하게 그려나갔다.

* 이철규 의문사 - 198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광주·전남지역 공안합동수사부의 지명수배를 받아오던 조선대 교지 편집위원장 이철규씨가 광주시 북구 청옥동 제4수원지 상류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 노태우 정부 시절 대표적인 의문사 중 하나다. / 한국근현대사사전 등 요약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관객은 정신은 혼미하지만 80년 봄의 추억에 관한 한 완벽히 청명한 상태를 유지하는 명희(김부선)의 회상을 따라 37년 전 그들의 5월을 추체험한다. ⓒ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영화는 37년째 정신병동에서 생활하는 명희(김부선)의 2018년 현재와 과거 80년 시점을 회상 기법으로 넘나든다. 명희의 기억은 80년 5월에 멈춰있다. 당시의 총격으로 총알이 머리에 박힌 채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명희는 연인 철수와의 추억만큼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관객은 정신은 혼미하지만 80년 봄의 추억에 관한 한 완벽히 청명한 상태를 유지하는 명희의 회상을 따라 37년 전 그들의 5월을 추체험한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열렬한 학생운동가인 철수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명희의 작업실에 숨어들고 둘의 까칠한 첫 만남이 시작된다. ⓒ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80년 봄 법대생 철수(전수현)와 미대생 명희(김채희)는 명희의 아틀리에에서 처음 만났다. 열렬한 학생운동가인 철수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명희의 작업실에 숨어들고 둘의 까칠한 첫 만남이 시작된다. 평범한 미대생이었던 명희는 처음엔 철수의 개인의 행복을 포기한 투쟁가로서의 삶에 회의적이었다. 힘없는 사람들의 작은 몸부림으로 바뀔 만큼 세상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사회 정의와 인권,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투쟁에 헌신하는 철수의 강한 신념과 열정 그리고 인간적 매력에 반해 명희는 먼저 철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둘은 이내 연인이자 동지로 발전한다. 같이 대자보를 작성하고 살벌한 감시를 피해 대자보를 붙이고 시위를 주도하고 농활을 펼치는 등 사랑과 정열을 유감없이 발산한다.    

철수에게는 동생 뒷바라지에 매우 헌신적인 형, 철호가 있다. 학생운동의 주동자로 늘 쫓기는 처지이지만 철수와 명희는 살벌한 긴장 속에서도 마냥 행복하다. 두 연인의 사랑은 무르익고 동지들과의 연대는 끈끈하고 철수, 철호 형제의 우애는 더 없이 돈독하다. 행복한 5월의 봄날이다. 

그러나 철수에 대한 수배 망이 점점 좁혀오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철수는 급한 김에 명희를 향해 마음에 없는 냉정한 이별을 통보하고 잠수를 탄다. 그러나 불심검문에 걸려 실적 올리기에 혈안이 된 악랄한 사복경찰 영찬(이한위) 일당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철수의 허위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형사들의 잔인한 고문으로 철수는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다. 자신들의 고문치사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형사들의 조치로 철수는 단순사고사로 위장된 채 처참한 익사체로 떠오른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철수는 불심검문에 걸려 실적 올리기에 혈안이 된 악랄한 사복경찰 영찬(이한위) 일당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명희는 철수의 장례식을 치르려던 과정에서 경찰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때 명희의 배속에는 5.18둥이 딸 희수가 잉태되어 있었다. 

친엄마 명희를 대하는 딸 희수(김꽃비)의 심정은 복잡하다. 큰아버지 철호 부부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자랐지만 어려서부터 '미친 여자'를 친엄마로 인정하길 거부했던 일화에서 알 수 있듯 희수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늘 원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긴 세월 정신병동에 갇혀 사는 친엄마에 대한 연민을 떨칠 수 없다. 명희에 대한 연민과 원망이 같은 무게로 그녀를 짓누른다.

희수는 서른여덟 늦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양가 상견례 자리에 친엄마 명희가 불청객으로 침입하면서 희수의 결혼은 파토 나고 만다. 그렇잖아도 가슴의 응어리였던 엄마가 인생 중대사에 결정적 방해를 하는 상황에 희수의 원망은 극에 달한다. 명희는 어렴풋이 자신의 존재가 딸의 앞날에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철규 의문사와 5.18의 결합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분명 전라도인데 철수는 물론 철호도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철수형제는 원래 전라도와 경상도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나 경상도에서 자랐다. 그러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무작정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도로 흘러들어오게 된다. 감독은 이렇게라도 5.18에 덧씌워진 지역적 경계를 허물고 싶었노라고 말한다.

