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팬서>의 포스터.

영화 <블랙팬서>의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약 2억 달러(한화 약 2150억 원)의 예산으로 13억 달러(한화 약 1조4000억 원)가량 수익을 벌어들인 영화 <블랙 팬서>. 화려하면서도 절도있는 액션 신과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들, 가상의 왕국 '와칸다'의 매력과 지루하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은 스토리 전개까지. 이 모든 것이 영화의 흥행을 이끌었고 갓 10주년을 맞은 마블 스튜디오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작품으로서의 예술성과 영화로서의 성공을 떠나서 <블랙 팬서>가 흑인, 특히 미국 사회 흑인의 역사와 문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미국 역사가 생소하다면 잘 와닿지 않았을 몇몇 대사 속에 어떤 의미가 함축되어 있고, 어떤 아픔이 숨어있는지를 이 기사를 읽고나면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 <블랙 팬서>의 의미

 영화 <블랙팬서> 스틸 컷

영화 <블랙팬서> 스틸 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우선 영화 제목부터 살펴보자. '흑표범'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은 사실 1966년에 창시된 미국의 동명의 흑인인권당에서 유래했다. '흑표당'이라고 의역되는 이 정당은 흑인으로서 받는 차별, 그중에서도 경찰이 남용하는 폭력에 맞서고자 만들어졌다. 이들은 흑인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사회적 평등을 위해 싸웠다. 폭력은 폭력으로 응수해야 한다는 주의이기도 했다. FBI의 적극적인 제재로 인해 흑표당은 1982년에 해산되었지만, 흑표당을 만든 사회적 문제와 이에 맞서는 정신은 죽지 않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요 몇 년간 미국은 "Black Lives Matter," 즉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라는 이름의 운동으로 떠들썩했다. 백인 경찰이 흑인 용의자들을 체포할 때 흑인이 비무장 상태인 데도 몸을 던져 제압하거나 혹은 위협적인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는 데도 발포해 죄 없는 시민들을 숨지게 하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에 흑인뿐만 아니라 미국의 다른 유색인종들도 함께 시위를 벌였다. 미식 축구 혹은 NBA(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전미 농구 협회)에서 활약하는 흑인 선수들은 경기 전 미국 국가가 나올 때 한쪽 무릎을 꿇어 그들의 방식으로 조용히 시위를 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일부 백인들은 국가와 국가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병사들을 모욕하는 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블랙팬서>는 단순히 슈퍼히어로의 이름과 모티브가 아니다. 백인 중심 사회의 인종차별과 무시를 공격적으로 혹은 조용히 맞서온 흑인들 하나하나의 자부심과 긍지를 상징하고, 이들의 고통과 핍박 속에서 피어난 정체성을 나타낸다.

국민의 소중함과 세계의 절실함

 영화 <블랙팬서> 스틸컷

영화 <블랙팬서>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와칸다의 국왕 티찰라(채드윅 보스만)와 미국에서 용병으로 살아온 그의 사촌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 이 두 사람의 주요 갈등은 와칸다의 폐쇄적 정치에 대한 킬몽거의 불만에서 비롯한다. 이전에는 유럽의 식민지로서 형제들을 빼앗기고 학대 당하는 고통을 겪었고 요즘은 내전, 가뭄과 자원 부족 등 여러 어려움에 짓눌려 있다. 이러한 아프리카의 형제들을 와칸다는 외면한다. 자신의 국민들을 지키기 바쁘고, 외부인이 가져올 변화와 문제를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킬몽거의 아버지가 그의 형인 티찰라의 아버지에게 죽임 당한 것도 미국의 흑인 형제들을 지원하려는 마음을 가진 것이 원인이었다. 킬몽거는 이에 와칸다를 향한 반감을 가지고 티찰라를 왕좌에서 밀어낸다.

후에 티찰라는 킬몽거와 싸워 권력을 되찾지만, 이제는 세계와 적극적으로 교류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시 왕좌에 앉는다.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티찰라는 자신과 국가의 위험을 감수하고 지금까지 지켜온 보수적인 태도를 바꾼다.

"와칸다는 더 이상 그림자 속에 숨어 지켜보고만은 있지 않을 겁니다. 이젠 그럴 수도 없고, 더이상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지구 곳곳의 형제자매들에게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몸소 실천하여 보여줄 것입니다. 지금, 다른 어느 때보다 지금 우리는 분쟁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을 알고 있죠. 아직은 화합이 이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지혜로운 자는 다리를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벽을 쌓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커다란 부족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서로를 돌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자유 외에 죽음을 택한 자들

후반부의 오랜 싸움 끝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는 킬몽거. 티찰라는 그를 짊어지고 킬몽거의 아버지가 오래 전 아들에게 약속한 와칸다의 석양을 보여준다. 티찰라는 아직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킬몽거는 자신의 불같은 정신은 와칸다에 맞지 않음을 알고 거절한다.

"치료하면 뭐, 그냥 가둬놓게? 내버려둬. 배에서 뛰어내린 내 조상들처럼 그냥 바다에 묻어줘. 그들은 죽음이 속박보다 나음을 알고 있었지."

킬몽거의 마지막 말은 1803년 이그보 사건을 염두에 둔 말이다. 흑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미국 남부로 팔려와 작물을 기르고 동물과 같은 대우를 받던 그 시절의 일이다. 이그보 지역에서 팔려온 흑인들 중 약 75명이 미국으로 항해 중 선상 반란을 일으켜 노예상들로부터 배를 빼앗고 자신들을 매매한 그들을 가라앉히고 본인들도 집단 자살했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미국 땅에서 짐승 취급을 받으며 살아갈 수도 없었던 이들은 손발에 사슬을 달고 조용히 물 속으로 걸어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그보의 사람들은 멸시 대신 죽음을 택했고, 킬몽거는 조용히 머리를 조아리며 사는 대신 꺾을 수 없는 신념을 가슴에 품고 눈을 감았다.

<블랙 팬서>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작이지만, 이야기의 중심에 선 흑인들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면 제작자가 전하고자 하는, 화려한 액션 뒤에 자리한 영화의 의미를 마주할 수 있다.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깎아내리려는 것을 거부한 19세기의 노예들, 불공평한 사회 속에서 평등과 개선을 외치던 인권운동가들 그리고 서글픈 역사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현대의 사람들. 이 모두의 의견과 열정을 나타내고 화합을 제시하는 영화가 바로 <블랙 팬서>다.

덧붙이는 글 참고자료: 영화정보사이트 IMDB, HISTORY "Black Panthers – Facts &Summary", BlackPast.org "Igbo Landing Mass Suicide(1803)"
블랙 팬서 흑인 인권 운동 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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