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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곡(連彈曲)(부분)

神과 싸우기 위해 필요한 건 두 명의 인간과 하나의 입

세상은 언제나 four hand performance로 돌아간다는 얘기, 그와
그녀가 하나의 침대에 비문을 세울 수 있는 건 제각기 가슴에 모았던 두 개의 손을
네 발로 내려놓았기 때문이지만 하나에서 두 개로 늘어난 입을 어쩌지 못해
음악이 태어나고 지옥이 열렸다는 말씀

(……)

神은 인간의 숨을 음악으로 사용한다는 얘기, 그러니까
섹스는 죽어서도 썩지 못한 살[肉]의 한 구절로/영혼의 입을 틀어막는 일

울면서 왔으니까 울면서 가야 한다

가능한 한 아프게, 그리고
불손하게

김륭 시인은 1대 또는 2대의 피아노로 2명이 연주하는 '연탄곡(four hand performance)'을 들으며 '신(神)을 생각하고 '섹스'를 떠올렸다. 상상력이 풍부하다. 그래서 시인의 상상은 '신'을 모독해도 용서가 되는 모양이다.

김륭 시인은 두 번째 시집 <원숭이의 원숭이>(문학수첩 간)에 실린 시를 통해 '신을 모독'했다. 이번 시집은 신에 대한 저항의 노래를 담고 있다. 해설을 맡은 조강석 평론가는 이 시집에 실린 작품들은 한마디로 '독신적(瀆神的) 저항으로서의 시'라 했다.

'독신(瀆神)'은 '신을 모독함'이다. 66편의 시가 실린 이번 시집에서 '신(神)'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시는 16편으로, 시인은 신과 싸우거나 신에 저항하고 있다.

시인은 어째서 신과 싸우려 드는가? 인간에게 원초적인 슬픔과 고통을 부여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슬픔을 실존의 조건으로 삼고 있는 인간이 신과의 싸움에 임하려면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다.

김륭 시인의 새 시집 <원숭이의 원숭이> 표지.
 김륭 시인의 새 시집 <원숭이의 원숭이> 표지.
ⓒ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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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륭 시인에게 그 무기는 음악(시)이다. 인간에게 고통과 슬픔을 준 신에 대한 저항으로서 시가 탄생했다. 시인에게 시란 "신(神)이 인간들의 땅에 보내는 고통을 모조리 알고 있는,//물의 목소리"(시 '팬티' 부분)다.

시인은 신과의 싸움을 앞둔 이에게는 "두 명의 인간과 하나의 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을 도모하려면 다른 사람과의 연대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본래 혼자 살 수 없는 '공동 작업'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공동의 도모가 있는 곳에는 불화가 뒤따른다. 즉 시인은 "하나에서 두 개로 늘어난 입을 어쩌지 못"한 탓에 지옥이 열린다고 했다. 그런데 시인은 지옥이 열린 곳에서 동시에 "음악이 태어"난다고 말한다.

그러면 음악은 무엇인가? 음악은 곧 '시'이고, 불화와 동시에 탄생하는 '조율', '협화'를 향한 소망이다. 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시론(詩論)이라 할 수 있다.

시집에는 곳곳에 '음악'이 흐른다. 시인은 "가끔씩 물고기 눈을 감겨 줄 수 있는 음악이나 만들면서"(시 '검은 어항'의 일부), "내 몸을 어딘가 버려야 한다면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 속이라고"(시 '음악들은 좀 앉으시지'의 일부) 쓰고, "모처럼 조물주와 낮술이나 한잔 해야겠다고 생각"(시 "콧노래를 부르며"의 일부)한다.

시인은 "가능한 한 아프게, 그리고/불손하게" 음악을 연주하는 이유는 싸움의 상대가 신이기 때문이란다. 또 시인은 "당신도 그래라 그냥/마음 좀 아파라"(시 '비의 왼쪽 목소리' 부분)고 한다.

녹턴(전문)

함께 살지 않고도 살을 섞을 수 있게 된다

이불 홑청처럼 그림자 뜯어내면, 그러니까
내게 온 모든 세계는 반 토막
주로 관상용이다

베란다에는 팔손이, 침실에는 형형색색의 호접난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의 그녀와 나는 서로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죽었으면서도
살아 있는 척 손만 잡고,

죽음을 꺼내 볼 수 있게 된다

화분에 불을 주듯 그렇게 서로의 그림자로
피를 닦아 주며 울 수 있게 된다

神과 싸우던 단 한 명의 인간이

두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해설을 쓴 조강석 평론가는 한 마디로 "독신자(瀆神者)의 사랑"이라 표현했다. 그는 "김륭의 시는 신에게서 빼앗은 마지막 영토(사랑)를 지키기 위한 무기로서의 음악이 언어로 전화한 것이다. 어찌 보면 음악(시)을 만들어 내고자 인간 세계로의 신의 습격을 대물리는 언어이기도 하다"고 했다.

조정석 평론가는 "지옥과 음악이 한 풀무에서 나는 것과 같은 리듬으로 슬픔과 냉소가 서로를 부양한다. 슬픔은 거리의 소멸이고 냉소는 거리로 섭생한다"며 "그렇게 보자면 이 시집은 배덕자의 독백이라기보다 독신자의 냉소적 저항으로, 그리고 이를 환언하여 독신자의 방어적 사랑으로 읽는 게 옳다. 세계가 주관 안에서 모두 소화되지 않고 언제나 잔여물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김륭 시인은 2007년 <문화일보>(시), <강원일보>(동시) 신춘문예 당선했고, 그동안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과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 <별에 다녀오겠습니다> 등을 펴냈다.

김륭 시인
 김륭 시인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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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륭 시인,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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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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