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 턱뼈 하나로 천 명의 블레셋 군대를 물리친 괴력의 사나이 삼손

나귀 턱뼈 하나로 천 명의 블레셋 군대를 물리친 괴력의 사나이 삼손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지난 1월 설 연휴 최대 화제작으로 손꼽혔던 블록버스터 영화 <염력>(감독 연상호). 우연히 염력을 획득하게 된 한 남자와 딸의 이야기를 그린 <염력>은 개봉 직후 작품성 논란에 휘말리며 손익분기점인 400만을 훨씬 밑도는 99만 관객을 동원하며 간판을 내려야 했다. 2018년 대한민국에 왜 소시민 슈퍼 히어로가 소환되어야 했을까. 그리고 그는 왜 환영받지 못했는가. 이에 대한 개운한 답을 얻을 수 없었던 차에 힌트는 의외의 인물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바로 3천 년 전의 고대 영웅이다.

저 사나이. 튜닉도, 갑옷도, 투구도,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시체더미를 딛고 서 있는 저 사나이는 누구인가. 전투가 끝난 후 전리품이라도 챙기러 온 초라한 '민초'일까. 남자는 왜 저렇게 장발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의 손에 쥐어진 물체는 무엇인가. 저 물체로 뭘 하려는 걸까. 혹은 뭘 했던 것일까. 영화의 러닝 타임을 정확히 반으로 접으면 나타나는 지점을 영화의 중간점이라고 하는데, 대개 주인공은 이 중간점을 축으로 큰 변화를 직면한다. 이 남자의 인생 역시 이 장면 후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면 일단 남자의 이전 인생에 대해 살펴보자.

 블레셋 군대 천 명을 상대하는 괴력의 사나이 삼손

블레셋 군대 천 명을 상대하는 괴력의 사나이 삼손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지금 군대와 싸우고 있는 것으로 봐서, 남자는 전리품을 훔치러 온 민초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손에 쥔 물체는 전리품을 챙기는 데 쓰는 도구가 아니라, 철제 무기로 무장한 군대와 맞서 싸우는 유일한 무기다. 도대체 저 남자가 무엇이기에, 무슨 잘못을 했기에 철제무기로 무장한 천 명의 '블레셋' 군대가 필요했던 것일까. 또 남자는 저 어설픈 나귀 턱뼈로 어떻게 천 명을 해치운 것일까.

남다른 괴력의 소유자, 그의 약점은

남자는 지난 19일 개봉한 영화 <삼손>의 주인공인 '삼손'이다. 예부터 비범한 존재는 출생부터 남다르다. B.C. 11세기 무렵, 당시 이스라엘은 이방민족 블레셋의 압제 하에 있었다. 이스라엘 단 지파의 마노아라는 남자의 아내는 아이을 낳지 못했는데, 그녀는 어느 날 천사로부터 '곧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는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다. 후일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할 것'이라는 암시를 받는다. 그로부터 얼마 후 태어난 아들이 바로 삼손이다. 부부는 나실인이 지켜야 할 것들, 즉 포도주를 멀리하고 시체를 만지지 않으며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것을 철저히 지키며 삼손을 양육한다. 하나님의 축복 아래 삼손은 건장한 청년이 된다.

남다른 괴력의 소유자 삼손은 민족의 파수꾼이었다. 그러나 삼손에게는 약점이 있었다. 그는 아름다운 블레셋 여인을 좋아했다. 우상숭배 하는 이교도와의 결혼을 금지한 당시 이스라엘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물며 삼손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아니었던가. 허용될 리 없었지만 삼손은 기어이 딤나의 여인과 결혼식을 감행한다. 그 누구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겠나.

 삼손의 어머니는 <소머즈>로 유명한 린제이 와그너가, 아버지는 연기파 배우 룻거 하우어가 열연하였다.

삼손의 어머니는 <소머즈>로 유명한 린제이 와그너가, 아버지는 연기파 배우 룻거 하우어가 열연하였다.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당시 산악지대에 정착한 이스라엘 민족은 양을 치거나 작은 밭의 소산물로 겨우 생계를 잇는 수준이었고, 평지를 점한 블레셋은 비옥한 토지에 풍요로운 소산물 그리고 전차와 철제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비옥한 포도농장으로 유명한 딤나의 여인과 감히 결혼을 치르는 삼손을, 블레셋 남자들은 철저하게 농락하고 있었다. 마음 속 울분을 삭이며 튜닉 30벌을 걸고, 누구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내며 호기를 부려 본다. 그러나 아내를 통해 답이 누설돼, 삼손은 튜닉을 물어내게 되고(당시는 옷이 귀했기에 쉽게 구할 수 없었을 터) 아내도 블레셋 남자에게 빼앗긴다.

