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인조 밴드 뜨거운 감자가 새로운 디지털 싱글을 들고 6년 만에 컴백했다. 싱글 단위로 곡을 내는 것이 요 몇 년간의 추세인 만큼 특별할 것은 없다. 하지만 뜨거운 감자가 데뷔 이래 처음 낸 싱글이라는 걸 감안하면 뭔가 특별해 보인다.

곡의 소개글을 보면 흥미로운 구절이 발견된다.

"드라마 속 김혜자씨를 보고 만든 곡.
극중 할머니 어머니 딸로 이어지는 여성 삼대의 고단함을 그린 곡."

불편한 세계에서 여성의 편한 자리를 찾는다는 것

 뜨거운 감자 <중력의 여자> 뮤직비디오 중.

뜨거운 감자 <중력의 여자> 뮤직비디오 중. ⓒ Universal Music


김혜자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어머니 이미지를 가사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단한 삶에 지쳐 한숨 돌리고 있는 중년 여성의 모습. 그런데 이런 삶의 고단함의 무게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중력'으로 작용해서 아래로, 아래로 이어진다. 어머니에서 딸에게로. 빨래를 하거나 음식을 하고, 혹은 설거지를 하고 난 뒤 여성이 숨을 돌리는 장면이 연상된다.

"숨 한 모금 깊게 마시고 나니 이미 여기까지 아주 멀리까지 와있구나.
내 길 따라 걸어올 것 같으니 생각에 잠긴 밤 길을 잃었을 때 기억하오."
(뜨거운 감자 '중력의 여자' 중)

<중력의 여자>를 감상하는 데에 또 다른 길잡이가 되어 줄 열쇳말은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다. 소개글의 일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나온다.

이탈리아 예술가 브루노 무나리 (Bruno Munari)의 '불편한 의자에서 편안함 찾기'를 인용해 만든 작품. 불평등 속에서 평등을 찾기 위한 여성의 상황을 표현한 작품.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브루노 무나리의 1944년 포토 에세이 '불편한 의자에서 편안함 찾기'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원작에는 중년의 백인 남성이 안락의자에서 편안한 자세를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탈리아의 디자인 잡지인 <도무스>(Domus)의 '불편한 의자에서 편안함 찾기'에 대한 해석 일부를 살펴보자.

서로 다른 입맛에 맞추려고 다른 가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편안함과 같은 의자의 진짜 기능은 사라진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어떤 가구의 새로운 형태를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반적인 가구를 올바른 방식으로 쓰이게 하는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무나리는 안락의자를 디자인의 측면에서, 그것의 편안함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었다. 뜨거운 감자는 여기서 원래 편안함을 위해 고안된 것이 실제 생활에서 뜻하지 않게 불편한 지점을 만들어 냈을 때라는 부분을 착안해낸다. '여성의 일상적인 불평등한 상황'에서 평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의미를 가미시켜 재해석한 것이다. '안락의자'는 정작 여성에게 불편한 '중력'으로 작용하는 '일상'이라는 불평등인 셈.

생의 어떤 고달픔에 대하여

 뜨거운 감자 <중력의 여자> 뮤직비디오 중.

뜨거운 감자 <중력의 여자> 뮤직비디오 중. ⓒ Universal Music


시선을 조금 다른 곳으로 돌려보자. 뜨거운 감자가 신곡을 냈다는 기사 혹은 관련 인터뷰, 음악 사이트에 달린 반응들. 바람둥이, 불륜, 나쁜 사람 등등. 신곡에 대한 감상평 보다 비판과 비난 위주다. 사실 김C를 향한 일부 대중들의 이런 평가는 몇 년 전부터 이어진 것이다. 이혼 사실과 연애 사실이 잇따라 보도되자 많은 이들이 그를 비난했다. 아직까지도 '대중들이 불편해하면 방송에 나오지 않는 것이 맞다'라는 식의 반응들이 많다.

하지만 그는 "왜 그렇게 남들 일에 관심이 많고, 왜 그렇게 타인에 대해 쉽게 판단하려고 할까. 왜, 무슨 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웃긴 거다. 내가 당신한테 무슨 피해를 줬는데? 내 이혼이 당신에게 무슨 피해를 준 건가? 어디가 아픈 건데?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2018년 4월 10일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 김C는 "내 이혼이 당신의 어디를 아프게 했냐"고 묻는다)라고 항변한다.

"기억이란 미신 같은 거라서 믿고 싶은 대로 원하는 것만큼만 남았더라.
마음 하나 나눌 인연 있다면 아플 거라 한들 부족하다 한들 어떠하리오."

(뜨거운 감자, '중력의 여자' 중)

브루노 무나리에게서 얻어낸 영감은 여성이 이 세계를 살아내는 데에 있어서도 적용되지만, 이 고달픔은 폭력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개인인 김C에게도 적용이 되는 듯하다. <중력의 여자> 뮤직비디오에는 무나리의 작품에 나온 것처럼 김C가 불편한 의자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편안한 자세를 찾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김C 역시 불편한 세계에서 자신이 편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는 중인 듯하다.

이번 뜨거운 감자의 신곡은 이런 많은 맥락을 담고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김혜자를 떠올렸다는 김C 본인의 여성주의적 감수성과 함께, 개인으로서의 예술가의 자아를 엿볼 수 있다. 게다가 기존 뜨거운 감자의 음악에서는 보기 힘든 행진곡풍의 악기 배치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귀까지 즐거운 입체적인 곡이다.

#뜨거운 감자 #중력의 여자 #브루노 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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