지역 간, 세대 간, 이념적 차이로 인한 사회적 장벽과 편견을 깨기 위한 감독의 노력은 작품 곳곳에서 강박적일만큼 자주 목격된다. 언뜻 지나치는 풍경, 대사, 소품, 배우들의 행동 하나에도 80년 5월의 시공간적 배경을 어느 특정한 지역과 계층에 국한시키지 않고 우리 시대가 품어야 할 공동의 역사이자 비극으로 인식시키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포착된다. 그래서 부자연스런 장면이나 소품, 대사 등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는 부분에서는 의심하기 보다는 이 장치가 암시하는 메시지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고심하게 된다. 영화는 애매한 디테일적인 요소로 관객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상상하게 하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영화는 희수가 파혼으로 취소된 결혼식을 강행하겠다고 선포하면서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신랑이 없는 상태에서 결혼식을 예정대로 감행하겠다는 희수의 호언장담은 지켜질 수 있을까. 희수가 계획한 결혼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살리는 최고의 이벤트가 된다.

스크린에 불이 꺼져도 스피커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 나머지 소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관객들은 노래의 마지막 소절이 끝날 때 까지 일어서지 않고 정숙했다. 어두운 스크린을 응시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 마지막 소절을 조용히 따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 영화는 배경음악이 모두 추억의 민중가요들로 짜여있다. 각 장면에 어울리는 민중가요가 배경음악으로 깔려 그 자체로 한편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듯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민중가요가 삽입된 신은 느린 화면으로 처리하여 공감각적 감동을 오래 음미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특히 철수의 비밀장례미사를 집전하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어 가는 젊은 사제의 이마 위로  '마른 잎 다시 살아나'가 애잔하게 흘러나오는 장면에서는 처연한 분위기가 고조된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영화는 희수(김꽃비)가 파혼으로 취소된 결혼식을 강행하겠다고 선포하면서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이철규 열사의 죽음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지만 주인공 철수에게는 다양한 인물이 중첩되어 있다. 철수가 학생운동조직에서 차지하는 위치로 보면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관현 열사를, 철수가 집회와 시위를 주도하는 등 학내외 투쟁에서 보여주는 역할을 감안하면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산화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가, 수배 중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고 사고사로 위장 당하는 과정은 제4수원지에서 처참한 익사체로 떠오른 이철규 열사 사건이 투영되어 있다. 학생과 시위대가 철수의 빈 관을 들고 행진하면서 위장행렬로 경찰들의 시신탈취 공작을 따돌리는 작전은 지금도 지역에서 '운암대첩'으로 회자되는 고 강경대군의 장례행렬을 재연한 듯 보인다.

종잣돈 100만원의 기적, 이 영화의 진정성

영화의 배경으로 나오는 화순군 지역의 시골여중생이었던 나는 80년 5월 어느 날 실시된 갑작스런 봄방학에 너무 신이 나서 광주에서 '폭도'들이 한 달쯤 더 데모를 해주길, 그래서 전원 광주 거주민들인 선생님들이 계속 무단결근을 하고 이 꿈같은 휴교조치가 더 이어지길 간절히 염원했다. 15세 청소년으로서는 자연스런 반응이었다고 자위한다. 광주에서 차로 한 시간 반 거리의 시골 중학생인 우리들은 교통과 통신이 두절된 도청소재지 광주에서 그토록 처참한 만행이 자행되고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같은 화순 출신이지만 나이가 조금 많다는 이유로 당시 광주에 유학중이었던 감독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지요."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명희가 37년 세월을 머리에 박힌 총알로 인한 광기에 시달리듯 광주를 겪었던 사람들은 모두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으로 인한 크고 작은 분열 증세에 시달린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또한 그 세월을 온전한 정신으로 견딜 수 없었던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빚어낸 분열증상의 결과물이다. 

"그 친구가 제게, 백만 원을 주면서 이 영화를 꼭 만들어 달라 당부했거든요."

영화 마지막 자막, 이 영화를 헌정한다고 언급했던 친구의 사연을 감독은 회한에 젖은 어조로 들려주었다. 첫 제작비용 백만 원을 대줬던 친구라고 했다. 같은 고등학교 친구로 함께 5.18을 경험한 그는 영화 만드는 일을 업으로 갖게 된 친구에게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 백만 원을 쥐어주며 꼭 '5.18영화'를 만들어 달라 당부했다고 한다. 친구의 부탁은 결국 유언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영화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친구는 불의의 사고로 저 세상 사람이 되어버렸다. 종잣돈 백만 원의 우정이 오늘 이 영화를 가능하게 했다. 감독은 첫 시사회의 감격을 줄곧 지금은 가고 없는, 백만 원을 쥐어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꼭 완성하라고 당부했다던 친구의 유훈을 떠올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김꽃비, 김부선, 이한위 등 배우들의 성실한 연기다. 점점 문화예술작품의 생산과 소비가 일회적으로 신드롬화 되어 가고 있는 예술시장에서 이 영화의 소박한 매력과 진정성을 관객들이 간파해주길 바라본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5.18광주민중항쟁 38주년에 즈음하여 개봉하는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18년의 5월 추모분위기를 계승할 가장 시의적절한 콘텐츠라 확신한다. 올봄, 스크린에서 재개될 세기의 영혼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여 진혼곡 '임을 위한 행진곡'이 결혼행진곡으로 제창되는 감동적인 출정식을 함께 하길 적극 권한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광주민중항쟁 38주년 박기복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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