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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벌들이 윙윙대는 숲속에 나 혼자 살으리
거기서 얼마쯤 평화를 맛보리
평화는 천천히 내리는 것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 이르기까지
한밤엔 온통 반짝이는 빛
한낮엔 보랏빛 환한 기색
저녁엔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곳

나 일어나 이제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도(鋪道) 위에 서 있을 때면
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
- 윌리암 예이츠의 시〈이니스프리의 호도〉전문


바바 미오리 지음/홍주영 옮김/끌레마 발간
▲ 〈주말엔 시골생활〉 책 표지 바바 미오리 지음/홍주영 옮김/끌레마 발간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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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한번쯤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꿈꾸며 산다. 특히 고향이 시골인 사람들은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사는 것을 소망한다. 도시의 각박함과 삭막함을 뒤로 하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꿈을 먼 훗날로 유예시킨 채 도시를 벗어나지 못한다. 정말 꿈은 꿈일 뿐일까.

바바 미오리는〈주말엔 시골생활이라는 책을 통해 그 실마리를 풀어준다. 그녀는 시골을 갖고 싶다고 꿈꾸기 시작하면서 인터넷을 뒤지고 부동산을 순례한다. 마음에 드는 땅을 찾는 과정, 도시와 시골 두 지역 살이를 통해 발견하는 싱그럽고 풍요로운 생활, 그리고 지역주민들과 화합하며 공동체를 꾸려가는 재미를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조단조단 그려내고 있다.

1973년생인 그녀는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란 도시 토박이로 농촌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 그런데도 2007년부터 남편과 세 자녀,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를 데리고 주말에는 도쿄에서 지바현 미나미보소를 1시간 30분 가량 오가는 두 지역 살이를 실천하고 있다. 주중 5일은 도쿄에서, 주말 2일은 시골에서 보내는 5都2村(5도2촌) 생활이다.

바바 미오리 가족은 도쿄에서 미나미보소까지 1시간 반 정도의 거리를 주말에 오가며 도시와 시골 두 지역 살이 5도2촌 생활을 8년째 이어가고 있다.
▲ 바바 미오리 가족이 터를 잡은 도쿄와 시골마을 미나미보소의 이동경로 바바 미오리 가족은 도쿄에서 미나미보소까지 1시간 반 정도의 거리를 주말에 오가며 도시와 시골 두 지역 살이 5도2촌 생활을 8년째 이어가고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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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유목과 농경생활을 거쳐 산업사회에 정착한 우리 인간에게는 아직도 자연을 대하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마음이 편해지는 친자연적인 유전자가 전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5도2촌 생활로 그들 가족이 맛보고 느끼는 시골 살이의 소중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도시의 네모난 공간에서 폭력적인 게임과 끝없는 경쟁으로 지친 아이들에게 마을 숲에서 만나는 곤충과 벌레는 신기한 친구가 되었으며, 텃밭을 가꿔 얻는 싱싱한 채소는 가족들에게 건강을 선사한다. 그리고 함께 하는 마을주민들은 그들에게 지혜의 샘이 되어 주었다.

그녀가 SNS를 통해 마을을 소개하고 아이들의 친구들을 마을에 초대해 함께 놀게 하면서 마을은 외부에 조금씩 소개되어 2011년에는 미나미보소를 지원하는 사회 각계의 전문가들과 힘을 합쳐 미나미보소리퍼블릭이라는 비영리법인(Non Profit Organization)을 설립하였다. 여기서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자연 속에서 놀며 배우는 마을 숲 학교, 마을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를 판매하는 센조쿠 카페, 각자의 재능을 활용해 자립적인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미요시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급격하게 피폐해 가고 몰락하는 농촌이 주말에 찾는 그들 가족 때문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활력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귀농귀촌과는 또 다른 도농이 상생할 수 있는 미래의 생활방식을 생각하게 된다. 우울한 도시에서 스트레스로 지친 심신을 주말에 시골의 자연 속에서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면 그것도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통계청이 지난 20일 발표한 '2017년 농림어업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12월 1일 기준 농가인구는 242만 2천명으로 전체 인구에서 농가인구는 4.7%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60세 이상이 134만 명으로 전체 농가의 55.3%를 차지하고 있으며, 70세 이상은 73만 명으로 30.1%를 차지한다. 65세 이상 고령 농가인구 비율은 42.5%로 집계됐다. 농촌을 지키는 부모세대가 떠나면 그마저도 지킬 사람이 없다. 몇 년 전부터 농번기철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들어와 일손을 거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기계화가 어렵거나 수리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영농조건이 불리한 산간지역 농지는 경작을 포기한 채 황무지로 변해가고 있다.

농촌은 도시의 뿌리라고 하는데, 뿌리가 흔들리고 있으니 그 뿌리가 지탱하는 도시는 오죽하겠는가.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인구문제 해결을 위해 러시아의 다차(Dacha), 독일의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이나 일본의 시민농원과 유사한 체류형 주말농장을 조성해 분양하거나 임대해 주고 있으나 그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바바 미오리에게 시골집 안팎에 감도는 고요하고 투명한 공기는 편안하고 깊은 잠을 이끌어 상쾌한 아침을 맞게 해줬다. 주말을 마을 숲에서 풍요롭게 보내고 싶고, 이러한 생활방식을 인정받을 수 있을 때까지 마을사람들과 느려도 차분하게 관계를 이어 나가기 위해 매일 마음을 다잡는다는 그녀의 진지한 자세가 8년째 계속되는 5도2촌 생활에 '마음의 둥지가 있는 삶'을 실현시킨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황사와 미세먼지, 각종 위험과 사고가 도사리고 있는 도시에서 우리의 미래를 유예시킨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현실이 너무 비참하지 않는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소확행(小確幸)의 삶을 위해서, 그리고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위해 5도2촌으로 새로운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길지 않는 생을 의미 있게 엮어가는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주말엔 시골생활 - 도시와 시골, ‘두 지역 살이’를 통해 발견한 풍요롭고 새로운 생활방식

바바 미오리 지음, 홍주영 옮김, 끌레마(2015)


태그:#5도2촌, #바바 미오리, #시골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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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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