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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베스트(일베) 사이트 폐쇄 논란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 매우 유의미한 쟁점을 드러낸다. 일베에 올라오는 혐오성 글들을 사회적 해악으로 볼 수 있는가, 우리 사회가 용납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누군가를 혐오할 자유도 표현의 자유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들이다.

'김치녀' '맘충' '된장녀' 같은 단어의 유행, 불특정 여성을 공격한 강남역 살인사건, 성소수자와 장애인들에 대한 혐오, 백주대낮에 가해지는 노인에 대한 테러, 이주노동자들을 노예 부리듯 하는 차별과 착취, 단식하는 세월호 유족의 면전에서 버젓이 '폭식투쟁'을 벌이는 행태까지, 차별과 폭력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많은 혐오표현과 증오범죄의 사례들이 있지만 '노키즈존' '맘충'처럼 엄마와 아이를 동시에 표적으로 하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바야흐로 우리는 지금 '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한국사회는 식민지배와 전쟁, 군사독재와 민주화를 겪으면서 고착된 좌우의 이념갈등, 계층갈등, 지역갈등의 정도가 심한 편이다. 차이는 민주주의 안에서 건강하게 경쟁하고 조율하고 합의하는 방향으로 성숙되지 못한다. 오히려 진영간의 타협없는 싸움으로 쉽게 발화되고 그 양상은 폭력적이다. 이처럼 불안한 사회적 토양 위에서 민주주의는 건강한 나무로 성장할 수 없다.

특정 집단의 배타적인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적 가치가 공격당하거나 훼손되는 것을 용인한다면 더 큰 비극을 가져올 것이다. 일베사이트의 폐쇄가 정말로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폐쇄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일베를 폐쇄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혐오표현과 증오범죄가 아예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적 토양을 만드는 일이다.

'표현의 자유'와 '혐오의 자유'를 혼동하지 말라

<말이 칼이 될 때> 표지 .
▲ <말이 칼이 될 때> 표지 .
ⓒ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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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자 홍성수의 <말이 칼이 될 때>는 혐오표현의 문제점과 규제의 필요성을 해설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모르게 일상을 파고든 다양한 혐오표현들에 무관심하거나 방관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혐오표현들에 무감각하면서 방치한다면 '나비효과'처럼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는 불행으로 번질 수 있음을 알았다. 특히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배제와 차별이 아닌 존중과 공존을 가르쳐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혐오표현은 '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 모욕, 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31쪽)으로 정의할 수 있다.

혐오는 단지 싫은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사회적 배제를 선동하고 차별과 폭력의 매커니즘을 강화하며 언제든 물리적 폭력으로 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혐오표현은 인간의 존엄성을 공격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존의 조건을 파괴한다. 저자는 민주주의 원칙인 '표현의 자유' 안에 '혐오'는 포함되지 않는 점을 분명히 한다.

"표현의 자유가 인격적 자기실현의 수단으로 인간의 고귀한 권리이고 사회진보와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하는 점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중략)...표현의 자유는 원래 '소수자'의 권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수자나 강자는 자유자재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소수자에게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 가치다. 생존권, 평등권, 참정권, 노동권 등 모든 권리의 실현을 위해 소수자는 자신의 권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다른 권리의 실현을 위한 전제조건인 것이다." (150쪽)


혐오표현은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처해 있는 편견과 차별, 배제와 불평등한 맥락을 강화한다. 저자는 "남성이나 기독교도와 같은 다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은 성립하기 어렵다. 소수자들처럼 차별받아온 '과거'와 차별받고 있는 '현재'와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는 '미래'라는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수자를 상대로 하는 혐오표현은 대개의 경우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과 같은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43쪽)고 설명한다.

'여혐'은 여성으로 하여금 일상적이 공포를 느끼게 하고 범죄로도 연결될 수 있지만 '남혐'은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남혐'을 '여혐'과 똑같은 혐오표현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소수자 차별의 맥락이 있는 한, 표현의 수위와 상관없이 혐오표현은 차별을 재생산하고 공고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혐오표현의 개념을 넓게 설정할 필요가 있고 동시에 구체적인 맥락에 따라 혐오표현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혐오표현으로 간주될만한 말들을 죄다 형사처벌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앞서 예를 든 것들은 대부분 법적 잣대를 들이댈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차별적 언사에 대해 '항의'할 수 있어야 하고 또 항의해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 공론장에서 어떤 말이 오갈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더 이상 혐오표현에 대한 침묵과 무시가 대안일 수는 없다." (49쪽)


'혐오의 시대'를 넘어서 '공존의 시대'로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공격하는 혐오표현이 확산되지 못하도록 사회적 자정능력을 키워야 한다. 동시에 인위적인 개입을 통해 혐오표현의 확산을 차단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혐오표현은 단순한 표현에 머무르지 않고 '선동'하며 그만큼 해악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가 보기에 한국사회는 혐오표현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대응에 사실상 실패했다. "영향력있는 정치 지도자나 사회 유력 인사들, 종교계 지도자들이 혐오와 분명한 선을 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육 현장에도 혐오와 맞선 대책이 체계적으로 수립되어 있지 않다"(227쪽)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적 자정능력이 어려울 정도로 이미 그 해악이 막대하거나 해악이 명백하고 임박하여 사전 예방이 필요하거나 사회적 영향력이 강력한 영역이라 사전적 조치가 불가피하거나 권력관계가 연동되어 있어 사회적 약자의 반격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라면 강제 개입이 불가피하다"(170쪽)며 선진국과 같은 증오범죄법,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률적 규제장치 마련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사회적 무관심과 정치적 무책임함은 사태를 키운다. 혐오표현과 증오범죄의 해악성에 경각심을 갖고 이를 규제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길이다. 혐오의 시대를 넘어 공존의 시대로 가는 길목에서 혐오표현에 대한 단호하고도 성숙한 대응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펴냄 / 2018.1 / 14,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홍성수 지음, 어크로스(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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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