아내를 빼앗긴 데 격분한 삼손은 추수를 앞둔 블레셋 지역의 밀밭에 불을 지르고 도망간다. 한 해 소산물을 전부 잃게 된 블레셋 왕자는 삼손을 추격한다. 산 바위 틈에 숨어있던 삼손을 잡기 위해 파견된 군대가 앞서 본 천 명의 군대였던 것이다. 자신이 잡혀가면 힘없는 이스라엘 민족을 지킬 자가 없음을 알게 된 삼손은, 눈앞에 보인 나귀 턱뼈 하나로 천 명의 군대를 해치우면서 살아있는 신의 임재를 보여준다. 나귀 턱뼈 신 이후, 천둥벌거숭이 삼손은 정식으로 사사로서 기름부음을 받고 20년 동안 민족을 통치한다.

운명도 힘도 알고 있었던 남자, 그러나 결국 비극

 삼손은 데릴라의 계략에 넘어가 머리카락을 잘리고 눈도 잃고 노예로 끌려가서 노역에 시달리게 된다.

삼손은 데릴라의 계략에 넘어가 머리카락을 잘리고 눈도 잃고 노예로 끌려가서 노역에 시달리게 된다.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다면 삼손이 이렇게 유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삼손은 잘 알려진 대로 요부 데릴라의 유혹에 넘어가 괴력의 비밀이 새 나간다. 머리카락이 잘리고, 힘과 눈을 잃고, 맷돌을 돌리다가, 신전을 파괴하며 수천의 블레셋인들과 함께 생을 마감한다. 이 치명적인 스토리는 그동안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수많은 그림과 소설, 오페라 그리고 오늘날 영화에 이르기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도대체 <삼손>은 어떤 이야기일까?

삼손을 연기한 배우 타일러 제임스는 'NETTV CATHOLIC'과의 인터뷰 영상에서 "삼손은 주저함(reluctancy)에 대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사사로서의 막중한 책임,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구하는 중대한 운명에 대해 그는 주저하고, 꺼리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그는 아내가 될 뻔한 딤나의 여인 타렌으로부터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아빠가, 남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 누구보다 사랑받기를 원했고, 사랑하기를 원했고, 행복한 가정을 원했던 삼손이 어렸을 때부터 귀가 따갑게 들었을 말은 이것일 것이다.

"너는 영웅이야. 우리를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구할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알았고, 자신의 힘을 알았지만, 그 운명을 언제 수행할지, 어떻게 수행할지는 알 수 없었던 삼손. 자신의 생각으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지만, 결과는 항상 비극을 불러온다. 누구보다 더 강한 괴력의 삼손이었지만, 그 역시 인간이었기에 욕망도 있었고, 두려움도 공포도 있었다.

당신이 만약 저기 홀로 선 삼손이라면, 눈앞에 군사 천 명이 칼을 들고 달려든다면 어쩌겠는가? '하나님이 지켜주시겠지'라는 생각으로 간단히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차라리 아파도 죽는 게 쉽지, 군사 천 명을 죽이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삼손의 지닌 괴력의 진짜 원천은 포도주를 멀리하고, 시체를 멀리하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행위 그 자체보다는, 온전히 하나님의 임재를 믿는 것에 있었다. 그 믿음이 눈먼 삼손의 눈을 밝혀 결국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한다. 물론 블레셋은 멸절되지 않는다. 그런 해피엔딩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후로도 이스라엘은 여러 민족의 지배를 받다가 '디아스포라'를 겪는다. 지금 다시 차지한 이스라엘 영토는 여전히 치열한 전장이다.

21세기 한국 사회에도 영웅이 필요했을까

 영화 <삼손>의 포스터와 영화 <염력>의 포스터.

영화 <삼손>의 포스터와 영화 <염력>의 포스터.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주)NEW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우연히 염력을 획득하게 된 한 남자와 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염력>은 알려진 대로 2009년 1월 19일 용산의 한 건물 철거현장에서 벌어진 화재참사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날 투입된 경찰 경비 병력 3개 중대 300여 명의 과잉진압은 6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 당하는 등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현장에서 또는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던 그 안타까움과 참담함이 오늘날 괴력을 가진 사나이를 소환한 것은 아닐까?

'삼손'도 짓밟히는 자들의 판타지로 손꼽히는 캐릭터다. 최근 법무부는 속칭 '용산참사'에 대한 재조사를 결정했다고 하니,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삼손'이 필요한 사회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괴력의 삼손은 잠시 잊고, 염력의 사나이도 잠시 잊고, 영화 <삼손>을 통해 한없이 약하고 여린 인간 삼손을 만나 보길 추천한다.

삼손 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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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영화를 봐도 성경이 떠오르는 노잼 편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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