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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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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글 말미에 시 한 편씩 넣는데, 시에 조예가 깊어서가 아니라 시라도 읽으며 살면 강팔지고 모지락스러운 세상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을까 해서다. 어려서부터 시를 좋아해 한 권 두 권 시집을 사 모은 게 천여 권이 넘고 시에 대해 아는 척을 하다보니 시인과 제법 교류도 있지만 시인이라고 아버지가 무턱대고 그들을 존경한다 생각하면 오해다. 단순하게 시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이 존경받아야 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시(詩)도 상품이다.

아버지는 만년필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버지에게 있어 만년필은 단순한 필기구 이전에 감성이 포함되어 있는 그런 상품이다. 심심하면 만년필을 모두 꺼내놓고 괜히 뚜껑을 열고 닫으며 혼자 좋아한다. 만년필보다 좋아하는 상품이 있는데 시(詩)이다. 시인이 이 글을 읽으면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시도 상품이다'라는 아버지의 생각을 굽힐 생각은 없다. 다만 시가 다른 상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는 느낌, 즉 감정과 감성을 사고 파는 상품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감성을 팔고 아버지는 감성을 산다.

일반적인 상품은 아무리 좋아도, 가령 아버지가 만년필을 아무리 좋아한들 맘에 드는 만년필을 사놓고 좋아서 울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시라는 상품은 울어본 적이 제법 많다. 일반적인 상품과 시라는 상품이 다른 점이다.

상품을 만드는 사람도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상품을 만드는 사람은 KS 표준 규격이라는 게 있어 최소한의 품질을 규격화해야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시라는 상품은 다르다. 시인은 빨간꽃을 보며 노랑꽃으로 느낄 수가 있다. 시로서 빨간꽃을 노란꽃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특권이 있다.

그렇다고 빨간꽃을 시인인 내가 노란꽃으로 느꼈으니 독자인 당신도 노란꽃으로 느껴야 된다며 시에 대한 이해를 강요할 수는 없다. 시인은 시인대로 몫이 있고 독자는 독자대로 몫이 있기 때문이다. 특이한 점은 같은 상품으로서 만년필은 철저하게 자본주의 논리를 적용하지만 시는 자본주의 논리와 결탁을 하면 타락해도 아주 더럽게 타락한다. 만년필은 물질적 상품이고 시는 정신적 상품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미당 서정주와 모윤숙이다. 서정주는 일본의 자살특공대를 찬양했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에 빌붙었다. 제자가 왜 그랬냐 물으니 일본이 그렇게 빨리 망할줄 몰랐단다. 모윤숙은 이땅의 딸들에게 일본 위안부로 나가기를 독려한 친일시인다. 언젠가 미당에 대해 한마디 했더니 시인이라 자처하는 어떤 사람이 고소 고발이라도 해서 나같은 사람을 일벌백계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죄명을 뭐로 하겠냐고 물었더니 '사자명예훼손'이란다.

'예술은 정직하다.'는 말을 아버지는 인정할 수 없다. 미당 서정주가 그렇다. 모윤숙이 그렇고 노천명이 그렇다. 김동인이 이광수가 그렇다. 이인직 정비석 최남선 채만식이 그렇다. 예술이라고 다 정직하지 않다. 얼마전 미당문학상이 말이 많았는데 미당문학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시상식에 참가를 했다. 문학이 자본주의 논리와 결탁해서 생기는 모순이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오늘 아버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서정주의 시를 읽고 노천명의 시를 즐기되 친일문학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즐기라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딸아, 시를 즐기기는 하되 시인과 인연을 맺으려고 애쓸 것 없다. 시가 좋다고 해서 그 시를 쓴 시인의 삶도 시적일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라.

"딸아, 항상 곁에 시집 한 권은 두고 보아라. 너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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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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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아버지와 딸, #시집,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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